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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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 박미련 작가
  • 승인 2024.05.2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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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드라마 <화양연화>는 삶이 꽃이던 순간으로 나를 단숨에 데려간다. 주인공의 리즈 시절이 그때의 나를 일깨운다. 기억도 가물거리던 그곳이 아직도 찬란히 빛나고 있다. 사위는 정적 속에 잠기고 난 어느새 그날의 중심에 서 있다. 거리 투쟁하느라 몸은 물에 젖은 솜뭉치 같지만, 가슴은 심해에서 갓 건져 올린 물고기처럼 펄떡인다. 한낮의 열기는 뜨거운 함성으로 절정을 긋는다. 나도 함성 때문인지 햇살 때문인지 내달리는 가슴을 멈출 수 없다. 외치고 맞서다 쓰러지기까지, 감히 권력에 맞짱을 뜨던 그날이 드라마와 함께 여기, 내게로 성큼 다가오는 게 아닌가. 드라마는 이렇게 전개된다. 쉰 줄에 접어든 두 남녀, 과거의 그는 학생운동의 선봉 에 섰고 피아노 선율처럼 여린 여자는 그런 남자를 신기해 하다가 사랑에 빠진다. 남자가 있는 공간이면 어디든 좋다. 함께 스크럼을 짜고 철거촌 원주민의 어깨가 되어준다. 한 곳을 바라보며 둘은 깊이 사랑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헤어지고 만다. 시류에 떠밀린 남자는 혼자가 되어 목숨처럼 지켜온 신념을 부정하고 낯선 세상에 발을 디딘다. 대기업 총수의 사위가 되어 노동자의 수고를 가로채는 무뢰한으로 전락한다. 부정한 세상에 발맞춰 살아낸 대가로 부를 얻는 동안, 여자는 남자에게 배운 대로 약자 편에 서서 고단한 하루를 마감하는 중이다. 그들은 20년의 세월을 넘어 기적같이 다시 만난다. 남자는 여자를 통해 오늘의 자신과 마주한다. 불편하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다. 현실은 누추하나 빛나는 그녀의 눈빛에서 두려울 것 없이 당당하던 자신의 지난 시절을 떠올린다. 그간 뭘 위해 살았단 말인가.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닥치는대로 움켜쥐었는데, 돌아보니 허망할 뿐이다. 여자가 새로운세상을 선물하기 시작한다. 원 없이 버리는데 오히려 차오르는 충만함을 경험하면서 그는 결심한다. 잃었던 신념을 되찾기로, 그녀를 처음 만났던 순간으로 돌아가기로.상대에게 투영된 자신을 냉정하게 들여다볼 줄 아는 남자가멋지다. 그런 남자를 기다려주는 여자는 더욱 우아하다. 그들속에 나의 화양연화의 날들이 숨어 있어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러고도 오랫동안 펌프질을 해대던 가슴은 기어이 머리를 시켜 그날의 기억을 하나둘 소환시킨다. 호헌 철폐, 민주 쟁취라는 구호 아래 우리는 하나였다. 모두의 가슴이 이미 용광로여서 우리 사이에 불순물이 끼어들 틈이 없다. 순수의 결정체로 남아 영원히 그 자리를 지킬 듯이 앞만 보고 달렸다. 그렇게 단련된 강철도 점점 세월에 힘을 잃어갔다. 애끓는가족 사랑이 가던 길을 방해하더니 건강 문제가 결정타가 되었다. 삼십 대를 휘청거리느라 학창 시절 뜨거웠던 가슴은 시나브로 식어갔다. 되새김질은 소나 하는 짓이라 믿고 생의 되돌이표는 어떤 순간에도 찍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가던 길을 벗어나니 자갈밭처럼 거칠었다. 이미 이탈하여 갓길에 서있던 사람들은 죄다 나만 바라보고 있다가 보란 듯이 비웃는 것 갔았다. 그들이 건네는 말속에 뼈가 있고 난 뼈만 보는 묘한 재주가 있었다. 그 뼈는 비수가 되어 거침없이 날아와 폐부를 찌르곤 했다. 다행히 아이를 키우면서 그날의 함성을 죄책감 없이 잠시접어둘 수 있었다. 주변을 맴돌던 그것들을 잊을 만큼 나를 필요로 하는 일거리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아이들과 더불어 무사한 하루에 감사했다. 생의 이면에 쟁여둔 그날이 들불처럼 되살아날 때는 하루를 더 조바심치며 위태롭게 보냈다. 능력보다 주어진 일이 버거워 오히려 감사한 나날이었다. 분주한 일상이 그날의 열정을 다독이고 서서히 잠재워갔다. 이심전심,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친구 셋이 대전에서 결연히 뭉쳤다. 과거의 남자 둘은 백발이 성성하여 나타났다. 세월이 준 거리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설익게 웃으며 자꾸 소주잔만 축내는 걸 보니 그들도 나만큼 어색한 게다.  그런데 술이 있다. 얼마나 다행한가. 술은 참으로 힘이 세다. 취기가 오르니, 그들이 가까이 온다. 선한 눈동자, 하회탈 같은 미소를 머금고 기업의 대표가 아니라 그 시절 손을 잡고 달려주던 가슴 따뜻한 동지의 모습이다. 친구도 벌써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그날을 더듬느라 눈동자가 분주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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