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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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나’
  • 김현희 시인·역학자
  • 승인 2017.11.0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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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 시인·역학자

운명에 순응할지 저항할지는 ‘나’에 게 달려 있다. ‘나’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나’이다. 명리학은 ‘내’가 성공할지, 좌절할지, 몇 살에 병에 걸릴지, 몇 살에 죽을지를 예언하는 학문이 아니다. ‘나’보다 큰 단위인 국가나 세계의 상황이 ‘내’ 운명을 조절하기에, 개인 이 타고난 사주는 지금 ‘내’ 모습에 대 한 합리적 해석 거리일 뿐이다. 

‘내’가 좋은 팔자로 태어났어도 국 가가 전쟁 중이면 불행에 처할 것이 고, ‘내’가 나쁜 팔자로 태어났어도 국민 소득이 일 인당 7만 달러가 넘는 복지 국가라면 먹고살 만할 것이다. 개인은 우주 일부로서 아주 작은 원 자이기에 우주가 흐르고 있듯이 ‘나’ 도 우주의 기운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 고정된 ‘나’는 없다. 그래서 ‘나’를 천 지자연의 기운이 잠시 모였다가 사라지는 자연물로 생각하면 삶이 편안해 질 것이다. 

심장을 뛰게 하는 것도 숨을 쉬게 하는 것도 ‘내’ 의지가 아니라 신체의 불수의근이 하고 있다는 것을 보아도 ‘나’의 의지가 작용하는 영역은 그리 크지 않다. 명리학은 ‘나’의 변화과정을 자연의 변화과정에 유추해서 해석하는 학문이다. ‘내’가 물(壬이나 癸일간 중 하나)의 기운으로 태어났어도 봄에는 나무를 키우는 봄비로, 여름에는 대지를 적시는 폭우로, 가을에는 식물을 죽이는 서리로, 겨울에는 땅을 얼리는 얼음으 로 변하고 있다. 이렇듯 ‘나’라는 일간은 계절의 흐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해야 살아지는 수동태이다. 

‘나’는 ‘나’의 의지로 사는 것 같지만 ‘나’보다 더 큰 우주나 자연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며 살고 있다. 명리학은 주변 상황이 ‘나’보다 큰 세력임을 알고 ‘나’를 조심스럽게 대하라는 학문이다. 그리고 올해 구설수가 있을 것이니 말조심을 하라거나, 돈 문제가 어려 울 것이니 돈거래를 하지 말라거나, 건강이 약해질 것이니 건강관리에 신 경 쓰라는 격려와 위로를 하는 심리 학이다. 

명리학은 일종의 일기예보 정도로 다가올 태풍이나 비바람을 피할 방법을 미리 대비하는 학문이다. 맹신할 필요가 없다. 사주에 ‘내’가 관운(출세운, 명예운, 승진운)이 있고, 재운(재산운)이 있다면 조직 사회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기에 더 노력하면 된다. 또 사주에 공부운이 있으면 학자 쪽으로 진로를 결정해도 좋고, 재능 운이 있다면 자기 재능을 알고서 개발하면 성취감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노력에 대한 보상은 ‘내’ 의지의 결과물이 아니라 ‘내’가 속한 조직이나 사회가 결정할 것이다.

태어난 생년월일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가 준 팔자이다. 이미 시작부터 ‘나’의 의지로 태어난 게 아니다. 살면서도 부모나, 선생님이나, 선배나, 상사의 눈치 속에서 ‘나’는 조절되거나 동화되면서 나이 먹고 있다. ‘나’는 ‘내’가 만나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구성물이기에 ‘나’라는 일간은 ‘내’ 주변에 배치된 자연의 기후에 따 라 흐를 뿐, ‘내’ 의지로 ‘내’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은 허구이다. 

나쁜 사주는 없다. 나의 장점을 아는 쪽으로 사주해석이 쓰여야 한다. 인간 혼자서는 본질적인 ‘나’의 가치가 없다. 그 대신 ‘나’와 연결된 사람이나 조 직이나 사회로부터 자기의 가치가 발 생한다. 사주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람 과의 관계 속에서 변한다. 그래서 사주를 보고 ‘내’ 운명이 정해졌다고 속단하지 말고, 내일이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자기 암시를 해야 한다. 그렇게 쓰이기 위한 학문이 명리학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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