以人爲鏡(이인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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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人爲鏡(이인위경)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2.01.2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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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말기, 와강군에 들어간 위징(魏徵)이 황태자 이건성의 시종관으로 있을 때 진왕 이세민을 제거해야 한다고 수 차례에 걸쳐 권유했다.

어느 날 누군가가 위징이 이세민을 죽이려고 했다고 고발했다. 이세민은 위징을 불러다 물었다. 

“네놈은 어찌하여 우리 형제 사이를 이간질했느냐?” 그러자 위징은 당당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만일 황태자께서 소신의 말을 들었더라면 오늘과 같은 일은 당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좌우 대신들은 위징이 죽을 말을 했다고 손에 땀을 쥐었다. 

그러나 이세민은 도리어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위징의 정직함을 높이 산 이세민은 그를 간의대부(諫議大夫)로 임명했다. 

626년, 태종이 장병을 징집할 때 한 대신이 18세가 안 되어도 키가 크고 몸이 건장한 남자라면 징집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태종은 이를 받아들여 조서를 작성했는데 위징이 그 조서를 하급 기관으로 내려보내지 않았다. 태종이 여러 번 재촉했지만 위징은 말을 듣지 않고 조서를 발송하지 않았다. 노기충천한 태종은 위징을 불러 엄하게 꾸짖었다. 

“짐의 조서를 깔고 앉아 발송하지 않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느냐?” 그러자 위징은 이렇게 대답했다. “신은 폐하의 조서에 찬성할 수 없사옵니다. 군대가 강대한가 강대하지 못한가는 사람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군사를 어떻게 훈련하고 어떻게 지휘하는가에 달려 있사옵니다. 이는 연못과 물고기의 관계와 같사옵니다. 연못의 물을 다 없애면 한꺼번에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지만 나중에는 잡을 물고기가 없어지게 됩니다”

태종은 위징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았다. 그러자 위징은 좀 더 언성을 높였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말씀대로 하지 않으신 것이 벌써 몇 번째입니까? 이러시면 백성들의 신뢰를 잃게 됩니다” 

태종은 말문이 막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불편한 심기를 가라앉히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으며 18세 이하의 남자는 징집하지 않는다는 조서를 새로 내렸다. 

한번은 태종이 낙양을 순시하러 가던 길에 소인궁(昭仁宮)에 머물렀는데 음식 대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크게 화를 냈다. 

그것을 본 위징은 면전에서 태종에게 직언을 했다. “수 양제가 유람할 때 백성들이 바치는 음식이 좋지 않다며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늘 허덕였으며 그로 인해 수나라가 망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이를 교훈으로 삼으셔야 합니다. 오늘의 이 같은 음식에도 만족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욕심대로 하신다면 이보다 만 배나 좋은 진수성찬을 차린다 해도 만족하시지 못할 겁니다” 

이 말을 듣고 태종은 깨달은 바가 많아 고개를 끄덕였다. “경의 말이 일리가 있네. 경이 깨우쳐주지 않았다면 큰일을 그르칠 뻔했네”

643년, 나이 예순셋인 위징이 중병에 걸렸다. 태종은 자주 위징한테 사람을 보내 병문안을 하도록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위징의 병이 위급하다는 전갈을 받은 태종은 황태자를 데리고 급히 위징의 집으로 갔다. 태종은 슬픈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경은 할 말이 없소?” 위징은 꺼져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 “소신은 나라의 안위가 걱정되옵니다. 지금 천하는 안정되고 나라는 창성하옵지만 폐하께옵서는 이런 태평성대일수록 위태로울 때를 생각하시고 이를 대비하셔야 하옵니다” 태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꼭 명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에 위징은 세상을 떠났다. 태종은 매우 비통해했으며 자신이 직접 묘비의 비문을 썼다. 이후로도 위징을 잊지 못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는데 하루는 조정 대신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면 의관이 바른지를 알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나라의 흥망성쇠의 도리를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잘잘못을 알 수 있는 법이오. 위징이 죽었으니 나는 거울을 잃어버린 것이오” 위징의 충직한 간언과 태종의 충언을 잘 받아들이는 자세 덕분에 당나라는 큰 번영을 누렸다. 

작금의 시대는 위징이 살던 시대와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세상 살아가는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게 없다. 당시에도 권모와 술수가 횡행했으며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하다. 오히려 더 치밀하고 조직적이며 잔인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지도자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그 첫 번째로 귀가 깨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출중한 능력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귀가 깨어 있지 않으면 언제 어떤 화를 당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바로 그러한 위기를 대비해서라도 자신에게 쓴 말을 해주는 그런 사람을 반드시 곁에 두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옥천군은 위징과 같은 직언을 해주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고 싶다. 

분명한 사실은 그러한 직언을 해주는 사람은 결코 사익을 취하려 하기보다는 5만 옥천 군민의 삶을 위한 직언일게다. 

일이 터지고 난 후에 하는 후회는 자신의 무능력을 표출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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