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구검(刻舟求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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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구검(刻舟求劍)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3.03.2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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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 가운데 하나가 융통성이 없는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다. 그들을 대하다보면 가끔은 숨이 막히고 답답하기 그지없음을 느끼게 된다. 물론 그들의 주장대로 원리원칙을 고수, 불특정다수에게 평등하게 대하기 위해 그런다고 하지만 그러한 말을 듣는 입장에서는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자칫 고집불통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때는 중국 춘추전국 시대 초나라. 한 뱃사공이 양쯔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품에는 그가 가장 아끼는 칼 한자루가 들어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을 노를 저어가던 그때 그만 그의 품 속에 있는 칼이 강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자신의 목숨과도 같이 소중하게 여기던 칼이었던지라 그는 즉시 칼이 빠진 곳에 또 다른 작은 칼을 꺼내어 자국을 표시해 놓았다. ‘칼이 떨어진 자리에 표시를 해 두었으니 잠시 후에 찾으러 오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후 배가 언덕에 닿자 조금 전 작은 칼로 표시를 해 두었던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강 밑바닥을 훑어 보아도 칼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뱃사공은 배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단순히 칼이 물에 빠진 자리만 표시해 놓으면 되는 줄 알았다.
진나라 장군 백기(白起)가 조나라 효성왕에게 편지를 썼다. 염파 장군 대신 조괄을 대신 전장에 보내는 것이 낫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읽은 효성왕이 염파 장군 대신 조괄로 대체하려 하자 이때 인상여가 반대 상소를 올렸다. 

“조괄은 단지 병법의 이론에만 통달할 뿐 전장에서의 여러 가지 변화에 대처하는 융통성이 없다”라는 내용으로. 그러나 인상여의 애정 어린 충고를 듣지 않은 효성왕은 끝내 조괄을 전장에 보내 결국 대패하고 말았다.

작금의 옥천군을 보면 마치 물 속에 빠진 칼을 찾으려는 뱃사공과 애정 어린 충고를 받아 들이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는 효성왕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취하는 민원태도를 보면 이해를 하다가도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얼마든지 자신의 재량으로 민원을 처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이라고 하는 틀에 얽매여 충분히 가능한 것도 ‘불가능’으로 처리해 버린다. 다시 말해, 그들이 주장하는 ‘법’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도 얼마든지 가능한데도 무조건 원리원칙만 고집한다는 얘기다.

물론, 공무원이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업무를 진행하면 곤란하다. 당장에 민원인의 사정을 들어주기 위해 편의를 봐주었다가 훗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메랑이 되어 꽂이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 말고도 상식적으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가벼운 일마저 법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디 사람이 법으로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건가, 도덕적으로 처리할 수 없을 때 비로소 법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야지 처음부터 무조건 법만 운운한다면 결국은 그러한 법을 맹종하는 당사자도 언젠가는 법에 의한 제약을 받게 되어 있다. 

갈수록 사람살이가 힘들어지고 있다. 돈이 없어 힘든 것도 있지만 갖가지 정책과 법들이 사람들의 행동을 제약하고 있어 팍팍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때일수록 가능하다면 법보다는 ‘도덕’, 아니 ‘상식’이 먼저 선행되어지는 그런 사회가 필요한게 아닐까,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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