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의 노랫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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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 노랫가락
  • 조숙제 시인.수필가
  • 승인 2017.05.1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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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은 변덕쟁이다. 미세먼지에 송홧가루 심술 놓더니, 언제는 슬며시 미소 지으며 꽃향기 날린다. 산하를 온통 수놓는 아카시아 향기 그윽한 싱그런 오월이다. 만물이 생동하는 만큼, 우리네 살림살이도 풍요로움으로 가득한 달이다. 어린 새싹들의 힘찬 고동 소리가 있기에 더욱이 살맛나는 세상살이다. 연중 하루를 고이 접어 어버이의 은혜를 간직하는 마음도 깃들어 있는 달이다. 태산보다 높은 스승의 은혜도 잊지 못할 우리들의 덕목 아니겠는가? 그러하기에 오월은 계절의 왕이다.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음이 과연 그 무엇이었던가를 새삼 자문해 보는 의미 깊은 달이기도 한 것 같다.

정원의 조그만 활기가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는가 보다. 그윽한 저녁노을이 나를 자꾸만 부른다. 마당에 나와 상을 폈다.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라고 노래한 시인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언제나 듬직한 뒷산의 운치가 매일 다른 그림으로 다가온다. 초록이 안겨주는 저 풍요로움에 흠씬 잠기는 저녁이다. 메뉴는 쑥버무리다. 들녘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야생초, 쑥에

밀가루를 뿌려서 쪄내면 훌륭한 웰빙 음식이 된다. 음식이 옛 향수를 부른다. 지금은 이렇게 웃음으로 맞이할 수 있지만 웃음 속에 뼈아픈 서러움이 안겨있는 음식이다.

온통 향기로 그윽한 오월의 신록이 부르는 노래 눈부시다. 숲속에 묻혀서 사는 이의 빼놓을 수 없는 유일한 풍미가 여기에 있다. 아카시아 향기 유혹하는 시골 저녁노을은 그대로가 힐링의 화려한 무대다. 쑥버무리 한 덩이 입에 넣고 물 한 모금 마시는 여유에 온 세상을 가진 느낌이 든다. 바보의 노랫가락이 구성지게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오늘따라 하늘의 별들은 우째 이리 맑은 겨?’

멀리 산중에서 늦게까지 들려오는 뻐꾹새 울음소리 정겹다.

네가 집으로 돌아가면 서쪽새 구슬픈 울음소리 누군가를 울리겠지.

생각하기에 따라서 인생사는 바뀌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더 간절해지는 사연은, 누구에게나 애틋한 어릴 적 사연이리라. 이맘때면 참 배고픈 시절이었다. 보릿고개란 말이 있듯이.

주린 배를 안고 학교 가는 길도 눈물길이요,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도 시름 젖은 회한의 길이었다. 희망이란 글자를 늘 가슴속에 품으면서 무지개 뜰 그 날을 향하여 가난을 숙명처럼 여기면서 우리네 세대들은 뚜벅뚜벅 걸어왔다. 자식들의 가슴이 이리도 아리건만 초근목피로 허덕이면서 낳고

기르신 부모님들의 가슴속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새삼 뒤돌아보는 추억어린 감회가 나를 또 애절케 하는 저녁노을이다.

마누라가 또 무슨 청승에 젖느냐고 핀잔을 한다. 그렇다, 이제는 그 아련했던 추억을 마음껏 활용해 삶의 에너지로 유인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마시면서도 젖소가 뱉어내면 우유요, 독사가 뱉어내면 독이 되는 원리를 참구할 일이다. 이렇게 그윽한 저녁노을에 젖어 쑥버무리에 물

한 잔 놓고 청산을 마주 대하며 사색에 젖는 감회가 새롭다.

아니, 이제야 만인의 고향으로 돌아가려니 철이 들어, 만물에 젖는 이치가 가슴속 새록새록 파고드는가 보다.

마당가에 심어놓은 장미가 새색시 볼 같은 고운 얼굴 내민다. 세파에 때 묻지 않은 청순한 모습이 어린아이 자태를 닮아 앙증스럽다. 저 순수함 앞에 감사 기도를 드리는 저녁놀이다. 저들의 노래가 치성을 이뤄 한바탕 잔치마당을 펼치면 나도 나의 노랫가락을 부르고 싶다.

그동안 못난 부모 밑에서 먹고 사느라, 그 쓰라린 가슴을 조아렸던 아들 내외와 꽃같이 순한 입술 가진 손녀도 함께. 피붙이 동생 내외도 함께하고 반가운 조카들이 오면 더욱이 좋겠고, 이웃들도 불러 조촐한 상을 펴고 별을 세면서 정겨운 이야기로 힘찬 삶의 노랫가락 펼쳐 보리라.

이렇게 부르는 나의 노래가 미래의 희망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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