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리는 맛
상태바
땀 흘리는 맛
  • 이흥주 수필가
  • 승인 2017.03.23 11: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땀을 흘려본 사람들은 땀의 맛을 안다. 누구 한 텐가 들은 얘긴데 사람이 하루에 세 번씩만 땀을 흘리면 병원 갈 일이 없다고 했다. 몸이 찌뿌드드할 때 자리에 누워 있는 것보단 일이나 운동을 해서 땀을 흘리고 나면 개운해지고 가벼워짐을 느낄 것이다. 나이도 먹고 센 농사일이 힘에 부칠 때도 있긴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몸을 온실 속에 두기보단 많이 움직이려고 노력 중이다.

그리 크지 않은 밭떼기에 농사를 지으며 겨우내 동면중이던 몸뚱이를 컴퓨터 앞에서 꺼내 일찌감치 밭으로 내갔다. 어떤 땐 아침밥 먹고 일찍 밭으로 가면 땅이 얼어서 일을 할 수가 없어 발길을 돌린 적도 많다. 돌아오면서 혼자 웃기도 한다. 농사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밭에 가서 설치냐고.

내가 일 욕심이 많긴 하다. 지금보다 조금 젊었을 때까진 아침 먹고 일을 손에 잡으면 점심때까지 쉬지 않고 했다. 농사일이건 무슨 일이건 손에 한번 잡으면 쉬지 않고 몰두한다. 밥시간까지 그냥 허리를 피지 않았다. 지금도 옛 가락이 좀 남아서 욕심을 내는데 주인 잘못만난 팔다리 허리가 남다른 고생을 한다. 하지만 세월이기는 장사 없다. 나도 세월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요즘은 자주 주저앉아 쉰다.

그래도 번번이 나도 놀랄 때가 많다. 내가 해놓고 보아도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의 밭일을 해놓곤 대단하단 생각을 한다. 관리기가 다닐 수 있도록 밭가로 길을 만들었다. 땅을 파고 채우고 하는 중노동을 계속했다. 미련한 건지도 모르지만 좋은 쪽으로 체력이 좋아서라고 해몽(?)을 하고 싶다.

며칠 전엔 50포대가 넘는 닭똥을 길가에서 밭으로 혼자 손수레로 올렸다. 무게를 달아보진 않았지만 제법 무거운 걸 3,40 분 만에 밭으로 다 옮겼다. 손을 털고 나선 그래도 이 정도는 돼야지 하고 한껏 자만에 빠졌었는데 밤이 되니 삭신이 쑤셔온다. 아프다고 아우성인 팔다리를 잘 달래어 잠을 자고는 다음날엔 밭둑을 고치러 갔다.

지난여름 엔간히도 덥고 가물더니 뒤늦게 내린 폭우로 생각지도 않는 피해가 났다. 우리 밭이 있는 골짜기에 논 밭둑들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우리 것도 마찬가지. 이걸 그대로 두었다가 올봄에 고치기로 했다. 포클레인 같은 장비를 대야하지만 그러기엔 일이 작아 그냥 내가 고치기로 작정했다. 내 키가 171cm인데 둑 높이가 두 길이 넘는 곳도 있다. 엄두는 안 났지만 삽 하나 들고 시작을 했다.

이건 무리하지 않고 시나브로 하기로 했다. 욕심 같아선 정신없이 흙을 퍼 올리고 잔디를 입히고 싶었지만 무모함을 애써 눌렀다. 괜히 무리하다 병이라도 나면 도리어 손해다 하는 생각을 머릿속에 심었다. 한나절만 하고 나머지는 또 다음에 하기로 했다. 매일 하지 않고 다른 볼일 보아가며 시간 날 때마다 가서 삽자루를 들었다. 어제까지 한나절씩 이틀을 하고 나머지는 담에 천천히 마무리 짓기로 했다.

사람들은 새봄을 맞이하자고 요란들이지만 농부들은 봄을 느낄 여유나 시간이 없다. 매일 농사일에 매달려야 한다. 나야 그냥 조그만 밭을 일구며 심심풀이로 하는 거지만 전업농부야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 지금은 봄 감자 심느라 땀들을 흘린다. 하우스 농사는 때가 없는 것 같은데 난 그런 건 모른다. 계절 찾아 감자심고 고추심고 그런 농사다. 내가 전업 농부였다면 아마도 규모가 큰 농사를 했을 것 같다. 축산을 하던지 논밭에 짓는 농사를 하던지 아마도 규모가 큰 농사꾼이 되어 있을 것 같다. 그렇게 해야 먹고 살 수 있다.

건강을 위해서도 밭에 나가 하는 일이 좋다고 생각한다. 밭일 아니라도 운동으로 건강을 다질 수 있지만 흙을 묻히며 농사로 흘리는 땀은 값진 것이다. 대가로 귀중한 건강을 준다. 나오는 수확물을 돈으로 따진다면 농사 못 짓는다. 옛날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봤자 품삯, 비닐 등 농자재, 농약 값 등을 제하면 남는 게 별로 없거나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소박하게 감자, 고구마 심어 자식들에게 나누어주는 기쁨, 그걸 위해 밭에 가서 땀을 흘리는 것이다. 큰 것을 바라면 안 된다.

조금 있으면 이곳이 새소리로 넘칠 것이다. 장끼가 알 품는 마누라 옆에서 보초를 서고 뻐꾹새와 꾀꼬리가 화사한 봄날을 수놓을 것이다. 또 좀 지나면 매미소리가 소낙비처럼 쏟아질 것이다. 서늘바람이 불면 농부의 얼굴은 수확의 기쁨으로 충만하여 입 꼬리가 귀밑으로 오를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