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향수」의 정본(定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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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향수」의 정본(定本)
  • 김묘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18.03.08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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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문학평론가

정지용의 「향수」 정본(正本)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면 이러한 상황에서 「향수」의 정본(定本)은 무엇으로 정할 것인가? 독자나 정지용 연구가들은 정본(定本)에 관심을 두게 될 것이다. 정본(正本)이 문서나 작품의 원본이라면 정본(定本)은 여러 이본(異本)을 비교·검토하여 정정해서, 가장 표준이 될 만한 작품이나 책을 의미한다. 졸고 「정지용 「향수」의 再考」(『충북학』19집, 충북학연구소, 2017)를 참고해 정본(定本)의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1950년 이전, 정지용이 자신의 작품 「향수」를 『조선지광』에 처음 발표한 후 『정지용 시집』이나 『지용시선』에 실을 때 개작을 하였다. 물론 시행을 바꾸거나 연을 달리하는 정도의 변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지용은 「향수」에서 시어를 바꾸거나 음운표기를 달리하기도 하였으며 띄어쓰기도 변화를 주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한 개작은 정지용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왜냐하면 「향수」 초고를 1923년에 쓰고, 1927년에 「향수」를 지면에 최초 발표를 하였다. 무려 4년의 시간 동안 정지용은 「향수」를 책상 서랍에 잠재우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1939년 8월에 창간된 『문장』에 시 부분 심사를 맡았던 정지용은 신진순 군에게 “다음에는 원고 글씨까지 검사할 터이니 글씨도 공부하”라며 까다롭게 심사하였다. “옥에 티와 미인의 이마에 사마귀 한 낱이야 버리기 아까운 점도 있겠으나 서정시에서 말 한 개 밉게 놓이는 것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이며, 돌이 금보다 많”다고 타박을 하였다. 이는 박목월의 작품에 대한 정지용이 내린 우박 같은 평이었다. 그런데 하물며 자신의 작품에는 어떠하였겠는가? 아마도 끝없이 갈고 닦으며 퇴고하였을 것이다.

정지용의 이러한 칼칼하고 촘촘한 성격은 시를 정서(正書)·개작하는 데에도 작용되었을 것으로 유추한다. 그러나 『정지용 시집』은 박용철이 발간비를 부담하였다. 물론 정지용의 발표작을 찾고 시집의 순서를 정하는 것도 박용철이 진행하였다. 이러한 박용철의 편집은 정지용의 시적변모를 의도적으로 반영하여 정지용의 위상이 확립되고 명성도 얻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는 정지용의 뜻이 아닌 박용철의 의도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정지용은 『정지용 시집』과 『백록담』(1941)에서 「향수」 등 25편을 가려 뽑았다. 그렇게 자신이 직접 고른 시로 『지용시선』(1946)을 간행하였다. 그러면 이 『지용시선』에 실린 「향수」가 정지용의 의도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첫째, 정지용의 개인사적인 문제에서 기인하였다. 인간 정지용에게 1946년은 혼돈과 괴로움의 시기였다. 그해 그는 돈암동으로 이사를 하였다. 그리고 모친 정미하의 사망과 직면하게 된다. 또 경향신문사 주간으로 취임하였으며 문학가동맹 아동분과위원장을 맡기도 한다.  이러한 복잡한 가정사와 주변의 문제가 정지용을 극도로 피로하게 하였을 것이다.

둘째, 정지용은 문학적으로 『정지용 시집』(건설출판사)을 재판하였다. 뿐만 아니라 『백록담』(백양당, 동명출판사)도 재판으로 간행하였다. 또 그가 『문장』지에 추천한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이 『청록집』을 간행하였다. 이 시기 정지용은 상당히 분주하게 보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1946년은 정지용의 시집들이 발행되며 그의 시에 대한 인기나 업적이 집약적으로 드러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정지용 개인에게 들이닥친 혼돈과 피로는 오로지 홀로 감수하여야만 하였다. 이런 상황은 「향수」 개작 과정에서 정지용의 의도를 마음껏 들여놓을 수 있었을까? 아니다. 그것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시에서 시어의 배치와 변화 그리고 띄어쓰기 등은 시의 의미 지표로 작용하기 때문에 정본(定本)확정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정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에 정지용의 의도가 가장 많이 적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향수」의 정본(定本)은 『조선지광』의 발표본으로 삼음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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