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위암 진단, 그래도 한 그루의 나무는 심어야
2017년 5월 4일, 정기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던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위암 판정을 받았다는 연락이었다. 청천벽력이었다. 암이라는 말에 말문이 막히고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날벼락 같은 일이 일어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허둥대고 있을 수만은 없어 애 써 냉정을 되찾고 당장 남편과 함께 우선 치료받을 병원을 결정했다.
그런데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남편은 엉뚱한 걱정을 털어놓았다.“내일 골프 약속을 어떻게 하지?”나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골프는 당연히 가야지요. 아직 수술 날짜도 잡히지 않았는데 벌써 환자로 살려고 해요? 종전과 똑같은 내일이 계속되니 평소처럼 생각하 고 할 일을 다 하면서 지내요.”그러고는 골프가방을 챙겼다. 내 말에 남편도 흔쾌히 동의했고 우리 는 다음날 평소처럼 웃으며 운동을 했다. 상대방 골퍼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가깝게 지내던 아산병원 교수를 만나 진단절차와 입원, 수술에 관해 상의한 후 남편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5월 30일 아침 6시에 수술 전 모든 검사를 받기로 예약을 마쳤다. 검사예약을 마치고 나자 바로 성신에서 임시이사가 파견되었는데 급 선무는 신임 이사장에게 성신 사태에 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고 총장 직선제를 추진하는 일인데 여의치가 않으니 내가 역할을 좀 해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남편 일로 혼비백산한 상태였지만 듣고 보니 학교 일도 시기적으로 총장 선출에 관한 중차대한 일이라서 차마 거절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신임 이사장님과는 바로 연락이 되었다. 전화하여 약속 가능한 날을 말씀하시라 했더니 하필이면 5월 30일 가능하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하고많은 날 중에 하필이면 남편의 암 검사예약일과 겹쳤다. 잠시 망설이다가 이것도 내가 성신을 위해 감당해야 할 일인가 보다 싶어 무리지만 이 중요한 약속을 다 이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장소였다. 감사원 출신인 이사장님은 찾기 쉬운 호텔 커피숍 대신 인사동의 듣지도 못한 작은 「전통다원」이라는 곳에서 만 나자고 했다. 아찔했지만 아쉬운 내가 예스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부터 전통다원을 어떻게 찾아갈까 하는 걱정이 또 한 가지 생겼다. 원래 유난히 길눈이 어두운 나는 남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공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밤새 두 가지 걱정으로 뒤척였다.
검진받는 날, 남편은 새벽에 집을 나서 병원에 도착했고 차례차례 여러 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그동안 임상에서 실습 지도를 하며 이러한 검사절차를 많이 보고 들어왔음에도 막상 보호자가 되어 밖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불안하고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모든 검사가 끝이 난 후 남편과 점심을 먹었다.
나는 남편 앞에서 평심을 유지하며 평소의 내 모습을 지키려고 내심 애를 썼다. 무엇보다, 서로 불안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약속장소에 갈 걱정을 의도적으로 평소처럼 털어놓았다. 평소에 길눈이 어두운 나를 늘 픽업해왔었다. 그런데 남편 역시 평소와 다름없이 그 장소와 약속시간까지 틀림없이 데려다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서로 태연자약한듯한 남편의 말이 고마웠고, 한편으로는 이런 날까지 일을 시키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남편이 차를 몰아 인사동으로 가고 있는데 L 이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학장님, 수고스럽지만 학교의 중대사니까 오늘 꼭 이사장님을 만나 학교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드려야 합니다. 학교를 위해 꼭 부탁드립니다.” 남편 암 검진 날 이사장을 만나러 가는 나도, 이사직을 그만둔 L 이 사도 못 말리는 성신사랑은 매한가지였다. 길눈이 밝은 남편은 정확하게 약속장소에 내려주고 차를 돌려 갔다. 위암 선고를 받은 남편이 지금 이곳에 나를 내려주고 가다니! 오늘 같은 날 대체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이사장님은 소탈하고 솔직한 성격이라 비교적 대화가 쉬웠다.
4시간에 걸쳐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었고 그날 들은 많은 정보가 향후 이사회의 객관적인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고맙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주셨다. 어떤 조직도 그 흥망성쇠는 리더에 달린 것이니 이사장님의 의사 결정력으로 성신 발전에 기여 해주시리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나는 교수회 K 회장에게 전화해서 대화 내용을 이야기하고 이사장이 사심이 없는 분 같으니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직선제 등 선결과제에 관해 대화를 나눠보라고 했다.
그 후 교육부에서는 임시이사를 파견하고 직선제 총장 선출을 전제로 교수회장 K 교수를 총장으로 선임했다. 이것으로써 나는 성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이제는 남편을 위해 남은 시간을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의 수술 경과도 매우 좋아 3개월이 지나서 골프도 치고 해외여행도 할 수 있었다. 하느님께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내가 기특하셨는지 남편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회복의 복을 주셨다. 매사 감사할 따름이다.
마음을 비우면
복이 온다
내가 성신 교정에서 보낸 7년의 세월은 과거에 경험해보지 않은 기나긴 질곡의 시간들이었다. 세상을 속이거나 크게 속아보지않고 살아온 나는 자칭 오너 총장의 말을 그대로 믿고 그를 도와 둘로 쪼개져 있는 성신을 반드시 화합으로 이끌어 성신 발전의 동반자가 되 겠다는 각오로 임했다.
(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