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農心)
상태바
농심(農心)
  • 조숙제 시인.수필가
  • 승인 2017.06.08 1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월이다. 벚꽃도 가고 장미도 숨었지만 서럽지 않다. 간다는 것은 또 다른 내일을 맞을 준비를 하라는 신호이기에, 신록은 우거져 녹음방초 치성하다. 밤늦도록 뻐꾸기 울음 멎지 않는데, 달빛이 찾아와 이슥토록 함께 하니 도회지 살림살이 부럽지 않다. 이렇게 자연은 인간의 더할 수 없는 보고요, 생명의 안식처이다. 고로, 한줌의 흙과 돌과 바람이 전하는 숨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우리네 삶이 한결 부드러운 속살로 채워질 것이라 나는 믿는다.

오늘은 새벽에 운동을 하고 텃밭에서 잡초작업을 했다. 몇 골의 고추와 고구마, 참깨며 오이와 가지를 심었다. 유례없는 가뭄으로 그들의 비명이 안타깝다. 하늘이 도와야 사는가 보다. 우리네 살림살이가 이렇게까지 풍요로운 것은 인간의 지혜와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결국엔 하늘의 도움 없이는 안 되는가 보다. 참으로 가슴에 새겨야 할 말인 것 같다.

골골이 자라나는 풀들을 뽑아 주면서 생각에 잠긴다. 세태가 변해서 요즘엔 농사를 지어도 잘해야 본전이다. 그래도 구슬 같은 땀방울 흘리면서 김을 매고 잡초를 뽑는 이유는, 서로가 믿음으로 하나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남을 미워도 않고 시기도 질투도 하지 않는다. 단지 묵묵히 제 할 일을 할뿐 낳고 기르되 소유하지도 않는다.

아침 일찍이 일어나 텃밭에 나가서 고추와 인사를 나눠 본적이 있는가.

눈 비비고 살포시 일어나 빙긋이 웃으면서, 방울방울 눈망울 굴리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이 맛에 농군은 허리가 부러져도 아프지 않은 가보다. ‘농심은 천심이다’고 조상님들은 일렀다. 거짓 없는 땅을 믿고 부지런히 땀방울 흘리면서 얻은 만큼의 소득에 감사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농군의 마음, 이렇게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주어진 환경에 늘 감사를 하면서 소박하지만 진실하게 손잡고 사람다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농군의 마음은 물과 같다. 물은 남을 원망을 하지 않는다.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늘 낮은 곳에 처해도 남을 탓하지 않는다. 농군은 풀과 허물없이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전하면서, 구슬 같은 땀방울로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서로의 마음과 믿음을 확인하면 되는 것.

이 넉넉한 마음이 농심이요, 그러하기에 농심을 천심이라 하며 천하의 대본을 경영하는 소리 없이 사는 사람들의 평범한 삶의 자세다. 만약 대지에 생명이 없다고 상상을 해보자. 상상 그 자체만으로도 끔찍하다 아니할 수 없다. 인간을 가장 편안하게 하는 색깔이 녹색이며 인류의 생명선이다. 땅을 파먹고 살아가는데 많은 것은 필요치 않다. 어머니 젖가슴 같은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우직한 허리로 세상을 일구다 뼈를 묻으면 되는 것.

본래 우리네 살림살이는 고적하기 이를 데 없는 것. 그래서 우리는 더 얻으려 하고 취하려고 하는가 보다. 많이 쌓아 놓으면 마음이 놓일 것 같지만 쌓아 놓는 높이가 높을수록 수심도 깊어진다고 성인들은 말씀하신다.

재물과 명예와 권세는 맛은 달콤하지만, 뒷맛은 허무하기 그지없다. 잡았다 놓는 그 가슴앓이가 오죽하면 우리네 손목을 잡고 세세히 당부하겠는가 말이다. 허리 굽혀 땀 흘린 대지 위에 뉘엿뉘엿 해가 저문다. 오늘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하루였다고 스스로 자부를 하면서 발길을 옮긴다.

삽을 씻고 호미를 거두면서 말없는 청산을 바라다보면서 씽긋 한번 웃어본다. 그도 아무런 말이 없다. 나도 그냥 아무런 말이 없어도 그냥 좋다. 소쩍새 정겹게 찾아와 인사를 하면 마당에서 구수한 된장국으로 저녁을 먹는다. 텁텁한 막걸리 한 사발이면 세상근심은 한 방에 날아가 버린다. 별빛이 초롱초롱 불을 밝히면 시골 살림살이의 풍광은 나무랄 데 없다.

하루 세끼 똑같이 먹고 푸성귀로 배를 채우지만 모자란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늘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산다는 것은 이렇게 자신의 생활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가면서, 홀로 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가까운 주변에 널려진 무명 방초가 불을 밝히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들이 이웃에 함께 있기에 부족한 것 하나 없는 이 살림살이가 적은 복일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