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겁나게 부지런… 모두가 부자예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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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겁나게 부지런… 모두가 부자예유"
  • 천성남국장
  • 승인 2017.07.1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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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6모작…"대전 부추값은 우리가 결정"
이씨네 형제 고시 패스-교수 발탁 겹경사
어르신 명예경찰대는 '포청천'역할 톡톡

군북면 자모리를 찾아서①

군북면 항공사진

군북면은 면적이 65.56㎢이며 인구는 3,133명이다. 옥천군의 북서부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안남면, 동남쪽으로 옥천읍, 서쪽으로 군서면, 서북부는 대전광역시, 북쪽은 안내면과 보은군 회남면과 인접하고 있다. 환산에서 발원된 증약천이 흐르고 식장산의 수원을 받아 면 소재지인 이백리를 관통하며 서화천으로 흐른다. 군북면의 14개 리 중 자모리 마을은 세대수가 127가구 276명이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이 마을은 전 주민들이 유달리 부지런해 ‘돈 쓸 시간이 없어 전부 갑부’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인재(人才)의 고장이기도 하다. 올해 이정수(68)·김만년(58)씨부부의 둘째 아들 병찬(39)씨가 고시에 합격,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이야기, 블랙박스 제조업체 사장인 큰아들 성신(48)씨가 포항공대 교수가 된 이야기 등등 인재를 배출한 자모리 마을의 화젯거리들을 따라가 본다. 〈편집자주〉

 

◇위치와 연혁

자모리는 군북면 서남부에 위치하며, 식장산 동쪽 기슭 마을로 부추생산이 유명하다. 면적은 3.64㎢, 인구는 276명이다. 동쪽은 이백리와 인접하고, 남쪽은 식장산 산줄기로 군서면 오동리와 나누어지며, 서쪽은 식장산 능선을 경계로 대전시 동구 세천동과 접하고, 북쪽은 증약리와 인접한다.

자모리는 1739년 『여지도서』에 군북면 증약리에 속했던 마을로 기록되어 있다. 1830년대 『옥천읍지』에는 증약리가 분리되어 모곡동리(자모리)와 비하동리(비야리)가 신설되어 처음 모곡동이란 마을 명이 생겼고, 옥천 관문에서 서북쪽으로 거리가 15리라 기록되어 있다.

1908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다시 합쳐 군북면이 되었고, 비로소 자모리란 지명이 생겼다.

 

◇마을 유래

옛날 옛적에 충신이 식장산 국사봉에 올라 도성에 계신 왕을 그리워하여 그가 살던 마을을 모두 모곡동이라 부르다가 자모리로 고쳐 불렀다 한다.

또 마을 산기슭에 산뽕나무가 많아 누에를 치는 잠실이 있어 잠실이 자무실과 자모실로 음운이 변화하였고 음차하여 자모리가 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자모리 부추농가.

◇행정리

자모리 단일이며 자연마을은 윗자모실과 아랫자모실 3개 마을로 되어 있다. 주 작목으로는 대전 근접지로 근교 시설채소 농업이 발달하였다. 부지런한 근면성으로 하우스 부추재배를 일찍부터 시작해 마을의 좁은 농토를 잘 활용하여 연간 6번의 부추 수확으로 부자 마을을 이룬 새마을운동 모범마을이다.

대전의 부추 시장 가격이 그날 자모리에서 생산, 출하하는 부추량에 따라 결정된다 한다.

주요 성씨로는 옛날에 은진송씨가 살았고 경주김씨와 경주이씨가 누대에 걸쳐 살고 있다.

 

◇자모리에 효자 났네, 병찬(고시합격)·성신(교수) 형제

10년 전, 사업에 실패하고 귀향하여 호박잎 농사꾼이 된 이정수(68)·김만년(58)씨 부부는 최근 함박웃음을 띠고 열심히 호박 농사에 전념하고 있다.

이유는 둘째 아들 병찬(39)씨가 고시공부 6년 만에 합격하여 올해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것.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그 어렵다는 고시공부와 씨름 하며 드디어 어려움을 이겨내고 법관으로 등극했다.

병찬씨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 군대를 제대한 후 고시공부에 돌입해 올해 그 결실을 이뤄냈다.

큰아들 성신(48)씨는 장남으로 포항공대 전기전자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은 인물이다.

앞서 성신씨는 블랙박스를 제조하는 네비게이션 대표로 모교인 포항공대에서도 성공한 케이스로 통한다.

이번 2회 졸업생으로 포항공대 교수에 등용(6월1일자)된 것은 정년 퇴임한 교수님의 제자 사랑이 지극했기 때문으로 공을 돌렸다.

호박잎 농사를 짓고 있는 이정수·김만년씨 부부.

◇호박잎 농사꾼 이정수씨 이야기

10년 만에 귀향해 농사도 성공하고 자식 농사도 성공한 비결에 대해 모두가 “조상님 덕”이라 말하는 그는 정직한 농사꾼이 되어 있었다.

연중 6개월을 수확하는 호박잎은 600~800평에서 짓는 것으로 일손도 덜 들어가고 거름도 덜 들어 일석이조란다.

지방에서 운수업 20년, 대전에서 공장 운영, 서울 용산 전자상가에서 전자제품도 제조했던 그는 10여 년 만에 가장 찰떡궁합인 호박잎 농사꾼이 되었다.

“어떻게 아들들을 그렇게 잘 뒷받침해주셨냐”는 질문에 한사코 손사레를 치며 “모든 부모님들이 다 그런 것처럼 우리 할 일만 했는데 다 본인들이 알아서 한 일이다. 그래서 더욱 감사하게 생각한다. 유달리 어릴 적부터 공부만 하고 교훈 될 것도 없었는데 자기들이 스스로 그렇게 잘 커 주었다”고 겸연쩍게 웃음 지었다.

아들 부잣집인 이씨는 3남 중 막내인 근황도 이야기하면서 대학 졸업 후 회사원으로 성실히 일하고 있다고 설명을 한다.

자모리 마을의 칭찬을 묻는 질문에 이씨는 “자모리 주민들은 겁나게 부지런한 사람들로 일을 열심히 하고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해 모두가 부자다”며 “127가구가 사는데 하나같이 부지런하며 김영우 이장님의 마을 사랑에 주민들이 행복하다”고 설명했다.

군북면 어르신 명예경찰대.

◇군북면의 자랑인 포청천 ‘어르신 명예경찰대’

창립 6년째를 맞고 있는 군북면 어르신명예경찰대 이찬규(85) 회장은 처음에는 ‘노인교통홍보경찰’로 시작했다가 ‘어르신명예경찰대’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설명을 했다.

9개 읍면을 총괄하는 어르신명예경찰대는 포청천답게 부모에게 잘못하는 며느리에게나 술을 먹고 남에게 행패를 부리는 사람 등에게는 무서우리만큼 칼날 같고,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자애로운 부모님같이 명예경찰직을 수행하고 있어 군북면의 자랑으로 부상하고 있다.

명예경찰대 이 회장은 “그래도 우리 마을은 범죄 같은 큰일은 없지만 간혹 노력수당 20만원을 며느리가 다 써버려 시어머니가 난감해 할 때 그것을 꾸짖어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하고 있다”며 “시골에는 가끔 신랑이 술을 먹고 와서 아내를 때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도 가정 폭력으로 인정해 폭력을 휘두른 자에게 파출소에 연락해 신고를 한다고 엄포를 놓아 해결하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며 포청천다운 힘을 발휘하고 있다.

옥천군의회 1, 2대 의원, 새마을군회장을 지낸 바 있는 이 회장은 장년 시절 고향을 지키며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한 정열을 명예경찰대를 통해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최대규 파출소장은 “어르신명예경찰대는 군북면의 자랑으로 언제나 어디서나 지역주민들을 위해 노력하시는 것을 보면 늘 감사함을 느낀다”며 “오래도록 건강하셔서 마을을 지키는 늘푸른 명예경찰대가 되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마을 ‘자모리’엔 언제나 행복이

이렇듯 자모리는 정이 넘치는 마을로 누구 하나 엇나감이 없이 부지런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마을이다.

대전과 인접한 지리적 요건을 활용하여 호박잎 농사를 짓거나 다양한 농산물을 수확하는 지역주민들은 대전 공판장으로 농산물을 가져다 팔며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다.

‘부지런함이 곧 부유함’으로 탈바꿈하는 자모리 주민들은 그래서 늘 더위와 가뭄을 이겨내고 농산물을 잘 생산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들임이 틀림없다.

더 잘사는 마을로 만들기 위해 자모리 주민들은 흐르는 땀을 닦으며 오늘도 농사일에 전념하며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자모리 마을을 이끌고 있는 김영우 이장은 오늘도 주민들을 위해 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열심히 하루를 설계한다.

개인보다는 서로를 생각하는 자모리 마을은 그래서 오늘도 안마당에 행복이 넘치고 있다.

효자와 인재가 많은 마을, 부지런한 농부들이 콧노래 부르며 사는 마을 자모리의 내일은 그래서 항상 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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