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향수」의 正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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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향수」의 正本
  • 김묘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18.01.2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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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문학평론가

정지용의 「향수」는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으로 채색된 서정적인 아름다움으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그는 궁핍했던 1920년대 농촌의 실상을 ‘옥천’이었음직한 ‘고향’이라는 공간에 담아낸다. 그 고향은 지극히 조선적인 그리움을 노래하며 옥천을 설화적인 공간으로 설정하게 된다. 이렇게 옥천과 깊은 관련이 있는 「향수」의 正本에 대한 연구는 드물다. 正本(an original text)이란 ‘문서의 원본’을 의미한다. 그럼 原本이란 무엇인가? 원본이란 ‘베끼거나 고치거나 번역한 것에 대하여 근본이 되는 서류나 책으로 등사·초록·개정·번역을 하기 전, 본디의 책’이나 작품으로 원간본을 의미한다.
그러면 졸고 「정지용 「향수」의 再考」(『충북학』19집, 충북학연구소, 2017)를 참고해 어느 노신사로부터 들은 「향수」에 대한 일화를 정리해 본다.

1923년 정지용이 일본 교토 동지사대학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이었다. 정지용은 「향수」 초고를 친필로 써서 친구들 앞에 내놓았다. 이 시를 본 한 기생이 「향수」 시가 적힌 종이를 달라고 정지용에게 졸랐다. 그 「향수」가 기생의 마음에 썩 들었던 모양이다. 기생은 “이 시를 주면 오늘밤 요리 값을 모두 내겠다.”라고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그 기생은 종이와 붓, 벼루를 사들고 다시 돌아왔다. 이 기생의 청을 마다하지 못한 정지용은 「향수」 시를 그대로 적기 시작하였다. 기생이 방금 사들고 온 종이에 옮겨 적은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썼던 「향수」 초고를 기생에게 줬다고 한다. 처음 적은 「향수」는 기생에게 줘버리고 정지용은 다시 베껴 쓴 「향수」 뭉치를 저고리 안주머니에 깊이 넣었다.
물론 그날 밤 요리 값은 모두 기생이 지불하였다. 그래서 향수 최초 본은 어느 기생의 손으로 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기생이 가져간 그 「향수」 원고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즉 정지용은 애초 지었던 「향수」를 다시 다른 종이에 쓴 다음  처음 것은 기생에게, 다시 쓴 것은 정지용 자신이 가졌다는 이야기였다. 이는 정지용이 1927년 3월 『조선지광』에 「향수」를 발표할 때 작품 말미에 ‘1923. 3. 11.’이라고 창작시점을 표기한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아마 종이에 옮겨 적을 때 작품 말미에 창작시점도 같이 적었을 것이라는 유추를 가능하게 하는 부분이다. 이로 보아 「향수」 초고는 1923년 작품임을 짐작해낼 수 있다.
다시 「향수」 정본에 대한 문제로 돌아가 보자. 정지용과 기생의 일화로 보면 「향수」 정본은 기생이 소지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향수」 정본과 관련, 이 기생과의 일화에 대한 진위 여부 논란이 대두될 것이다.
그러나 이 노신사가 있지도 않았던 이야기를 하였을까? 그 노신사의 이야기는 거짓이 아니라는데 무게를 싣고 싶다.
왜냐하면 그 노신사가 있지도 않았던 이야기를 구사할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지용은 1923년 4월 박제찬과 함께 일본 교토 동지사대학으로 유학을 앞두고 있었다. 고국을 떠나는 그의 마음은 심란하였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아마 유학가기 전 친구들과 고별의식이 있었던 자리에서의 일이라는 개연성을 짙게 해주는 부분이다.
이로 미루어 정지용 「향수」의 正本은 어느 기생이 소중히 간직하여 세상에 아직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 부분과 관련 정확한 증빙 자료가 나타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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