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싶은 『정지용시집』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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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싶은 『정지용시집』 Ⅰ
  • 김묘순 문학평론가 시인·수필가
  • 승인 2017.12.0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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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시집』을 아십니까?
흔히 『정지용시집』은 1935년 10월 27일 시문학사에서 발간되었으며 박용철이 서문 격인 발(跋)을 적은 정지용 최초의 시집이다. 보통사람들은 이 정도의 상식에 접근할 것이다.

하긴 대부분의 연구자들도 그렇게 인식하고 정지용에 접근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재미있는 사실들이 웅크리고 있다. 여기에 그 사실들을 이야기고자 한다.
그래서 책을 발간한 의도와 목적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는 박용철의 跋을 그대로 옮겨본다.
필자는 당시의 정서를 반영하기 위하여 현재 문법에 맞게 바로잡지 않기로 하였다.
이 기회에 독자들이 『정지용시집』의 跋을 원본대로 읽어보길 권한다.

천재 있는 詩人이 자기의 制作을 한번 지나가버린 길이오 넘어간 책장같이 여겨 그것을 소중히 알고 앨써 모아두고 하지않고 물우에 더러진 꽃잎인듯 흘러가 버리는대로 두고저 한다하면 그 또한 그럴듯한 心願이리라. 그러나 凡庸한讀者란 또한 있어 이것을 인색한사람 구슬 갈므듯 하려하고 「다시또한번」 을찾어 그것이 영원한 花甁에 새겨 머믈러짐을 바라기까지 한다.
지용의詩가 처음 朝鮮之光(昭和二年二月)에 發表된 뒤로 어느듯 十年에 가까운 동안을 두고 여러가지 刊行物에 흩어저 나타낫던 作品들이 이詩集에 모아지게 된것은 우리의 讀者的心願이 이루어지는 기쁜일이다.
單純히 이기쁨의表白인 이跋文을 쓰는가운대 내가 조금이라도 序文스런 소리를 느려놀 일은 아니오 詩는 제스사로 할말을 하고 갈 자리에 갈것이지마는 그의 詩的發展을 살피는데 多少의 年代關係와 部別의說明이 없지못할것이다.
第二部에 收合된것은 初期詩篇들이다 이時期는 그가 눈물을 구슬같이 알고 지어라도 내려는듯하든 時流에 거슬려서 많은 많은 눈물을 가벼이 진실로 가벼이 휘파람불며 비누방울 날리든 때이다.
第一部는 그가 카톨릭으로 改宗한 이후 촉불과손, 유리창, 바다·1 等을 비롯해서 制作된 詩篇들로 그 深化된 詩境과 妥協없는 感覺은 初期의 諸作이 손쉽게 親密해질 수 있는 것과는 또다른 境地를 밟고 있다.
第四部는 그의信仰과 直接 關聯있는 詩篇들이오.
第五部는 素描라는 題를 띠였든 散文二篇이다.
그는 한군대 自安하는 詩人이기 보다 새로운 詩境의 開拓者이려한다. 그는 이미 思索과 感覺의 奧妙한 結合을 向해 발을 내여 드딘듯이 보인다.
 여기 모인 八十九篇은 말할것없이 그의 第一詩集인것이다.
이 아름다운 詩集에 이 拙한 跋文을 부침이 또한 아름다운 인연이라고 불려지기를 가만이 바라며      
朴 龍 喆

김영랑, 박용철 등과 함께 1930년대 시문학파 활동을 하였던 정지용. 박용철의 소개로 김영랑과 시문학 활동을 같이 하게 된 정지용. 김영랑은 당시 “OO, OO 보다도 지용 하나가 더 소중”하다고 하였단다.
이는 당시 시문학파에서 정지용의 존재감을 알 수 있게 해준다.

1935년 봄, 정지용, 박용철, 김영랑은 임화의 병문안을 간다. 그때 카프의 맹장으로 명성을 날리던 임화는 카프의 해산과 폐병의 심화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임화의 문병을 마치고 돌아오며 셋은 시집을 발간하기로 하고 『정지용시집』을 10월에, 『영랑시집』을 11월에 이어 발간하게 된다. 아마도 정지용의 명성으로 인해 『영랑시집』보다 먼저 『정지용시집』을 발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용철은 정작 자신의 시집은 발간하지 못한 채 1938년 5월 병사하였다.
정지용은 「날은 풀리며 벗은 앓으며」에 박용철의 기억을 더듬는다. 그해 정월이 끝날 무렵 박용철의 집을 방문한 정지용은 전유어를 안주 삼아 은주전자에 따끈하게 술을 데워 마셨다.
은 깍지잔으로 다섯쯤 되는 것을 혼자 마신 정지용은 “이 사람이 이 해동 무렵을 고이 넘기어야 할 터인데······.”라며 박용철의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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