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에 생명을 불어넣는 마지막 ‘화룡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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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에 생명을 불어넣는 마지막 ‘화룡점정’
  • 이성재기자
  • 승인 2016.10.06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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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와 모양에 따라 족자·액자·병풍 등으로 구분
세 곳이던 표구사 현재 한 곳만 남아 명맥 유지
표구는 작품의 보호와 감상의 목적이 주된 과제
옥천읍 ‘좋은화랑표구사’ 정한영(52) 대표.

일반적으로 표구라 하면 작품을 유리 액자에 끼우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전통표구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많은 정성이 들어간다. 표구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작품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표구는 형태에 따라 족자, 액자, 병풍 등으로 구분되는데 주택이 점차 서구화됨에 따라 요즘은 대부분 액자 모양으로 표구된다.

액자표구의 작업과정은 우선 비단을 마름질하고 서화의 한지를 발라 덧대는 배접에 들어간다. 풀을 고루 먹여 고정시키고 그림을 널어 잘 말리는 배접 과정은 중요하다. 다음에 잘 마른 것을 뜯어내고 비단을 붙인다. 이 때 그림과 비단사이에 금선이나 색지를 쓴다. 이것을 그사이 마련해둔 액자에 틀에 올려 완성한다.

족자나 병풍의 표구도 같은 배접 과정을 거치는데 병풍은 여러 폭을 잇기 위해 삼베, 비단, 광목 등으로 돌쩌귀를 달며 족자는 반달과 축목을 붙이고 축머리를 끼워 맞춘 다음 장식과 족자 끈을 달아 완성한다.

좋은 재료와 제대로 된 기술로 배접이 된 표구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상태를 유지한다. 작품의 진정한 완성도를 결정하는 건 이 배접 과정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한영(52) 대표의 노련함은 바로 이 배접 과정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좋은 화랑 표구사' 전경.

어떤 재료로 그려진 작품이냐에 따라 풀의 농도와 종이를 두드리고 문지르는 강도를 감각적으로 조절해야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면 작품의 색이 번지거나 배접지에 배어나오는 등 작품을 망칠 수 있다.

정 대표는 “배접 기술은 단순히 방법을 배운다고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10년 이상의 내공을 쌓아야 얻을 수 있는 노하우”라고 강조했다.

■ 큰 형인 정천영 화백의 권유로 시작.

옥천읍 양수리가 고향인 정한영 대표는 삼양초, 옥천중, 옥천고를 졸업하고 1985년 서울로 상경해 직장생활을 하던 중 그림과 글을 좋아하던 그에게 당시 서울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큰 형인 정천영 화백의 권유를 통해 1990년부터 표구 일을 시작하게 됐다. 정 대표는 바로 인사동에 위치한 ‘수아당 표구사’와 ‘삼성당 표구사’에서 본격적으로 표구하는 법을 배웠다.

서울에서 5년 동안 표구 일을 배운 그는 대전 대흥동에 있는 ‘동춘당 표구사’에서 1년간 표구사로 활동하다가 고향인 옥천으로 내려와 1996년 8월에 옥천읍 삼양리에 ‘좋은화랑표구사’를 개업하면서 표구 일에 매달리게 됐다.

‘좋은화랑표구사’는 옥천읍 삼양리 현 대리운전 자리에서 20년, 그리고 맞은편으로 이전해 6년이 넘었으니 벌써 26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 사이 작업량도 크게 줄어 5년 전만해도 밤을 새울 정도로 일거리가 많았지만 지금은 쉬엄쉬엄 하는 정도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글씨나 그림 등이 생기면 제대로 표구해서 귀하게 걸어두던 과거와는 달리 언젠가부터 현대적 감각으로 디자인된 사진이나 그림액자를 선호하는 세상이 됐다.

전국적으로 표구사들이 하나둘 사라져 명맥만 잇고 있는 이유다. 옥천에도 3곳이었던 표구사가 한 곳만 남게 됐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기술이 뛰어났다는 의미다. ‘좋은화랑표구사’는 옥천군 지역에 있지만 정 대표의 솜씨를 알고 대전이나 강원도에서 까지 찾아온다.

정 대표는 “예전에는 예술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그림이나 글씨를 가지고와 표구를 요청하는 일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예술제나 전시회를 위해 찾아오는 고객들 아니면 별로 없다”며 “사양 사업으로 접어들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표구 업계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수목화 액자.

■ 글씨나 그림이 주인이 되도록 보조.

병풍, 액자, 족자 등 표구는 수작업이 많은 공정으로 병풍이 손이 제일 많이 간다. 보통 병풍을 완성하는데 보름 시간이 소요되고 족자는 1~2주 정도 액자는 1주일이 걸린다. 표구의 차이가 작품의 차이를 만든다고 여기는 정 대표는 표구의 틀 하나까지도 직접 만들어 썼다. 작품의 가치를 높이는데 무엇 하나 허술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자신보다 더 좋은 틀을 제작하는 목공소를 알게 된 이후로는 틀의 규격화를 위해 그 목공소 제품만 납품받아 사용하고 있다. 마무리 작업 역시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직접 수작업을 한다. 시간이 다소 걸리고 힘이 들어도 다른 방법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작품에 물 한 방울 잘못 될까 늘 표구하는 작품 하나하나를 아기처럼 애지중지 다룬다는 그는 항상 같은 마음과 자세로 일해야지만 표구의 완성도를 최대한 높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겉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것이 표구가 아니라 작품의 보존 상태와 가치를 오랜 기간 변함없이 지켜내는 것이 진정한 표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글씨나 그림이 주인이 되도록 돋보이게 만들고 표구는 보조를 맞출 뿐이다.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않고 주위 배경과 어울릴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진정한 표구 작업이다. 사람에게는 옷이 그 사람을 표현하듯이 작가의 혼을 담아 그리거나 써낸 예술작품은 표구가 옷 이상의 역할을 한다. 잘된 작품도 표구 과정을 거쳐야 진가와 함께 빛을 더 발한다.

정 대표는 “표구는 일반액자와는 달리 그림과 글씨에 따라 그에 맞는 옷을 입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며 “작가들의 소중한 작품들을 상대해야 하는 만큼 작품을 더 돋보이게 하려면 모양, 채색 등을 고려해 표구를 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작품만 봐도 어떤 표구가 어울릴지 한눈에 들어오지만 자만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작업하면서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서화 없으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어.

표구는 서화에 종이나 비단을 발라 꾸미고 나무와 기타 장식을 사용해서 족자, 액자, 병풍 등을 만든다. 서화가 없으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표구이다 보니 전통문화의 한 분야이지만 서화의 작품 어느 작가인지 알아도 표구는 누가 만들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유명한 작품은 기억해도 그 작품을 표구한 기록은 남지 않으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표구를 만지는 표구사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전통문화의 한 부분을 지키고 가꾸어 오고 있지만 작품의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게 표구사의 역할이다.

표구는 작품의 보존과 보호, 작품의 감상을 위한 두 가지의 목적으로 진행되는 작업이다. 표구한 작품과 표구하지 않은 작품을 비교해본다면 표구의 가치를 더 잘 알 수 있다. 표구 하나만으로도 작품의 격이 달라진다. 그러나 다른 작품과 공존하는 표구의 특성상 사람들 역시 이를 하나의 작품으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 대표는 “누가 알아주지 않는 작업이지만 작품을 믿고 맡기는 고객들이 있어 표구 일을 그만둘 수 없다”며 “오랜 기간을 들여 예술작품을 대하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작업하다보면 아쉬움이나 스트레스는 한순간에 다 날아간다”고 말했다.

표구 작업 중 풀칠을 하고 있는 정한영 대표.

■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리 지키고 싶어.

작품의 색 번짐이나 종류에 따라 표구 법은 다양하다. 그 부분을 잘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정 대표는 평거 김선기 선생에게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고 현재는 일각 정진영 선생을 찾아 글을 배우고 있다. 그의 작품을 직접 표구하면서 항상 공부하는 마음을 가지고 앞으로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정 대표는 “앞으로 얼마나 이 일을 할지는 모르지만 좋은 글과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일이 끊이지는 않을 것 같다”며 “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예술인들을 위해 끝까지 장인정신을 갖고 이 자리를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언젠가는 이쪽으로 더 매진하고 서예, 그림 등을 배우며 작업을 병행하면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놓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표구 일은 1년 중 4~5월과 9~11월이 성수기이고 나머지는 비수기로 전시회, 예술제 등이 몰려 있는 봄과 가을에 일이 많다. 작품은 크기와 형태 별로 가격 차이가 있지만 병풍의 경우는 폭 당 6~10만원, 액자는 5~10만원, 족자는 3~6만원에 표구할 수 있다. 표구와 작품 문의는 좋은화랑표구사(☎731-5798)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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