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 모여서 빈둥빈둥? 할 일도, 하는 일도 너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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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 모여서 빈둥빈둥? 할 일도, 하는 일도 너무 많아요”
  • 박현진기자
  • 승인 2017.12.07 1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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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장애복지관, 노인-장애인 복지관으로 분리 추진
분회장-경로당 회장들에 월 5만원 교통비 지원 건의
“사무국 직원들 쉴 틈 없는 격무…주민들 알아줬으면”
노인회 옥천지회장 재선된 임계호 회장

이른 아침. 시계가 5시를 가리키는 것을 보며 대문을 나선다. 한겨울 새벽 칼바람이 매섭다.
단단히 챙긴 목도리를 한 번 더 여며 봐도 온몸이 오그라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에헴!” 춥다고 돌아갈 양이면 아예 나서지도 않았지. 헛기침으로 추위에 ‘호령’을 하곤 앞만 보고 걷는다. 바람막이 하나 없는 공설운동장에 도착하니 황량한 바람이 또 실험에 들게 한다.
까짓. 그냥 걷는다. 걷고 또 걷는다. 트랙을 따라 7바퀴를 돌고 나서야 집으로 향한다.
한 바퀴 도는 데 7분, 7바퀴를 돌면 49분이고 집에서 오가는 시간을 합하면 꼭 1시간이 걸린다.
매일 1시간씩 걷기를 꼬박 20년. 여든다섯 나이에도 관절염이 없는 건각을 자랑하는 이유다.
대한노인회 옥천군지회 임계호(85·옥천읍 문정리) 회장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지난해 열린 노인회 부설 노인대학 졸업식 기념촬영.

△ 책임감 고취 등을 위해 필요
    적은 돈으로 큰 효과 볼 것

2013년 12대 회장에 당선돼 노인회를 이끌어온 임 회장은 13대 회장에 재선되면서 2021년 12월 2일까지 노인회를 이끌게 된다.
임 회장의 가장 큰 목표는 현재의 노인·장애인복지관을 노인복지관과 장애인복지관으로 분리하는 것이다.
노인과 장애인은 서로 요구하는 것이 다르고 필요한 복지서비스도 다른데 한 공간에서 통합 운영되다보니 양측 모두 불만족스럽다는 얘기다.
다행히 지난해 복지관에 별관이 생기면서 노인회 사무실을 별관으로 옮겨 조금 나아지긴 했다.
하지만 현재의 2층 별관을 5층으로 증축해 노인 전용공간으로 활용하면 분리도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 임 회장의 판단이다.
그는 “노인과 장애인 행정의 분리는 노인뿐만 아니라 장애인에게도 더 나은 길이 될 것”이라며 “군에서는 아직 시기상조라지만 임기 중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꾸준히 요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이번에 당선되면서 ‘특별한’ 또 한 가지를 군에 건의했다.
옥천군 내 9개 노인회 분회장과 295개 경로당 회장에게 월 5만원씩의 활동비(교통비 등)를 지급해달라는 것.
임 회장은 “이들은 명예직이라서 무보수로 일하고 있지만 책임감 고취와 봉사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며 “2억원 가까운 예산이 필요하지만 그 효과는 ‘고작 5만원’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외에도 임 회장은 노인일자리 창출과 경로당 지원, 노인 돌봄서비스 확대, 노인을 돕는 노인회 운영 등을 통해 노인들의 권익 신장과 복지증진에 주력할 방침이다.

지난 10월 15일 제1회 옥천군민의 날 기념식에서 읍면 노인회장들이 지역에서 떠온 물을 합수하고 있다.

△ 공공근로에도 빠진 노인들
    4년간 420명에 일자리 주선

임 회장은 매일 아침 9시면 어김없이 출근한다. 사무국 업무가 많은데 혹시나 회장의 결제가 늦어져 추진이 지연될까봐서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인회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놀고먹고, 모여서 시간이나 보내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우리 사무국 직원들은 허구한 날 야근을 해가며 뛰어다니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재 옥천군에는 1만3692명(총인구의 26.4%)의 노인이 살고 있다. 노인회 소속 회원만 해도 1만명이 넘는다.
이들을 위해 유용술 사무국장을 중심으로 조원걸 경로부장, 염미숙 총무부장, 주종순 취업지원센터장이 근무하고 있으며 부설 노인대학이 운영되고 있다.
연중사업으로 노인들의 전통지혜를 발굴하고 전승하는 ‘노인솜씨자랑지원사업’, 매년 800여명이 참가해 자연정화활동 등을 벌이는 ‘노인자원봉사자클럽 지원사업’, 9개 분회와 295개 경로당을 관리하는 ‘경로당 활성화 추진사업’, 16명 강사의 경로당 순회활동으로 운영되는 ‘9988 행복나누미’ 사업, 독거·노인부부·조손가정 등을 방문해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상담을 돕는 ‘9988 행복지키미’ 사업, 보건복지부 지정 60세 이상 노인의 구인·구직을 알선하는 노인취업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또 경로당 안전관리, 문화예술, 한글교실 등 65세 이상 노인의 경륜과 전문지식을 활용해 사회참여활동 기회를 부여하는 ‘노인재능나눔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임 회장은 “이들 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관내 1개 읍, 9개 면을 돌아다니느라 사무국장은 물론 경로부장, 총무부장까지도 자리에 앉아있을 시간이 없다”며 “직원 4명이 감당하기에는 하는 일도, 해야 할 일도 너무 많다”고 걱정했다.

야근이 다반사라는 주종순 취업지원센터장은 “공공근로 일자리조차 받지 못한 노인들을 위해 최근 4년간 670여명의 희망자 중 420여명에게 취업을 알선해 줬다”며 “경비직, 미화직, 생산직 및 운전직, 주유원 등의 일자리지만 꼭 필요한 분들에게 생업을 마련해준 것이라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옥천군보건소가 전개한 ‘치매안심 행복옥천’ 캠페인에 노인회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 노인회장, 내세울 것 없어…
    성심을 다해 최선을 다할 뿐

부인 정갑영(82) 여사와의 사이에 1남4녀를 둔 옥천 토박이 임 회장은 2017년이 생애 가장 기쁜 해라고 말한다.
지난 9월에 대한노인회충청북도연합회 부회장에 당선됐고 10월에는 노인복지증진을 위한 사회활동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11월에 옥천군노인회장으로 다시 당선됐기 때문이다.
이미 경로당 회장 10년에 분회장 4년을 지낸 바 있는 그가 노인회장에 재선됐다고 무에 그리 기쁠까?

10월 20일 서울 더플라자호텔 그랜드볼륨에서 열린 제21회 노인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임계호 회장(오른쪽). 하지만 그는 이날 받은 훈장을 절대 달고 다니지 않는다.


그는 “노인인 내가 노인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주어지지 않았느냐”며 “하고 싶은 일을 더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대통령상까지 받았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임 회장은 대통령상으로 받은 훈장을 절대 달고 다니지 않는다. 그는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은 노인문제”라며 “이 나이에 잘 아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 결코 자랑하거나 내세울 일이 아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감사한 마음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게 가장 노인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13대 옥천군노인회장 임기 개시일인 지난 3일 취임식을 갖지 않았다. 회장이 바뀐 것도 아닌데 할 일 많은 직원들에게 쓸데없는 일을 만들어줄 필요가 없다는 것. 그는 저녁 한끼라도 대접하고 싶다는 직원들의 호의마저 거절했다.
그저 조용히 할 일을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언론 인터뷰도 꺼려왔다는 임 회장. 하지만 주민들에게 노인회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알려줘야 할 것 같아 이번에 수락했다는 그의 마음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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