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5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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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5월에
  • 유성희 옥천지역인권센터복지국장
  • 승인 2017.05.25 1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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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났어요... 말하고 싶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다구요...” 내 앞에 두 남녀가 앉아 있다.

여자는 고개를 들고 눈을 똑바로 뜨고 또박또박 말을 한다. 이제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않을 거고 듣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반면에 고개를 조금 숙인 채 복잡한 표정의 남자는 입을 떼지 못하고 있다. 남자는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 줄 몰라 다시 눈을 아래로 떨구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처음 만나는 이 남녀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오갔다.

먼저 상처 난 그들을 눈으로 마음으로 포옥 껴안아 주었다. 이들은 이혼 결정을 앞두고 나와 상담을 하게 된 부부이다. 닫혔던 마음의 문을 조금 열어주니 줄줄이 말을 한다. “이 남자는 집에 와서 말을 안 해요... 답답해 죽겠어요...연애할 때는 안그랬는데...” “하루 종일 아이 보느라고 힘든데 집에 와서 도와주지도 않아요...” “내가 꼭 말로 시켜야만 하구... 가만히 있다가 벌컥 화를 내고... 그러다가 나를 때리려고 손을 들어올리기도 했어요. 도저히 못살겠어요.”

여자는 말의 물꼬를 조금 열더니 가끔씩 한 숨을 섞어가며 빠른 말투로 때론 격정적으로 말을 했다. 이제 갓 돌이 지난 아이까지 있는데 이혼을 하겠다며 훌쩍 거렸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여자의 말을 들으면 그 동안 같이 살 수 없는 이유를 되씹고 되씹어 누가 물으면 대답하려고 준비된 사람 같았다. 그 말을 듣던 남자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반박 하고 싶은 듯 입술을 씰룩 거리면서도 여자의 말 도중에 언제 끼어들어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 숨을 쉬다가 다른 먼 곳을 바라보았다.

남편의 얘기를 들어보자고 했다. 여자는 들어 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남자는 무슨 말부터 먼저 해야 할지를 모르는 듯 뜸을 들였다. 그러더니 “집에 가면 나도 일을 도와줬어요...”남자가 말을 시작 하자마자 여자는 “꼭 내가 해달라고 해야 했잖아...” 라고 쏘아 붙인다. 남자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다시 그녀에게 남편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자고 했다. 그제야 남자는 더듬거리며 말을 했다. 말을 멈췄다가 나의 격려에 다시 어어 나가기를 몇 번 했다. 그는 자기의 말을 끝까지 해 보는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들의 속마음은 이랬다. < > 은 표현되지 않은 속마음이다.

남편(피곤한 얼굴로 어깨가 축 처져) : 나 ~왔어 <아휴 힘들어서 쓰러질 것 같다>

아내 (우는 아기를 안고 ): 왜 이렇게 늦게 와요? 일찍 좀 들어오지. 얼마나 기다렸는데...<애기를 받아주면 좋겠어>

남편 (옷 입은 채로 침대에 누우며): 아! 배고파 <하루종일 스트레스를 팍팍 받았더니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

아내 (아기를 내려놓으며 ): 애기 좀 봐줘. 애기가 내 품에서 안 떨어지려고 해서 너무 힘들었어. 집에 있는 거 보다 밖에 나가 일하는 게 쉬울 거 같아.

남편 (눈을 감고):조금만 쉴게 <오늘 상사한테 혼난 거 생각하니 직장도 때려 치고 멀리 떠나고 싶어>

아내 (뾰루퉁한 표정으로): 애기를 봐줘야 상을 차릴 거 아냐. 하루 종일 집안일 하랴 애기 보랴 얼마나 힘들었는데 자기만 힘든 줄 알아? 나두 힘들다 구.

 

그 남편에게 집에 와서 왜 말을 많이 하지 않는지 물었다. 그 남편은 “집에 와서도 계속 생각했어요. 애기도 있어 돈이 많이 들어가는데... 어떻게 영업을 해야 돈을 잘 벌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근데 밖에서 힘든 얘기를 집에 와서까지 말하기는 싫었어요”라고 했다.

남자와 여자는 다른 것이 많다. 그 중에 말하는 것이 다르다. 여자는 하루에 말을 2만5천에서 삼만 마디정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남자는 8천에서 1만 마디 정도 한다고 한다. 말 하는 내용도 주로 여자는 사건의 과정과 감정에 대해 말을 하는데 남자는 목적 중심에 결과만을 말한다고 한다.

게다가 여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수다를 떨며 해소하지만 남자는 말수가 적어지며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 가려 한다고한다. 그러니 연애 할 때는 서로의 마음 읽기 위해 애를 썼는데 결혼 후에는 본래 자기의 모습으로 돌아가니 갈등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둘이 하나처럼 평생 함께 살라는 뜻으로 21일이란다. 수십 년 동안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남녀가 하나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서로의 마음 속 얘기를 잘 들으려는 커다란 귀와 자신의 감정을 잘 전달하려는 노력은 가정의 든든한 기초석이 될 것이다. 그 위에 푸른 나무처럼 아름다운 가정이 쑥쑥 자라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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