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 따라 고무줄 같이 풀린 소정리길…아,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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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 따라 고무줄 같이 풀린 소정리길…아, 여기다!
  • 박금자기자
  • 승인 2017.10.12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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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회의…잘 나가던 회사 박차고 옥천에 둥지
“도자기를 빚는다는 건 인생을 빚는 것과 같아”
지금도 가마의 문이 열릴 때마다 심장이 떨려
아들 “대 잇겠다” 약속…올 봄엔 카페도 열어
여성회관 수업중 물레질을 하고 있는 정 선생.

화제의 인물 – 여토도예 정진철 선생

편집자주: 집을 나서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스치고, 일터에서는 오피스 와이프, 오피스 허즈번드란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가족보다 동료와 더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하면 아이들은 친구가 부모보다 더 좋다고 하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자기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아름다운 아내, 믿음직한 아이들과 소꿉놀이처럼 사는 사람. ‘여토도예’ 정진철씨를 소정리 길 가, 볕이 잘 드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가마에서 막 구워져 나온 체험 도자기.

▲내 새끼들 얼마나 예쁘게 나왔나

 

두어 달 만에 가마가 열리는 날이니 구경한 번 오라는 전화를 받고 카메라를 챙겼다. 그가 빚은 도자기를 아무 때나 쉽게 볼 수 없기에 서둘러 발길을 재촉했다. 저물어 가는 오후. 가을을 재촉하는 서늘한 바람이 소정리길 나뭇잎을 흩어 놓는다.

 

“내 새끼들 얼마나 예쁘게 나왔나 어디보자” 여토도예에 도착하자 가마 앞에서 혼잣말을 하는

정진철(63·여토도예)씨가 보였다. 그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돼 있다. 비단 가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가마가 열리는 날은 공들여 빚은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 기대돼 이렇듯 심장이 떨린다”고 말했다. 정씨 옆에서 도자기가 나오기를 같이 기다려 빛깔과 모양 등을 꼼꼼히 챙기는 것은 그의 아내(56·손영미)몫이다. 손씨는 “도자기 만드는 과정이 모두 수작업이다 보니 우리 부부는 두 달에 한번은 심장이 쫄깃해진다”며 “도자기 체험을 해 본 사람만이 그 짜릿함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회관 도자기 공예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매주 화요일 도자기 체험교실 운영

 

정선생은 옥천 여성회관에서 매주 화요일 도자기 체험교실을 운영하기도 한다. 그가 수업을 할 때 수강생들에게 꼭 해 주는 첫 마디는 “도자기를 빚는다는 것, 우리 인생을 빚는 것입니다”이다. “마음을 진정시켜 점(사)토를 섞고, 성심을 다해 반죽한 후 성형을 하며, 문양을 넣을 때는 흔들림 없이 시문을 해야 한다. 그렇게 빚어진 기물을 그늘에서 말릴 때는 조바심 내지 말고 기다려 초벌구이를 하고, 옷을 입혀 그에 맞는 빛깔을 낸다. 그리고 엄청난 열기 속에서 스스로 익어가야 비로소 제 역할을 하는 도자기로 탄생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수강생 A씨는 “도자기 수업이 있는 매주 화요일은 내가 만드는 작품에 열중하는 즐거움도 크지만, 선생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크다”고 말한다.

 

▲ 아름다운 소정리 길가에 자리 잡다

 

정대표는 21년전 이 곳 옥천으로 들어 왔다. 그가 이곳으로 오기 전에는 유명 도자기 회사에서 디자인을 맡았다. 당시는 도자기 산업이 호황이어서 연봉도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넉넉했다. 신은 좋은 것을 선물로 주면 다른 것 하나는 가져간다고 했던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대신 시간적 여유와 가족간의 화목은 어딘가에 저당 잡혀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 하기만 했다. 그가 자신감을 잃어가며 허덕이고 있을 때 그의 친구들도 같은 생각을 했던지, 하나둘씩 이천과 곤지암으로 떠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이 마치 긴 터널처럼 답답했다” 고 정대표는 털어 놓는다. “아내와 상의 끝에 정착 할 곳을 물색했어요. 대전을 거쳐 지금 우리의 둥지인 소정리에 자리를 잡았죠. 대청호를 끼고 느슨하게 풀려있는 고무줄 같은 이 소정리 길이 얼마나 예쁘던지, 아! 여기다!”라며 탄성을 질렀다고 한다.

 

▲ 살아있는 도자기는 빚는 사람의 몫이다.

 

정대표 가족이 사는 방법은 단순하고 여유롭다. 아침이면 눈앞에 대청호가 보이고, 물길의 끝자리엔 어깨동무를 한 작은 산들이 그림처럼 펼쳐 있다. 그 곳에 요즘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 바로 도자기 체험을 위해 아이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햇빛 좋은 날, 노란 옷을 입은 천사들이 유치원 차에서 내리면 정 대표도 덩달아 신이 나서 말 수가 는다고 한다. “내가 아이가 되지 않으면 아이들이 빚을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알릴 길이 없다”고 그는 말한다. ‘여토도예’ 사람들은 그렇게 아이들을 만나고, 지난봄 벚꽃이 필 때 문을 연 ‘찻집’손님을 대한다고 한다. 때마침 정대표의 아내가 잘 덖어 노랗게 우러난 목련차를 내어 온다. 향이 참 좋았다.

완성된 도자기 전시실.

▲ 아름다운 곳, 지켜야 할 곳

 

정대표가 이곳에 자리를 잡기까지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옥천으로 진입하려면 보은쪽에서 37번 국도를 탄다. 안내면을 시작으로 소정리 길 끝까지 뻗어 있는 작고 예쁜 국도가 신도로가 생기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긴 것이다. 신도로가 생기기 전 이 곳은 사람들이 산책을 위해 먼 곳에 차를 두고 걷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이 도로는 국토교통부가 ‘환상의 드라이브코스’로 지정할 만큼 아름답다. 정대표네 ‘여토도예’도 벚꽃이 필 때면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왔다고 한다. 정 대표는 길목 좋은 이곳에 투자도 많이 했다. ‘여토도예’ 곳곳을 강원도에서 직접 가져온 노송으로 인테리어를 했다. 그래서일까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향도 일품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고운 길을 멀리하고 점점 신도로로 옮겨갔다. 정대표는 떠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기 위해 기관 이곳저곳의 문을 두드려서 지금의 도자기 체험장과 찻집(카페)의 입간판을 얻어냈다. 덕분에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의 아내가 덖어낸 ‘꽃차’를 마시며 도자기를 이야기 하러 오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한다.

 

▲ 대를 잇는 도자기 부자(父子)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는 정씨 부부에게는 헤어디자이너의 꿈을 키우는 딸(25·유진)과 부부의 뜻을 이어줄 아들(28·현우)이 있다. 아들의 어릴 적 꿈은 축구선수였다. 그런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한국도예고등학교’ 입학을 결정한 것은 그의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아들이 그런 결정을 하게 된 동기가 있어요. 오래전 도자기 전시회를 위해 일본에 갔다가 그 곳 도자기 장인 중 한 분의 작업장에 가게 됐어요. 7대째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도자기 가마와 작업장을 보고 놀라서 할 말을 잃었죠. 왜 수리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 분은 개조를 하면 7대째 이어져 온 도자기의 감각도 사라질 것 같아 그대로 둔다고 하더라구요. 그 이야기를 집에 돌아와서 아들에게 했지요. 아들은 고민 끝에 자기도 내 뒤를 잇겠다고 하더군요. 아들은 그저 내 뜻을 따르기만 한 것 같진 않아요. ”도예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과 졸업을 한 후, ‘한국전통문화대학’까지 갔으니 도자기 일을 즐기는 것이 확실해요” 정 대표는 아들이 얼마나 믿음직한지 입에 침이 마를 새 없이 칭찬한다.

 

땅거미가 여토도예의 정원에 찾아온 줄도 모른 채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이 이어갈 ‘여토도예’가 옥천인들의 쉼터가 되기를 바라는 정 대표의 마당에 홍시꽃(오래두고 보기 위해 따지 않는 홍시를 스스로 그렇게 칭한다)이 붉게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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