‘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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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38)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2.01.13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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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세상에, 나를 이 의자에 앉으라고? 심사위원이라는 것만으로 같은 교수 신분에 내가 좀 늦게 공부를 시작한 죄밖에 없는데 나를 이렇게 대우하다니!”

나는 순간 내가 이 논문심사를 저들에게서 받아야 하나? 그렇게 해서 받은 이 석사학위가 대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런 마음이 들었다. 곧 심사위원 한 사람씩 논문에 관해 각자 질문을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일체 질문에 대한 대답도 피심사자로서의 방어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기껏 체면상 대답한 것은 ‘예, 아니오.’ 뿐이었다.

처음에는 눈치를 못 채던 심사위원들이 나중에는 “선생님, 왜 일체 방어를 안 하시고 반응이 없으시냐.”며 이상한 눈초리로 물었다. 나는 그래도 묵묵부답이었다. 그러자니 논문심사는 빨리 끝날 수밖에 없었고 마지막으로 심사위원장이 논문의 수정할 부분을 요약할 때도 나는 일체의 메모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지도교수도 불안한지 자꾸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심사 아닌 심사가 끝나고 방을 나오니 다른 학생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앉아 있었다. 지도교수는 내 손을 잡고 연구실로 같이 가서 심사받은 지적사항을 함께 정리하자고 했다. 나는 말없이 따라 들어갔다. 지도교수가 책상에 앉고 나에게 앉으라고 자리를 권하자 나는 내 손에 쥐고 있던 200자 원고지 수백 장을 하늘로 던져 올려버렸다. 원고지는 공중에서 날리며 연구실 바닥에 내려앉았다.

지도교수는 갑작스러운 일에 눈이 휘둥그레져 “선생님 왜 그러시는 거예요.” 하며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지도교수에게 “선생님께는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순간 이후 제 석사학위 논문은 포기하겠습니다. 내가 석사를 하고 박사를 하려는 것은 남들보다는 좀 더 배운 사람으로서 인격과 인품을 갖추고 남을 예우할 줄 아는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오늘부로 그런 기대와 희망은 다 사라져버렸어요. 모두가 박사이신 심사위원들이 자기들은 소파에 좌정하고 아무리 학생이라지만 초중고도 아니고 대학원 공부를 하는 성인 학생들에게 스툴을 들고 와서 앉히고 논문심사를 받게 하다니요! 내가 이대에서 그런 박사들로부터 석박사를 받아 똑같은 그런 사람이 될 거라면 차라리 박사 안 하고 지금의 나로 살겠습니다. 내가 교수직을 그만두고 자연인으로 돌아가면 석박사가 아니어도 훌륭한 나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 길을 택하겠으니 더는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그간 정말 감사했습니다.” 하고 말했다. 

지도교수는 예상치 않은 나의 행동에 놀라고 당황한 나머지 연구실 바닥에 흩어져 있는 원고지를 주섬주섬 집어 들며 나에게 “선생님, 자존심이 많이 상했나 본데 이러지 마시고 마음을 진정하고 앉아서 오늘 수정하라고 한 것이 많지 않으니 같이 정리해 봐요.” 하며 나를 끌어다 책상에 앉히고 지도교수가 먼저 원고를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도교수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계속 내 마음을 달래는 그분을 보며 마음이 흔들렸다. 결국 더는 지도교수를 힘들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원고를 받아들고 대강 정리했다. 그러자 지도교수는 내게 일주일 후에 2차 심사 때 꼭 나와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셨다.

일주일 후 2차 논문심사일, 숙고 끝에 이대 헬렌관 간호대학 건물 1 층에 있는 논문심사실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그때 간호대학장이신 최영희 교수님이 1층에 지켜계시다가 내 손을 잡고 학장실로 가셨다. 대뜸 첫마디로 “송 선생님. 오늘 2차 논문심사는 학장실에서 하라고 이야기해 놓았어요. 지난주에 있었던 일은 들어서 잘 알고 있어요. 내가 어제 심사위원장한테 어떻게 송 교수를 그렇게 대우했냐고 한마디 하고 2차 심사는 학장실에서 다 같이 앉아서 진행하라고 이야기해 놓았으니 섭섭한 점이 있었다면 마음을 풀고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 되길 바라요.”라고 하셨다.

죄송한 마음이 컸고 그리고 감사했다. 나는 선생님께 “제가 비단 저 혼자 대우를 못 받아 그런 것보다는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 연구논문을 심사하고 심사받는 선생님들 간에는 최소한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해주고 배려해주는 기본적인 관계는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심사위원이지만 심사위원은 논문을 심사하는 것이지 인간을 심사하는 것이 아닐진대 피심사자의 기본인격과 자존심만은 존중해 주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 소문은 당시 석박사 논문 피심사자들한테 다 퍼졌는지 내가 끝나고 복도에서 만난 석박사 예비 후보들은 하나같이 내게 고맙다고 했다. 무엇이 고맙길래 그러냐는 내 질문에 그들은 “우리는 고양이 앞에 쥐가 되어 심사위원 앞에서 하고 싶은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하는데 선생님 덕분에 심사위원들이 전보다 훨씬 예우를 해주는 것 같아 감사할 뿐 입니다.”라고 말했다. 다음날 미국에서 공부하신 김수지 교수님께서도 그 소문을 들으셨는지 한마디 해주셨다.

“우리나라 대학의 논문심사문화도 이제는 미국처럼 피심사자를 존중하는 문화로 바뀔 때가 되었지요. 이런 일을 계기로 이제는 이대 뿐만 아니라 대학들이 모두 권위주의적인 대학문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번에 송 선생님 같은 분이 있어 그런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 말씀이 내게는 큰 보람으로 다가왔다.

박사시험 안 볼 거면 송 선생과 절교할 거예요

유례없는 해프닝을 겪으며 논문심사로 인한 트라우마는 박사과정에 대한 미련을 날려버렸다. 그 사건으로 박사에 대한 내 생각에 변화가 생겼고 남편은 힘들게 직장생활을 하지 말고 집에서 아이들 이나 잘 키우는 게 좋겠다는 말을 자주하며 부담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학교를 그만둔다면 구태여 박사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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