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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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눈물
  • 유성희 옥천지역인권센터 복지국장
  • 승인 2017.01.2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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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곁으로 가고 싶다. 엄마 어듸 있써? 보고 십고 엄마품에 안기고 싶어. 엄마 등 냄새는 언제 어듸서든 마음 노코 맡고 싶어”.

색연필로 쓴 글을 보며 눈물이 났습니다. 맞춤법도 틀리고 삐뚤빼뚤 여러 색으로 쓴 글씨체가 더 마음을 아리게 합니다. 80이 넘으신 할아버지가 ‘엄마’ 라고 부르는 것만 들어도 가슴이 찡합니다.

이 할아버지는 치매로 최근의 기억이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요양 병원에 입원하신 날부터 1년 가까이 함께 생활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유머가 있으시고 이야기 하시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시간 나는 대로 즐겁게 대화를 했습니다.

치매 환자이기에 엇갈린 기억으로 말씀을 하셔서 가끔 동화 같은 스토리도 나옵니다.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닐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재미있게 듣습니다. 그 분은 노래를 좋아하십니다. 그 분의 18번은 ‘아베 마리아’입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두 손으로 지휘를 하며 부르십니다. 정성을 다해 부르시는 모습이 수많은 관중 앞에 서서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물론 두 소절 정도 밖에 기억을 하지 못해 더 이상은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꼭 노래 부르기 전에 하시는 말씀이 “나는 고상한 노래를 좋아해…” 라고 하십니다.

영세를 받으셨다는 그분과 찬송을 함께 부르곤 했습니다. 함께 노래하다가 “그건 그렇게 부르면 안 되고… 이렇게 해야지….” 라며 강약을 넣어 멋지게 선창 하시곤 껄껄 웃으십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부쩍 말 수가 적어지셨습니다. 그리고 가끔 벌컥 화를 내시기도 합니다. 감정의 변화가 생기면 욕도 합니다. 금방 있었던 일도 잊어버리시곤 합니다.

한 때 극장의 영화 홍보 그림을 그리셨다는 그분은 그리기를 좋아 합니다. 우리는 그분에게 색연필과 스케치북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색연필로 자주 찬송가책에 색칠을 했습니다. 탁자 위에도 그림을 그렸습니다. 거기에 그리면 안 되다 하니 양말을 벗어 침을 묻혀 지웁니다.

최근에 그 분은 색연필로 쓰고 또 씁니다. 그 내용이 엄마를 그리워하며 쓰는 편지입니다. “엄마가 기억이 나세요?”라고 여쭈니 “나지... 아마 9살이나 10살 때 쯔음 일거야….”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예뻤어... 얼굴이 사각이었는데... 댁보다 이마가 넓었지... 자세히 물어보지 마... 내 머릿속이 엉겼다구... 미칠 것 같아….” 그 분에게 짓궂게 더 여쭸습니다. “엄마 만나면 뭘 하고 싶으세요?” 갑자기 얼굴이 일그러지셨습니다. 순간 당황했습니다. “울고 싶어... 엄마 품에서 울고 싶어…” 라고 하시며 울음 섞인 대답을 하셨습니다. 어깨를 감싸 안으며 나도 나오는 눈물을 참았습니다. 그 분은 아내도 자식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기억이 사라지는데 마지막까지 남는 엄마의 기억은 어떤 것일까?’ 친정 엄마가 생각났습니다.

6.25전쟁을 겪고 전후에 자식을 키우느라 억척스럽게 살아 내시느라 애쓰셨던 우리 엄마.

여기 요양병원에 그 엄마들이 누워 계십니다.

설날이 다가옵니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입니다. 손주들의 사랑스러움으로 모든 대화는 아이들에 초점이 맞춰지기도 합니다. 손주들과 조부모님들의 소통은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하면 연세가 드신 부모님들의 마음을 들어주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살아계실 때 정성들여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무엇보다 좋은 효도 일 것입니다.

우리도 아이들이 찾아옵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며 행복한 순간은 마음에 담은 선물을 받을 때입니다. 그러나 더 기쁘고 행복한 순간은 둥그렇게 앉아 내 얼굴을 바라보며 긴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 주고 내 편이 될 때입니다. 그리고 자신들 일상생활의 소소한 것들을 들려 줄 때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함께 의지하고 지혜를 모아가는 일은 더 열심히 씩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기를 불어 넣어주기도 합니다. 이번 설날에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갈 것입니다. 조금씩 기억이 희미해지는 부모님의 깊은 마음속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게 할까 고민을 해야겠습니다. 수십 번 들었던 이야기를 하실지라도 넉넉하게 들어주며 맞장구칠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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