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율을 높이는 진짜 원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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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율을 높이는 진짜 원흉은?
  • 정일규 한남대학교 스포츠과학과 교수
  • 승인 2022.01.27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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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인구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한 계기가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쌀이나 밀을 재배하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서 한곳에 머물러 마을을 이루면서 식량수급에 대해 예측가능성이 높아지고 농사에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후에도 오랜 기간 인류 대다수에게 풍족한 식량을 섭취할 기회가 주어졌던 것은 아니다. 

두 번째 사건은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이다. 이 산업혁명의 결과로 농업분야에서도 기계화가 진행되어 트랙터와 같은 영농기계가 만들어지고 비료가 생산됨으로써 쌀, 밀, 옥수수와 같은 농작물이 대규모로 재배되기 시작했다. 또 대규모로 생산된 곡식의 전분을 가공하여 유통하는 식품의 산업화가 진행되었다. 그로 인해 일반 대중은 이 전분질 식품을 싼값에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에 설탕과 밀가루를 미국 원조에 의존하여 얻었던 시절을 생각해보자. 

이제는 거대한 할인마켓에서부터 동네슈퍼에 이르기까지 진열대에는 수많은 전분질 가공식품이 가득 채워져 있다. 밀가루, 옥수수, 감자 전분을 이용한 다양한 스낵류와 제빵류, 라면 등이 다른 육류나 생선, 유제품에 비해 압도적이라고 할 만큼 넘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전분질식품이 소비자의 입장에서 입맛을 아주 잘 만족시키고 혈당을 빨리 상승시켜서 공복감을 빨리 해소시키는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공급자의 입장에서는 이 전분을 가공하여 파는 것이 상업적인 이윤창출에 가장 유리하다. 즉 전분을 가공하여 파는 것은 육류나 해산물을 가공하여 파는 것에 비해서 보다 저비용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마진율도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면, 빵, 팝콘이나 감자스낵, 옥수수스낵과 같이 순수한 전분질 식품, 각종 탄산음료나 쥬스류에 단맛을 내기 위해 당분을 첨가하거나 심지어는 소시지나 치킨과 같이 육류에도 전분질 튀김옷을 입혀 파는 것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그래서 이 시대는 ‘녹말의 풍요시대’라고 특징지어진다. 사실 이러한 식품의 산업화는 인류 대부분을 기아의 수렁에서 건져 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녹말의 풍요는 그로 인한 혜택(?)을 입은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비만율을 급속하게 증가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전분질 가공식품이 이제 인류를 기아의 수렁에서 건져 내어서 ‘비만’의 수렁으로 밀어 넣고 있다고 지적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떠할까? 적어도 절대다수가 끼니를 굶을 걱정에서는 벗어나게 되었다. 대신에 많은 사람이 비만을 걱정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고령화에 못지않게 비만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즉 우리나라는 비만율이 30%를 돌파한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요즘 여러 연구들은 과도한 칼로리섭취와 함께 전분질 식품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에게 비만의 주된 원인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과거에 육류 위주의 지방섭취를 비만의 원인으로 지적해왔던 것과는 다른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분석해보면 단순히 전분질 섭취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섭취하는 전분질의 형태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 사람의 전통적인 식습관은 전분질이 전체 칼로리섭취의 80%가 넘었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체 칼로리섭취도 적었지만 전분질의 대부분을 쌀, 보리와 같은 원곡류로 섭취하였고, 또 채소류가 식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은 탄수화물 섭취량이 전체 칼로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60% 내외로 떨어졌지만 비만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탄수화물의 섭취를 주로 백미, 밀가루, 설탕과 같은 가공, 정제된 형태로 섭취하기 때문이다. 이들 정제된 탄수화물은 혈당을 빠르게 올리는 작용을 한다. 혈당이 빠르게 올라갈수록 인슐린은 과잉분비된다. 이렇게 과잉분비된 인슐린은 체내 지방의 축적을 촉진하고 인슐린저항성을 높여서 고지혈증과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초래하고 당뇨병의 위험을 높인다. 

그러므로 비만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방법은 우선 전분질 식품의 섭취 비율을 줄이고 특히 가공, 정제된 탄수화물을 줄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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