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超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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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超然)
  • 이흥주 수필가
  • 승인 2017.06.1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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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하다. 어떤 일에 동요하지 않고 흔들림이 없는 걸 이르는 말이다. 아침밥 먹고 부부다툼을 한 남편이 맛있는 점심밥상에 동요하지 않는 정도로는 초연이란 말을 쓸 수 없다. 적어도 큰 재물 앞에서나 죽음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정도는 돼야 ‘초연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십여 년 전 일이다. 가까운 집안 형님이 큰 병을 얻어 자리에 누워 계실 때 시간을 내어 시골로 병문안을 간적이 있다. 방안에 들어 인사를 하고 위로의 말을 드렸다. 그때 형님의 말이 정말로 놀라왔다. “난 지금 아무 두려움도 없고 걱정도 없어. 내가 지금 병원에 가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나도 잘 알아!” 정말 형님의 얼굴엔 걱정이나 두려워하는 모습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누워 계시다 집안 동생이 찾아오니 자리에서 성한 사람처럼 일어나 앉아서 하신 말이다. 평소에도 약체였던 형님이 병을 앓느라 허약해진 몸으로 어떻게 저런 초인 같은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여느 사람들이라면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으로 생에 대한 강한 집념과 두려움으로 매일매일을 극심한 고통 속에서 보내야 맞을 텐데. 그러나 형님만큼은 보통사람들과 달랐다. 죽음 앞에서도 초연했던 형님의 생전의 모습과 말은 그 후로 내가 어떤 유혹이나 욕심을 제어하기가 힘들 때 떠올리게 되는 등댓불 같은 것이 되었다.

문병을 간 후 얼마 있다 동네에 행사가 있어 다시 시골을 갔다.

동네 앞 논바닥에서 풍물놀이를 했다. 그 형님은 풍물소리만 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분이었다. 집 앞에서 풍물소리가 신명나게 들리니 형님께선 그 아픈 몸으로 나와서 상쇠를 잡고 신나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원래가 형님이 풍물패의 상쇠였다.

난 여기서 또 한 번 놀라야 했다.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은 모습으로 쇠를 치는데 그 모습이 20대 젊은이보다도 더 힘차고 박력이 넘쳤다. 아, 과연 초인이구나. 방안에서 나오기조차 힘든 분이 어떻게 저런 힘이 날까? 저런 분이니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그리 담담할 수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때 분명히 보았다. 쇠를 치면서 신나고 행복해 하던 형님의 모습을. 그리고 마지막 힘을 다 쏟아 쇠를 치고 난 얼굴이 파래지다 못해 먹장처럼 새까매진 것을. 쓰러지지 않는 게 이상했다. 먼 길 가시기 전에 당신이 그리 좋아하던 쇠를 혼신의 힘을 다해 치고 난 다음의 모습이었다.

그 후 형님은 바로 돌아가셨다. 죽음 앞에서도 그 토록이나 초연했던 모습이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앞으로도 만나기 힘든 초인이자 거목(巨木)일 것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지금도 지울 수가 없다.

그 형님의 또 한가지 남들과 달랐던 모습. 바로 동네 이웃에 자기의 가묘(假墓)를 해 놓은 게 있었는데 날만 새면 아픈 몸을 끌고 출근하듯이 그 가묘 앞에 가서 앉아 있다가 내려오곤 했다. 그때의 형님 표정은 곁에서 보질 않아서 모르지만 자기가 곧 들어갈 집이니 가서 집과 정을 들이는 얼굴이고 모습이지 않았을까.

아주 오래 전에 사형수들의 마지만 가는 모습을 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이름을 날렸던 사람들도 사형대에 서면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던가 하는 그런 얘기들을 적은 책이다. 하도 오래돼서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죽음 앞에서도 초연한 사람은 없다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던 것 같다.

초연, 충분히 흔들리고 동요할 만한 일에 보통사람이 ‘초연’하기가 그리 쉬운가. 특히 거저 들어올 것 같은 재물 앞에서 초연할 수 있을까? 높은 지위와 명예에 초연할 수 있을까? 돈이면 안되는 게 없는 세상에 쉽게 들어올 재물 앞에서 초연하기란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도 초연하기가 쉬울까?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적장이 잡혀 와서 목을 치기 전까지도 당당하고 초연했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 본 것이다. 아마 형님 같은 분이었다면 적에게 잡혀가서도 끝까지 초연했을 것이다. 아니 형님이 장수였다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싸움에 이기지 잡혀가진 않을셨을 것 같다. 평소 기지와 재치가 넘치는 분이셨으니.

출가하여 수행을 하는 분들은 속세에 초연해야 한다. 이게 힘드니 수행의 어려움이 회자 될 것이다. 치열하게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수행이 이루어진다. 법정스님이 이런 분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스님은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깊은 산 속에서 움막을 짓고 혼자 기거하며 수행을 하였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모든 것으로부터 초연하게 살다간 분이다. 산속의 샘물같이 맑고 주옥같은 글을 그 많이 쏟아내고 선 평소 말빚을 졌다고 힘들어 했다. 자기가 죽고 난 다음에 자기의 글을 일절 출판하지 하지 말아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지금은 절판으로 스님의 글을 많은 사람들이 접하지 못함이 참으로 안타깝다. 나도 몇 권 갖고 있지만 그때 다 구입을 못한 게 지금도 아쉽기 그지없다. 나는 스님의 저서를 다시 출간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 중 하나다. 보통사람에게 초연이란 말을 갖다 붙이긴 힘들다. 그래도 좀 초연한 척이라도 해보자고 맘먹어 보기도 하지만 소가 징검다리 건너기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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