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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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
  • 손수자 수필가
  • 승인 2022.01.2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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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르신이 도시에서 살다 온 우리 부부에게 꼬마 지게를 만들어 주셨다. 지게를 요리조리 들여다보며 섬세한 솜씨에 감탄한다. 지게에는 발채(싸리나무, 대나무 등 부스러기 짐을 나를 때 사용함)도 달려 있다. 어르신이 침침한 눈과 굳은 손마디로 이 정교한 작품을 만드셨다니 놀랍다. 

한 노인의 생애를 엮은 물건이라 여기니 결코 소홀히 다룰 수 없다. 정성을 모아 손수 만든 것이야말로 최상의 선물이 아닐까. 

어르신은 어려서부터 두메 산골 높은 산을 오르내리며 봄 여름에는 산나물을, 가을에는 각종 버섯을 따고 겨울엔 땔감을 지게에 지고 나르셨다. 짐 진 지게가 가족을 부양하는 무거운 삶의 무게였지만 무거운 줄 몰랐다. 이제는 기력이 쇠진하여 지게를 벗었지만 마음의 지게는 벗지 못하신 것 같다. 출가시킨 삼남매와 손주들이 늘 눈에 밟히시는 듯하다. 

지게는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가지가 달린 소나무를 다듬어 몸통 만들고 철사를 불에 달구어 네 쌍의 구멍을 냈다. 거기에 단단한 나뭇가지로 만든 세장을 끼웠는데 위는 간격을 좁게 하고 아래는 넓게 하여 안정감이 있다. 지게에 등이 닿는 부분은 볏짚을 곱게 다듬어 도톰하게 엮어서 달았다. 등태라고 한다. 무거운 짐을 져도 등이 배기지 않고 편안할 것 같다. 멜빵은 포장용 붉은 비닐 끈을 알맞은 넓이로 갈라서 세장 위아래에 매었다. 맨 솜씨가 깔끔하고 매듭이 야무지다. 

지게에 올려놓은 발채는 또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볼수록 감동이다. 이쑤시개 굵기쯤 되는 느릅나무 잔가지를 매끈하게 다듬어 검은색 비닐 끈으로 촘촘하게 둥근 모양으로 엮었다. 여인의 손끝으로도 엮기 까다로울 세밀한 작업을 84세 어르신이 박음질하듯 만드셨다. 차라리 큰 지게를 만들기가 훨씬 쉬웠으리라. 

지게는 아련한 그리움이다. 지게가 서 있는 고향 집 마당과 지게를 지신 아버지 모습이 생생하다. 자식들의 그릇된 버릇을 즉석에서 바로잡으려고 마당에서 아버지가 지게 작대기로, 부엌에서는 어머니가 부지깽이를 휘두르면서 쫓고 쫓기던 그 찡한 풍경이 그립다. 

산에 가서 땔감을 구하여 지게에 켜켜이 쌓아 짊어지고 집으로 가던 동네 사람들, 봄이면 나뭇짐에 진달래꽃도 꽂혀 있었다. 홀로 사는 이웃 아주머니와 까까머리 소년도 힘겹게 나뭇짐을 졌다. 

우리 집 마당에서 벼 타작하는 날, 발로 밟아 돌리는 탈곡기가 와랑와랑 소리 내며 벼를 떨어낸 짚단을 지게에 지고 가는지 끌고 가는지 구분이 안 되는 아이도 있었다. 내가 그랬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그러기에 지게는 사람의 체형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크기로 만들었다. 자기 몸에 알맞아야 무거운 짐을 편히 지고 나를 수 있는 것이다. 삶의 무게처럼…. 

지게도 어느 것을 지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나무를 지면 나뭇지게, 물을 지면 물지게, 꽃을 지면 꽃지게다. 옛날 인분으로 농사짓던 시절 똥장군 지게도 있었다. 

오늘까지 내가 진 지게는 어떤 것이었을까. 뒤돌아보니 소녀 시절의 꿈지게, 청춘의 욕망지게, 그리고 자식들을 위해서는 똥장군지게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었다. 예쁘고 향기 나는 꽃지게만 지고 싶었지만 세상만사 어디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꼬마 지게 멜빵을 검지와 약지를 어깨 삼아 걸었다. 손가락을 펴서 세우면 반듯하게 서고 손가락을 구부리면 고꾸라진 모습이다. 어린 시절, 지게에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일어서다가 균형을 못 잡아 옆으로 넘어지던 동네 아저씨 모습이 언뜻 스친다. 그 광경에 철없이 깔깔대던 아이들 모습도…. 

손등의 꼬마 지게가 슬며시 몸을 돌려 발채를 들이댄다. 무거운 마음의 짐 있으면 혼자 지지 말고 나누어서 지잔다.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세상, 갑갑하고 응어리진 마음도 나누자며 마주 보고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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