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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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49)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4.06.13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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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약속한 전날에 총장도 함께 나온다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하지만 나는 총장을 만날 이유도, 만날 마음도 없었다. 총장이 나오면 우리 약속을 다음으로 미루자고 했다. 내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결국 부총장 혼자 나오겠다고 문자가 왔다. 만난 자리에서 내가 먼저 물었다. “해외 출장 중에 저와는 아무런 협의 없이 갑자기 부총장 발령을 내 려 했던 이유가 뭔가요? 더욱이 지금 총장 퇴진문제로 학교가 몸살을 앓고 있는 이때 부총장직 재청이라니요?”“학장님이 평소 대학 운영의 자율성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부총장직을 겸해 운영하시면 간호대학을 더 자율적으로 발전시킬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부총장 자리를 안 줘도 총장이 만기친람식 간섭만 하지 말고 간호대학을 내게 믿고 맡기기만 하면 자율적으로 잘 운영할 수 있으니 부총장직은 거절하겠습니다.” 하지만 부총장은 굽히지 않고 “학장님이 간호대학도 성신에 가져와서 신설한 공로도 있으니 대우해드려야 하고요.” 하며 부총장을 맡아줄것을 종용했다. “간호대학이 온 지 6년이나 지난 지금 간호대학을 신설한 공로로 부총장을 준다고요? 그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그리고 부총장님도 학장으로계실 때 오히려 더 총장을 비판하더니 이제는 총장 측근이 되셨나요?” “제가 총장을 돕는 것은 제 소신입니다. 그리고 총장님과 화해하시고 잘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목소리를 높여 “화해라니요? 나도 국립대학 총장도 해봤지만, 성신이라는 사립대학에 와보니 자칭 오너 총장은 왕이더군요. 내가 바보가 아닌 한 왕 같은 절대권력자인 총장과 싸움을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옳지 않은 일에 무조건적 복종은 할 수 없었지만, 그간총장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도리는 다했다고 생각하는데 무슨 화해할 일이 있나요? 총장 기분에 따라 관계설정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지 나와는 무관한 일이니 총장과 화해할 일 자체가 없을 겁니다. 총장에게 전해주세요. 교수들의 총장 퇴진운동을 무마시킬 마음에서 나를 부총장에 올렸다면 그건 오산입니다. 아무리 종용해도 부총장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요. 지난번 적십자 간호대학 건이 있은 후 나는 내 머리 속에서 총장이라는 존재를 지우지 않고는 자존심이 상해 성신에 더 이상 몸담고 지낼 수가 없으니 나는 잊어주시라고 전해주세요.”그 후 내가 부총장직을 고사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교수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고 더러는 내게 부총장직으로 고사한 게 진짜냐며 물어왔다. 부총장 발령을 받으면 대우도 받고 학교 퇴임을 한 후에도 호칭이 부총장인데 왜 고사를 하느냐고….총장 퇴진 움직임이 있는 이 시기에 나를 부총장으로 임명하는 데는 다 그만한 뜻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선비는 외밭에서 갓끈도 고쳐 매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35년 만의 마침표, 
정년퇴임식

학교의 총체적 난국에도 불구하고 세월은 흘러 어느새 나도 남의 일로만 알았던 정년퇴임을 앞두게 되었다.2014년 2월, 드디어 35년여의 교수 생활을 마감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하지만 학교는 총장 해임 건을 비롯한 총장과 이사회, 총장과 교수들 간에 벌어진 고소, 고발 건으로 학교는 혼란 그 자체였다. 더욱이 총장 연임이 확정되면서 총체적 난국이었다. 교수회는 여전히 총장과의 일전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즈음 학과장이 내 방에 와서 말했다. “학장님 정년퇴임식을 학과에서 해드리려 하는데, 논문 봉헌식에 필 요한 학장님 논문집을 저희가 만들려고 하니 그간 집필한 논문들을 다주세요.”그 말을 듣고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무슨 정년퇴임식이요? 논문 봉헌식요? 그런 거 하지 마세요. 가뜩이나 바쁜 교수들인데, 내 논문 정리해서 논문집 만들 시간이 있으면 각자 승진에 필요한 논문 한 편이라도 더 쓰라고 하세요. 서로 모여 앉아서 전처럼 정답게 퇴임식하고, 식사할 마음들 아니잖아요?” 그렇게 퇴임식은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며칠 후 평소 특별히 나를 챙겨주시던 국립의료원 총동문회 최규옥 회장이 내 정년퇴임 소식을 듣고는 학장실을 방문했다. “총동문회에서 300명 정도 초청하여 송 학장 퇴임식을 가질 계획입니다. 총동문회에서 교수 퇴임식을 열어주는 것은 송 학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예요.” 이때도 나는 완곡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최 회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300명이 아닌 50명 정도의 조촐한 퇴임식이면 참석하겠다는 내조건을 받아들이면서 퇴임식은 하기로 결정되었다. 초청 대상자는 성신교수회, 성신 교정에서 정든 교수들, 평가원 이사, 간호계 인사들로 정해졌다. 행사 준비는 총동문회와 정명실 교수가 맡았다. 학과 교수들에게도 일단 초청장은 보내자는 정 교수 의견에 동의했다. 드디어 내 인생에서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던 그 날이 왔다. 시시때대로 간호학에 대한 회의가 있었지만,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아온 지난날들이 스치며 영원할 것만 같았던 학교생활이 그 끝을 드러내고 있음에 만감이 교차했다. 힘들 때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다독이며 살다보니 내가 학교를 떠나는 날이 오긴 오는구나! 먼저 최규옥 동문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개인교수 퇴임식에 전례 없는 전·현직 회장의 참석으로 간호협회장인 신경림, 성명숙 회장의 축사 가 있었다. 그날 송사는 33년 세월을 나와 함께 동고동락한 정명실 교수가 맡았다. 초청인들은 빠짐없이 참석했으나 정작 어려운 시기를 동고동락했던 우리 교수들은 몇 명이 보이지 않았다. 가슴 한구석이 빈 것 같은 느낌은 숨길 수 없었다. 길고 짧은 세월을 함께했던 정든 사람들과 교수 생활의 마지막 의미 를 함께 나눈다는 일은 가슴 따뜻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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