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가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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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가 꽃이다
  • 조숙제 시인·수필가
  • 승인 2017.03.30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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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가 정겹게 울어 문득 아침 창문을 연다. 초봄의 향기로 단장한 느티나무의 결이 그렇게도 고울 수가 없다. 자연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만물을 품고 기르되, 소유하지 않으려는 그 넉넉함의 향기던가. 앙상한 가지로 삭풍을 견뎌내느라 고단도 하련만, 자연의 고운 숨결로 새로운 잎을 낸다. 바람결이 놀러 오면 반갑게 손사래를 흔들며 미소로 화답한다.

뒷산의 초목들도 벌써 초록 바다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자연은 스스로 가야 할 좌표를 알기에, 늘 게으름 없이 제 몫을 다하며 인간의 곁에서 함께 호흡한다. 우주는 한 편의 변화무쌍한 드라마가 아닌 성 싶다. 부족함이 있어도 늘 만족할 줄 아는 자연의 무언 앞에, 인간은 방황과 번민의 연민 속에서 만족에 만족을 찾아서, 배회하는 뿔 달린 짐승인가 보다.

나는 봄볕에 화사하게 이빨을 드러내는 복사꽃만 꽃인 줄 알았다. 어느 날인가, 우울한 심회에 젖어 멍하니 산길을 걸었다. 소리 없이 먼 산을 오르면서 산길, 들길을 걷다 보면 마음속의 온갖 소회가 하나둘 차분히 정리된다. 길가에 노랗게 꽃잎을 드러내며 환한 웃음을 짓는 민들레, 산비탈을 곱게 치장을 한 개나리, 그들은 무엇인지 모르게 여유로움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나는 늘 부족함이 충만함을 앞지른다. 꽃들은 넉넉함이 있어서 풍요로움으로 빛나는 것들인가, 꽃과 나무와 새들이 전해주는 상형문자 앞에, 인간의 욕망은 늘 부족함으로 빛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화살처럼 나의 뇌리를 스치는 단어, 행복이란 두 글자가 나를 섬광처럼 흔들고 지나간다. 그렇다, 행복의 수치는 숫자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느끼는 순간이 바로 무한대 만족의 극대치다. 삶과 죽음이 한 몸통 속인 것을 자각한다. 이것을 스스로 느낄 때 삶의 가치가 극대화된다는 것, 나는 그것을 모르고 삶의 방황에 흔들렸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니 모든 것이 고맙게 느껴진다. 내 가족의 소중함과 곁에서 늘 미묘한 향과 같은 울림을 주는 내 이웃들의 한결같은 성원에 부끄러워진다.

온 산하대지가 묵묵히 제 할 일을 수행하면서 스스로 길을 밝히건만, 오직 인간만이 부질없이 한없는 욕망의 바다에서 자신을 나락의 길로 유인하는 것이다. 삶이란 어차피 꿈꾸는 길이라지만, 길 다면 길고 짧다면 한없이 짧을 수밖에 없는 우리네의 삶의 여정 속에서, 사랑만 하기에도 시간은 그리 넉넉지 않다. 어차피 한 번은 헤어지는 길이라지만 내가 너무도 부족해 미안한 마음에 오늘따라 가슴이 미어져 온다. 달빛에 저렇게 초록은 빛이 고운데, 일찍 찾아온 두견새 울음소리 저리도 애잔한데, 바람이 옷깃에 스며든다. 먼발치에 홀로 서있는 고목이 묵묵히 화두를 들고 침묵을 즐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데, 더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단 말인가.

자연과 함께 산다는 것은, 나를 하나둘씩 버리는 일이라던가. 부족함 속에서 여유로움을 즐기고, 욕망을 구슬려 자족함을 추구할 때, 우리는 모두가 꽃이 될 수 있다던가. 복사꽃만 꽃이 아니라 냉이, 개나리, 할미꽃, 개망초. 아-아니, 좌절의 고뇌와 슬픔, 시련의 아픔과 번민도 삶의 한가운데 소중하게 빛나는 보석 같은 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가슴속에 각인해 보니 이 봄날, 입맛이 돈다. 세상살이 거칠수록 살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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