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 보편적 인간애 소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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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즘 보편적 인간애 소의 죽음
  • 최성웅 전 충북일보 논설위원
  • 승인 2017.10.1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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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웅 전 충북일보 논설위원

한적한 시골 마을에 가축 울음소리와 중장비 굉음 소리가 요란하다.
어떻게 알았는지 축사 안의 소들은 무덤을 팔 때부터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눈가엔 눈물이 고인 채 고개를 쳐들고 음매 음매 연신 외쳐댄다.
깊이 패인 구덩이에 두꺼운 비닐이 깔렸다.
소들에게는 염화석 시 닐 콜린 주사가 주어졌다.
소들은 맥없이 주저 않는다.
먼저 구덩이에 떨어진 소들은 한쪽으로 몰려 쌓기 시작했다.
새끼때문에 제일 늦게 주사를 맞게 된 어미 소는 송아지를 가랑이 사이에 감추고
내주려 하지 않다가 함께 쓰러진다.

가축들은 어디에 하소연도 해보지 못한 채 이렇게 파묻혔다.
말 그대로 생매장을 당하는 것이다.
인도적 살처분에 대한 정치적 지침도 없다 보니 현장에서는 빨리 빨리만 외쳐댄다.
안락사 약품이 없다고 돼지의 생매장은 이미 관행화돼 있는 듯하다.
그나마 소의 살처분 약품으로 공급되는 ‘염화석 시 닐 콜린’도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데는 미흡하다.
안락사 용도가 아니라 근육 마비제이기 때문이다.
소들이 땅속에 묻히자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잠잠해졌다.

방역담당자들은 ‘못 할 짓’이라며 자리를 떴고 자식 같은 소를 잃은 농민은 텅 빈 축사를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다.
구제역 살처분되는 소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구제역이 몰고 온 참극은 전 지역에서 예방이라는 명목으로 우리 가축들의 목숨을 이렇게 앗아가고 있다.
2014년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0여만 마리가 살처분됐고 이미 구제역 유입 가능성을 차단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피해확산이 구제역의 국내 진입단계부터 방역단계 축산환경이 모든 부문에서 예견된 일이라고 개탄한다.
건강한 환경에서 사육해야 동물도 건강해지고 식품안전도 기대할 수 있다는 철학을 우리는 망각하고 지낸 것이다.
국민 14명당 소 1마리, 4명당 돼지 1마리, 5명당 닭 4마리를 기르는 우리가 동물복지를 외면한 채 과도한 밀집 사육과 예방에 소홀했으니 당연히 겪는 실연일지도 모른다.
난 죽어가는 가축들을 보면서 얼마 전 진한 감동을 주었던 영화 ‘워낭소리’를 떠올린다.

사람과 소가 교감하면서 꾸밈없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경계가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앞서가던 소가 주인의 기척이 없자 느릿느릿 뒤돌아보던 그 장면은 두고두고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뒤돌아보다가 돌이 된 신화의 주인공에서 보듯 뒤돌아봄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행동이 아니던가
천수를 누린 소의 죽음이 다가오자 주인은 고삐와 워낭을 풀어주었다.
소 한 마리의 매장도 그 역시 사람의 경우와 비교되는 까닭이겠지만 대단한 규모였다.
이런 가축 200만 마리를 매장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다.
담당 공무원들조차 휴직하고 심한 경우 사직까지 잇따른다니 오죽할까 동물들의 세계는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은 다만 놀라운 지력[知力]으로 문명을 일구었을 뿐이다.
개와 고양이 등의 가축은 이제 애완의 수준을 넘어 반려동물이라 불리는 단계까지 왔다.
인간은 어차피 모순적인 존재이긴 하지만 TV에서 한우사랑 광고를 보면서 사람이 동물을 사랑하는 방식이 대상의 종에 따라 이토록 다를 수 있나 하는 묘한 생각을 하게 된다.

소의 수명은 대략 20년이라는데 우리가 사랑하는 한우들은 가장 맛있는 고기를 제공해주기 위해 2년 남짓 살다가 생명을 내놓게 된다.
무려 40년을 살다간 ‘워낭소리’ 주인공 소는 그 자체로 기적이었던 셈이다.
휴머니즘 보편적 인간애는 아름다운 말이지만 거기에는 동물과 같은 생명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다.
이것이 서구 문명의 한계다.
아마도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동물들을 도축해 먹는 일을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생명을 지닌 모든 것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는 지녀야 하지 않을까
뒤늦게라도 정부에서 ‘동물복지’를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정책이 실현되어 인간애 대한 자연의 복수를 모면할 수 있는 길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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