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선생 업적·학문 콘텐츠로 개발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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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선생 업적·학문 콘텐츠로 개발돼야”
  • 이성재기자
  • 승인 2016.10.1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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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옥천문화원서 학술세미나 열려
지난 7일 옥천문화원 문화교실에서 ‘중봉 조헌 선생 학술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제41회 중봉 충렬제의 일환으로 그의 뜻을 기리고 재조명하는 중봉 조헌선생 학술 세미나가 지난 7일 옥천문화원 문화교실에서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는 조헌 선생의 14대손인 조동주 군의원을 비롯해 손자용 부군수, 김승룡 옥천문화원장과 이하준 김포문화원장, 김포 주민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중봉 조헌(1544~1592) 선생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충남 금산 전투에서 7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싸우다 순국한 의병장이다. 1544년(중종 39년) 경기도 김포현 감정리에서 태어난 조헌은 김황에게 수학하고 성균관에 유학했으며 24살 때과거에 급제한 이래 예조좌랑, 통진현감, 공조좌랑, 전라도사, 종묘서령 등을 임했다.

1574년(선조 7년) 명나라에 파견돼 녀온 후 명나라의 제도를 참작해 개혁을 하자는 ‘팔조소’와 ‘십육조소’가 안방준의 ‘동환봉사’를 통해 알려지면서 조선이 개혁해야 할 점들을 짚어낸 개혁가이기도 하다. 다수의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경제와 군사 등과 같은 실제적 사안을 멀리한 반면 그는 외세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이러한 사안들이 중요하다고 인식했다.

이번 세미나는 중봉 조헌 선생의 리더십과 우국정신, 역사문화 콘텐츠 개발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이하준 김포문화원장은 ‘중봉 조헌 선생의 리더십’이라는 주제발표로 진정한 리더십과 중봉 선생의 실천적 리더십에 대해 설명했다.

이 원장은 “중봉은 수많은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냉철한 현실인식과 합리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창의기병과 차령전투, 청주성 탈환, 금산전투에 이르는 초인적인 리더십을 보였다”며 “이와 함께 비전과 대안을 끊임없이 제안하고 최고의 동지들과 파트너십을 형성한 것이 하나로 융합돼 실천적 리더십으로 발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충남대 송백헌 명예교수는 ‘중봉의 우국정신’을 주제로 중봉 선생의 의리정신을 바탕으로 그의 학문과 정치적 활동, 보좌한 참모들을 살피고 그가 지닌 사상의 면모를 발표했다. 송 교수는 “애민정신으로 잘못된 제도와 정책을 과감하게 개혁할 것을 주장하고 투철한 역사의식과 애국정신으로 국가의 존망의 위기에서 순절한 중봉 선생의 삶과 사상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진호 前 여주대 교수는 ‘중봉 조헌선생 역사문화 콘텐츠 개발’ 주제발표로 문화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미래의 전략산업이라는 관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투자와 육성에 대해 설명했다.

이 前 교수는 “중봉 선생의 선양과 옥천군의 경제성장, 군민의 역사적 자부심 형성 등을 위해 그의 업적과 폭넓은 학문을 대중적이고 경제적, 문화적 파급효과가 큰 문화콘텐츠로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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