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도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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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도 있었으면
  • 김정자 수필가
  • 승인 2017.05.1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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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기온에 따가운 햇살, 봄을 건너뛴 이상기후와 더불어 연중 챙겨야할 기념일이 가장 빼곡한 오월의 문이 활짝 열렸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석가 탄신일,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오월 자체가 아예 가정의 달로 지정돼 있다. 오월 첫날이었던 근로자의 날은 바깥일 하는 사람들에게 한 달 동안 고루 펼쳐질 집안일의 대소사를 앞두고 호흡 조절 기회를 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가족을 돌아보는 온갖 날이 달력 한 장에 다 들어 있는데 형제자매의 날은 왜 없을까. 괜한 궁금증이 생겼다. 정말 우애를 다져야할 사람은 형제자매가 아닐까? 그런데 요즘 형제들의 비리와 상속을 둘러싸고 형제자매의 대립들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애증사야말로 동서고금을 통틀어 해묵은 숙제 아니던가. 그래서 하루쯤 날 잡아서 우애를 다질 필요가 있는 것이 형제자매지간 인 것 같다.

권력과 재물이 없는 평범한 집에서 태어난 자매가 연탄장수 하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리어카를 밀어주며 대화 한다. 아빠 이 집은 백장이지? 금방 나르겠다. 얼굴에 검정 칠을 한 채 소녀티를 못 벗은 명랑한 자매를 나도 그 나이에 본적이 있었다. 아마 자식을 키워본 부모라면 공감할 것이다. 자식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말이 온 집안을 환하게 만들고 고맙고 감사해서 눈물이 났던 적이 있었겠지? 자식이 부모보다 낫구나. 자식 앞에 부끄러워했던 경험 은 물론 자식 때문에 힘든 때도 있었지만 이런 경험들이 기적처럼 찾아와 삶을 사랑하게 만드는 달이다.

어릴 적 형제. 자매는 정말 경이로웠다. 아무것도 모르고 때론 서로 욕심내고 싸우고 했지만 그 어려움 속에 놀라운 눈과 입과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권력과 재물이 많은 집안이라 해서 반듯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아니다. 한 집안에서 서로 부대끼면서 사랑과 경쟁의 미묘한 줄타기를 하며 성장한 아들딸이 커서도 누적된 사소한 문제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편하게 지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족이란 같이 있으면 누가 얘기 하지 않아도 형제. 자매 인 걸 금방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서로 닮아 있기 때문에 가족의 일원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이다.

힘들어 하는 부모님을 도와주기위해 여린 몸으로 리어카를 밀어주는 것은 노동이 아니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의 일부분일 것이다. 누가 가르쳐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듯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오직 가족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들 둘을 늘 소중하다 하면서도 때론 자녀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편파적 애정이 남긴 상처를 준적도 있다. 품안에 자식 얼마나 위대하고 소중한가. 부모님에게는 기적과도 같았고 희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 같은 애정을 주고 키운 형제. 자매라도 재능이나 운까지 균등하게 물려줄 수 없기에 생기는 감정의 골도 깊게 팰 것이다.

주위를 보면 당연한 권리인양 언제나 손 내미는 형제 때문에 화병에 걸렸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그렇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예술적 재능이나 지혜는 부모에게 상속받은 무형의 유산이므로 그 결실을 형제간에 나누고 살자하면 속이 편하지 않을까?

부모 형제 자식 이름 하여 가족은 내가 덕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돕기 위해서 운명적으로 엮인 사이라 본다. 다행히 나는 형제를 두었기에 서로가 의지 하고 부모가 떠맡긴 짐이라 생각하지 않고 귀한 선물을 주었다고 생각하리라 믿는다.

일생동안 고락을 함께할 동지로 부모가 짝을 지어준 형제자매들 해가 갈수록 서로 닮은 모습으로 늙어가는 오빠들과 언니 동생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짠하다. 만나면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서럽고 병원에서 보면 더 짠하다. 해마다 오월이면 가슴이 먹먹하다. 아버지는 일생동안 고생하시며 마디마디 굵어진 두 마리의 두꺼비를 키우셨다. 언젠가 아버지가 낮잠 주무시는걸 보았는데 기회는 이때다 싶어 아버지의 그 두꺼비를 만져 보았다. 난 한동안 눈이 충혈 되었다. 가난 속에 우리 형제. 자매에게 한 번도 두꺼비를 보여 주지 않았고 따듯하고 포근한 손으로 우리를 만져 주었다. 그러다 결국 아버지는 하얀 서리가 내리던 아침에 두꺼비 집을 지으셨다. 두꺼비와 아버지는 그 집에서 긴 겨울잠에 들어갔다. 그런데 봄이 되었지만 잔디만 깨어났다.

오늘은 더욱더 아버지의 그 우툴두툴했던 두꺼비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내년 봄에는 스스로라도 형제자매의 날을 만들어 우리 가족들이 함께 만나 부모님 산소에 가서 세상 힘든 것 고자질도 하고 실컷 웃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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