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원한다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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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원한다면 (1)
  • 김묘순(수필가/시인.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 승인 2017.06.1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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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수필가/시인.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정지용을 아는 사람은 그에게 가까이 가고 싶을 것이다. 필자도 그러하였다. 정지용 곁에 머물고 싶은 사람들이 일별하였으면 좋을만한 내용을 ‘지용논단’에 실어본다.

정지용의 산문은 그의 문학에서 상당한 분량을 차지함에도, 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연구가 소홀해왔다.

정지용은 1919년 12월 『서광』지 창간호에 소설「삼인」을 처녀작으로 발표한 이후 그의 행적이 묘연해진 1950년까지 4권의 작품집을 간행하였다. 굴곡진 삶을 살다 간 정지용은 2권의 시집과 2권의 산문집을 간행하였다.

필자는 그의 작품집을 『정지용 시집』, 시문학사, 1935. 『백록담』, 문장사, 1941. 『정지용 시집』(재판 간행), 건설출판사, 1946. 『지용시선』, 을유문화사, 1946. (『지용시선』에는 「유리창」등 25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이들은 모두 『정지용 시집』과 『백록담』에서 뽑은 것이다) 『백록담』(재판 간행), 백양당과 동명출판사, 1946. 『문학독본』, 박문출판사, 1948. 『산문』, 동지사, 1949. 이렇게 연도별로 정리하여 보았다.

이와 같이 정지용은 여러 권의 작품집을 간행하였다. 그러나 재판된 것들과 『정지용 시집』이나 『백록담』에서 작품을 뽑아 간행한 『지용시선』을 제외하면 4권이 되는 셈이다. 한편, 정지용의 연보와 관련, 아래 저서들의 사실과 다른 오기(誤記)부분이 발견되어 이를 바로 잡고자 한다. 이는 선행연구자들을 흠집 내거나 비방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연구에 감사하며, 독자들이 올바로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서술하는 것이다.

ⓐ 1949년 1월에 동지사에서 간행한 『산문』은 ① 김학동, 『정지용 연구』, 민음사, 1997(1판 1쇄는 1987에 펴냄), 370면. ② 김학동 편, 『정지용 전집 2 산문』, 민음사, 2005, 620면. ③ 최동호,『정지용 사전』,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3, 615면. ④ 이석우, 『현대시의 아버지 정지용 평전』, 충청북도 충북개발연구원 부설 충북학연구소, 푸른사상사, 2006, 262면. ⑤ 최동호, 『그들의 문학과 생애, 정지용』, 한길사, 2008, 187면. ⑥ 박태상, 『정지용의 삶과 문학』, 2012, 285면 등에서 1949년 3월에 간행된 것으로 오기(誤記)되어 있었음을 밝혀둔다. ⓑ 1948년 2월에 간행된 『문학독본』은 ① 박현숙 편, 『정지용 시와 산문 -달과 자유』, 깊은샘, 1994, 371면 ②『한국 현대시의 아버지 정지용 문학포럼』, 옥천군·옥천문화원·지용회, 2002~2012 (2002년, 166면, 2012년, 226면처럼 연도 별로 각 면의 차이 있음)에서는 1949년에 출간된 것으로 오기(誤記)되어 있음을 밝혀 둔다.

그의 첫 번째 산문집은 1948년 2월 박문출판사에서 발행한 『문학독본』(표지에는 『문학독본』으로, 간기(刊記)에는『지용문학독본』이라 되어있다). 두 번째 산문집은 1949년 1월 동지사에서 발행한 『산문』이라 하겠다.(정지용의 산문집『문학독본』에는 「사시안의 불행」 등 37편의 평문과 수필, 기행문 등 61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그의 또 다른 산문집 『산문』에는 평문, 수필, 휘트먼의 번역시 등 총 55편(시와 언어 1~7은 1편으로 봄)이 실려 있다. 이 밖에 산문으로 『문장』에 추천사나 선후평 형식의 짧은 글들과 『정지용시집』에 2편과 『백록담』5부에 8편이 실려 있다. 이 밖에 신문, 잡지 등에 발표한 것도 상당수이며, 아직 발견되지 아니한 작품도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정지용이 남긴 산문의 수량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를 ‘시인 정지용’이라 많이 부른다. 시인으로서 정지용은 당대 문인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청마 유치환은 지용의 시에 반해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고백하였다. 이양하는 1920년대 동경제국대학 시절에 지용의 시「카페 프란스」를 읊고 그가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일본 동경대학 문학부장인 이마미찌 도모노부는 정지용의 시에 대해 ‘한국 현대시의 절창’이라 평하였다. 또 동시대인이었던 박용철은 정지용을 ‘30년대의 릴케’로, 이양하는 ‘한국의 발레리’로 보았다. 정지용은 다시 우리 시대를 일으킬 문학의 희망으로 소생한 것이다.(원형갑,「서문」, 박현숙 편,『정지용 시와 산문 -달과 자유』, 깊은 샘, 1994.)

그는 우리 현대문학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후배 문인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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