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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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52)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2.01.2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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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죽이나 정사(政事)로 죽이나 살인은 마찬가지

우리는 왜적을 능히 막을 수 있다
     
조헌은 일찍부터 ‘국가가 흥성하거나 쇠퇴하는 형세는 한갓 병력의 강약에 있는 것이 아님’을 천명하였다. 비록 일시적으로는 흥성하더라도 만약 국가의 근본이 서 있지 못할 때에는 쉽사리 무너질 수 있는 것임을 역사적 사례를 들어서 논하였다. 

“가령 풍신수길(豐臣秀吉)이 진실로 착한 일을 하여서 저희 나라 사람의 추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구분된 땅이 각각 한계가 있으니 마땅히 제 몸을 닦아서 나라 사람을 안정케 할 것이며 칼과 창을 녹여 농기구를 만들고 도적을 변화시켜 양민으로 만들어 밭 갈고 물고기를 잡아서 자력으로 살고 이경을 침범치 않음으로써 자손의 무궁한 계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벽지의 고루함이 답답하고 따분하다면 때때로 박(薄)한 물품으로써 사신을 우리나라에 보내서 기자의 홍범과 공자의 가르침을 구해갈 것 뿐입니다. 그러면 오랑캐의 풍속이 고쳐질 것이고 혹은 깊은 산골에서 나와 교목(喬木)에 올라가는 희망도 있어 나라를 누리는 역년이 원 씨와 같이 오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수길의 병력이 도성을 도륙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나라 사람들은 실로 선함에 경사가 있고 악함에 재앙이 있다는 응보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경공이 눈물을 흘리며 오에 딸을 주었으니 오가 제보다 강한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오가 나라를 잃어버림이 먼저였습니다. 연개소문이 임금을 죽이고 자립하였으니 신하가 임금보다 강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당병이 그 도읍을 멸망시켰습니다. 세상에 없는 환문(桓文)과 같은 강적이 비록 어쩌다가 천하를 평정하였다 하더라도 그 멸망할 것이 환히 보입니다. 이러한 뜻을 모르고 감히 도 있는 나라를 능멸하니 이것은 부견과 같이 스스로 망함을 자초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가뭄과 도적으로 사정이 어렵다고는 해도 방어 계책이 없다면 저들의 탐욕이 반드시 우리를 짓밟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방어에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고 군사력도 약하다고 할 수 없으므로 모든 국민이 힘을 합하여 싸우면 능히 왜적을 막아낼 수 있다. 이러한 중봉의 신념은 단순한 주관적 주장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지리적 조건을 고려한 확신이었다.

“만약 우리나라가 요사이 가뭄과 도적으로 민력이 고달프다고 하여 방어의 계책이 없다고 한다면 모름지기 통신하는 일을 논의하여 일방적 군병을 그만두어야 할 것인데, 승냥이와 이리와 같은 탐욕은 실로 일개의 사명에 있지 않고 산천의 험이(險易)와 도로(道路)의 원근(遠近)을 알아서 우리의 국토를 짓밟으려는 계책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조종 조(祖宗朝)의 은택(恩澤)이 끊기지 않았으니 흩어진 병졸을 수습하면 또한 스스로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속임수의 술책에 빠져 억지로 동맹을 맺겠습니까? 우리 삼한 땅은 작은 것으로써 능히 큰 것을 대적할 수 있다고 가장 이름이 나 있습니다. 을지문덕이 수의 병사를 살수에서 물리쳤고 고려 태조가 계단(契丹)의 군사를 압록에서 제압하였습니다. 땅에는 고금의 다름이 없으니 의기가 어찌 오늘날만 부족하다고 하겠습니까? 오직 선인을 보배로 삼고 즐길만한 사물을 보배로 삼지 않으며 군신이 협력하여 백성을 자식과 같이 여긴다면 백성이 또한 힘을 합하여 사수할 것이며 자라나 개구리조차도 나라를 보전할 것입니다. 하물며 신기한 계책을 가진 여러 장수 가운데서 어찌 하나의 고경과 같은 이가 없겠습니까? 저들은 떠들고 우리는 조용하니 수고롭고 편안함이 서로 다르며 저들은 도적질하고 우리는 지키니 굽음과 곧음이 서로 현격합니다. 돌을 던지고 노쇠를 날려 목숨을 다하여 싸울 것입니다. 또한, 성을 열흘 정도 지키면 서울의 원군이 어디든 이르고 바다를 건너온 양식이 하루 이틀을 보존키 어려울 것이니 속전에 불리하게 되면 그 형세가 저절로 쇠퇴할 것입니다. 그 배고픈 때를 기다려서 기병을 보내어 요격한다면 한 조각의 전선도 돌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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