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폐합 당시 일부 교육부 관리들은 성신으로 가면 장기화된 학교 사태로 힘들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대학에 가서 내가 기여할 부분이 있다면 보람도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처음 성신에 근무할 당시 총장은 나와의 인연을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 행운에 비유하고 나와의 나이 차이로 끝까지 내가 자기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애석해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나는 어느새 견제 대상이 되어 내가 기획한 모든 해외프로그램 운영이나 교수 인사문제 어느 것 하나 자율성을 가지고 내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는 운신의 폭은 없었다. 교직원들은 의욕을 잃고 만기친람의 총장에 의욕을 잃어갔다. 많은 교수들이 총장의 독선과 전횡을 비난해도 나는 오히려 단합만이 성신이 살길이라며 밥까지 사 줘가며 총장에 대한 반감을 갖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학장 모임에서도 나는 앞장서 총장을 비난하는 학장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차피 정년하면 나갈 사람들이지만 총장은 자기 학교라는생각으로 학교 사랑이 우리와는 다르지 않겠느냐, 주인과 나그네는 하늘과 땅 차이일 테니 총장이 못마땅하고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그렇게 이해를 하자. 또 그런 미진한 부분을 채우려고 학장들이 있는 것 아니겠냐. 비난에 앞서 총장을 위시하여 단합해서 학교 발전에 최선을 다하자.”라고 설득했고 학장들도 내 말에 호응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교직원들의 불평은 점점 분노로 바뀌어갔고, 많은 사건들이 겹치면서 그의 독선과 인사 전횡으로 드디어 2012년 총장 퇴진을 요구하는 탄원서가 이사회에 날아들면서 학교는 소용돌이쳤다. 나도 수년간 총장을 지켜보면서 더 이상 총장은 협조의 대상이 아니라 퇴진의 대상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학교 구성원을 불행하게 하는 총장은 더 이상 총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를 가장 고민하게 만든 것은 나의 이런 생각과 행동들이 혹시라도 내 자신이 총장이 되기 위해서라는 오해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내 욕심을 실현시키기 위해 총장을 퇴진시키려 한다면 나는 그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는 나 스스로에게 떳떳하기 위해 워싱턴 출장 시 부총장 발령 통지를 받고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바로 거절했다.
2013년 내가 부총장 발령을 거절했다는 소문을 듣고 법대 학장이 저녁을 함께하자고 했다. 법대 학장은 대화를 나누던 중 “학장님, 부총장뿐 아니라 간호대학장도 거절할 수 없느냐?”는 말에 나는 너무 놀라 “죄송하지만 부총장은 거절할 수 있어도 학장은 그만둘 수가 없다. 그 이유는 통폐합 당시 나는 동문, 학생, 교수들에게 간호대학은 내가 책임지고 발전시킬 테니 나를 믿어달라고 설득하여 통폐합 동의를 받은것 이니 나는 그 책임을 다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후 궁금해서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우리 교수들은 그 런 이유는 모르고 송학장이 총장 앞에서 학장 임명장을 받는 것도 좀 자존심이 상하는 거죠. 학장님을 우리 사령관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요?” 하는 말에 나는 너무 놀라고 당황했다. 그간 학장 모임이나 교무위원회에서 만나도 말수가 적은 법대 학장은 그저 서울 법대 출신의 점잖은 교수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지내는 사이였다. 나는 너무 뜻밖의 말을 듣고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는 학장님이나 교수들이 생각하는 만큼 대단한 인물도 못 되고 또 그럴 뜻도 없습니다. 부총장을 거절한 것은 단지 학교 사태가 심각한 시기에 교감도 없이 일방적으로 난 인사가 결코 순수한 의도로 생각되는 인사가 아닌 것 같아 퇴한것뿐입니다.
제가 사령관이라니요? 당치도 않는 말씀입니다.”그 무렵 이사회에서는 총장 직위해제를 코앞에 두고 총장 직무대행 후보들을 확정하고 있었다. 전 부총장과 법대 교수 그리고 나까지 세명의 교수가 거론된다는 소식을 접하자 김순옥 이사장께 전화했다. “지금은 우리 교수 중 누가 총장직대가 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이사회가 분열되지 않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급선무다. 후보가 3명이면 자칫 이사들이 세 갈래가 될 수 있고 2명이면 둘로 의견이 갈릴 테니 제 이름은 후보에서 빼고 두 후보만 놓고 투표하시라. 지금은 이사들의 이견을 좁히고 단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간곡히 말씀드렸더니절대로 내 이름을 뺄 수 없고 3명을 놓고 의견을 좁혀보겠다고 했다. 나는 내 고집을 꺾지 않았고 끝내는 이사장님께서 수용해주셨다.
며칠 후 평가원으로 한 교수가 전화했다. 발신인을 보니 평소에 내왕이 별로 없던 교수라 웬일이냐고 물었다. 거두절미하고 “송 학장님, 총장직대 후보에서 빠진 게 사실입니까?” 예기지 않은 질문에 놀라서 “저는 애초에 총장직대에 뜻이 없고 현재 학장과 평가원장 일이 중요해서 할 마음이 없습니다.” 했더니 “학장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저희가 그동안 그려온 청사진이 있는데 학장님이 그러시면 우리가 그려놓은 그림이 다 무너져버립니다. 마음대로 그러실 수는 없습니다.” 뜻밖으로 그 교수는 강경하게 반복해서 말했다. “고맙습니다만 저는 교수님이 생각하는 만큼 그럴 충분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입니다. 또 한 가지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 몸에 맞지 않는 큰 옷은 절대로 몸에 걸치지 않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저는 단지 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싶지 않을 따름이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