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비싼 강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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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비싼 강냉이
  • 이흥주 수필가
  • 승인 2024.07.0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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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들 주려고 해마다 옥수수를 심는다. 어린 손주가 오물거리고 옥수수 따먹는 걸 생각만 해도 행복한 게 할머니 마음인지라 집사람은 해마다 옥수수를 정성들여 심고 가꾸고 한다. 난 그런 소소한 것 까지 하기가 귀찮아 신경 안 쓰지만 할머니 마음은 다르다. 옥수수나 땅콩 같은 것을 열심히 심고 가꾸며 엄청 즐거워한다. 그 마음 너머에는 언제나 올망졸망 이쁜 손주들의 얼굴이 자리하고 있다.

해마다 조금만 심더니 올해는 제법 사래가 긴 곳을 택해 세골이나 심어 가꿨다. 옥수수도 굉장히 잘 자라서 곧 수확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맘 편하게 손자 입에까지 가기에는 건너야 할 강이 있다. 자연환경은 사람이 마음 편히 살게만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까치는 사람과 가장 친근한 새였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한데 이게 유해조류로 낙인이 찍히고 부터는 사람에게 너무 피해를 많이 준다. 옥수수가 열흘 정도 지나면 따도 될 정도가 됐는데 난데없이 까치 떼가 달려들어 파먹기 시작했다. 까치와 손을 잡고 꿩까지 가세해서 잔치를 벌인다. 기가 막힌 것이 잘 자라서 먼저 익은 것부터 귀신같이 찾아내어 그 실한 옥수수 대를 넘어트리고는 속을 파먹으며 냠냠 맛있어 죽는다. 까치와 꿩은 몸무게가 나가기 때문에 옥수수 대에 타고 앉아 쪼면 대까지 꺽여 넘어간다. 그러면 땅바닥에서 편안하게 앉아 식사를 즐긴다. 반쯤 익은 달짝지근한 옥수수가 얼마나 맛있겠는가. 2,~30분 만에 열댓 나무씩 넘어간다. 사람이 없으면 정신없이 먹다가 다가가면 우 하고 날아간다. 쑥대밭이 돼가는 밭을 보노라면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다.

누가 농사를 진건데 제 놈들이 잔치를 벌이는가. 머리칼이 곤두서지만 방법이 없다. 돈 들여 망을 사서 덮어씌울 수도 없고 그런 노력을 들일 힘이나 시간도 없다. 그냥 두 손 놓고 보고 있을 수 밖에, 옆에서 지켜도 잠깐 맘을 놓으면 우 달려든다. 지키는 것도 못한다. 새벽부터 어둑어둑 땅거미까지 피해를 주는데 어떻게 지키는가. 지키는 사람 열 명이 도둑 하나 막기 힘들단 말도 있지 않은가. 한 마디로 속수무책이다.

포기를 하고 있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미 50프로 이상이 절단 났지만 나머지라도 지키자고 마음을 바꿨다. 까치와 꿩이 먹어치운 게 잘 되고 실한 것 뿐이다. 나머지는 찌지리들이다. 그래도 이걸 포기한다면 그동안 들인 노력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애써 가꾼 농작물을 저런 하찮은 유해 조류에게 먹이로 제공한다는 것이 화가 나서 참을수가 없다. 농사랄 것도 없는 크지 않은 밭뙈기 소농이지만 지금은 내 감정이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한다면 위선일 것이다. 아마 요즘 혈압이 좀 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옥천 시내에 나가 철물점에서 모기장같이 구멍이 아주 작으면서도 보드라운 망을 구입했다. 망 구멍이 크면 부리를 넣고 쫀다. 그걸로 집사람과 둘이 땀을 뻘뻘 흘리며 한나절이나 걸려 옥수수나무를 덮어씌우다시피 둘러쳤다.

농사는 최고의 노동력으로 아침부터 저녁 어스름까지 하는 일이다. 이건 내 집 일에 8시간 근무라는 것도 없고 주 5일 근무도 없다. “하! 이 돈, 이 노력이면 사서 먹는게 싸겠다. 몇 년은 손주들에게 사주어도 되겠다.”나는 허공에 대고 허허 웃었다.

이 와중에도 극성맞은 까치는 야단스레 근처까지 날아왔다간 우리를 보고 되돌아간다. “망할 놈들, 이제 망을 쳤으니 이 맛난 걸 못 쳐 먹어 어떻게 하냐!” 여기에 다 옮길 수가 없어서 그렇지 이보다 더 심한 최고의 욕을 퍼부었지만 그런다고 풀어질 속도 아니었다. 올핸 옥수수도 아주 실하게 돼서 속이 더 상한다. 중간쯤 익은 이게 말랑말랑 달 테니 얼마나 맛나겠는가. 새도 신기하게 맛나게 생긴 것만 먹는다. 과일밭에서도 잘 익고 단것만 찾아 쫀다. 조류도 도사가 다 됐다.

한데 그렇게 빈틈없이 둘러쳤는데도 어디로 들어가는지 이 도사들이 또 쪼아 먹은 흔적이 있다. 참 기가 막힌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게 익어서 딸 때쯤이면 강냉이가 과연 몇 통이나 남을런지...
노력만 한다고 다 되는게 아니다. 농사는 하늘이 도와줘야 짓는다는 말이 있다. 사실이다. 내 노력만 열심히 들여도 된다면 걱정도 없다. 이렇게 죽어라 지어놓으면 꿩, 까치, 고라니, 멧돼지가 다 쑤셔 놓아도 농부들은 속수무책이다. 피해가 심하지 않을 땐 짐승들하고 같이 나누어 먹어야지 어쩌느냐고 여유도 부려보지만 이렇게 전체를 다 망칠 때는 정말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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