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권 넘겨주고 “순수영업사원으로 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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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권 넘겨주고 “순수영업사원으로 뛰겠다”
  • 박현진기자
  • 승인 2018.04.12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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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 원으로 시작, 연 매출 10억대 기업으로 성장
수차례 태풍피해에도 다시 일어선 ‘긍정의 사나이’

20대 초반에 늘 정장 입고 다닌 멋진 신사. 사비 2000만 원을 들여 옥천읍 어르신 800여 분께 경로잔치를 열어 드린 아름다운 청년. 그가 바로 행사전문기업 김대훈(50) 대표다. 당시에는 좋아서 한 일이었지만 ‘잘 나가는 웅변학원 최연소 원장’은 하늘 높은 줄 몰랐다. 그러다 한순간 ‘어리석은 선택’으로 18년 간 해온 학원 운영을 마무리했을 땐 수중에 남은 돈은 단 200만 원뿐. 그는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섰다. 200만 원으로 천막 10동을 마련해 시작한 행사전문업체. 운영 10년 만에 연 매출 10억대 기업으로 일궈낸 김 대표를 만나 롤러코스터 같은 그의 성공신화를 들어본다.  <편집자주>

꽃샘 칼바람이 제법 매섭던 3월 중순.
옥천읍 삼청리 소재 한 재활시설을 찾아가는 길에 허름한 담벼락에 걸린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2018 주민 화합과 풍년을 기원하는 가풍·삼청 마을잔치’라는 제목의 현수막엔 주최도, 후원도, 연락처도 없이 ‘2018년 3월24일 11시 30분~ 장소:큰길 행사전문기업’이라고 적혀 있었다. 차를 세워 자세히 들여다봤다. ‘사회 6시 내고향 이병철, 품바공연, 변검공연, 난타공연, 밸리댄스, 마술공연, 초대가수 공연에 점심식사는 물론 화장지, 기념품 등을 증정’한다고 빼곡히 써 있었다.

얼핏, ‘큰길’이라는 이벤트사에서 마을잔치를 대행하나 보다고 추측하면서 제법 큰 행사 같은데 주최자가 누군지, 어디로 연락을 해봐야 하는 건지 막연했다.
갸우뚱하며 목적지를 향해 가는데 똑같은 현수막이 시선을 잡았다. ‘큰길 행사전문기업’이라는 간판이 걸린 대형건물의 입구에 걸린 현수막. 그 아래에서는 물뿌리개로 무언가 세척작업을 하고 있는 듯한 서너 명의 직원들, 그냥 봐도 수천 개는 됨직한 행사용 의자, 켜켜이 쌓인 접이식 천막에 특수무대 제작용 철골구조, 대형 덤프트럭과 중소형 트럭들이 정차한 넓은 마당까지 얼핏 지나치며 보기에도 그 규모가 상당해 보였다.
여기가 그 이벤트사인가? 궁금증을 뒤로 한 채 재활시설 볼일을 보고 내려오면서 1층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지난달 24일 김대표가 자비로 마련한 가풍·삼청리 마을잔치가 큰길 행사전문기업 마당에서 열렸다.

△ 베푼다는 것 자체가 ‘행복’
그랬다. 가풍·삼청리 마을잔치는 ‘큰길’ 행사전문기업 김대훈 대표가 4년째 지인들의 재능기부를 받아 자비로 펼치고 있는 경로잔치였다.
방송 프리랜서인 이병철 전문사회자와 임복환 옥천읍 부읍장의 품바공연 등 인간관계로 맺어온 지인들로부터는 재능을 기부 받고, 김 대표 자신은 회사의 널찍한 마당에 자사 시설물인 천막과 의자, 테이블을 설치하고 푸짐한 먹거리를 준비한다. 그리곤 회사가 소재한 가풍리와 삼청리 어르신들을 모시고 1년에 한번, 먹거리·볼거리 풍성한 마을잔치를 여는 것이다.
행사 당일 즐겁게 웃으며 박수치고 좋아하는 어르신들을 보며 마냥 기분이 좋은 김 대표.
그는 20년 전에도 그랬다. 20대 초반에 ‘잘 나가는 웅변학원 최연소 원장’으로서 옥천읍 67개 경로당 어르신 800여 분을 관성회관에 모셔놓고 당시로선 제법 ‘큰 돈’이었던 2000만 원을 들여 경로잔치를 치러드렸다.
‘폼잡기’ 위한 것도 아니었단다. 젊은 나이에 항상 양복으로 단장하고 넙죽 인사를 올리는 모습을 보고 “정치 나갈 거냐”는 야유 아닌 야유도 받았단다. 그러면서도 김 대표는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김 대표는 “베풀고 나면 나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것엔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그것이 “여기서 잘 벌어 잘 살고 있으니 어르신들 하루쯤 즐겁게 해드리는 건 봉사라고 말하기도 쑥스럽다”며 “마을잔치가 최소한 10년은 더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이유다. 또한 22명 회원들과 함께 시각장애인후원협회장으로서의 봉사와 기부를 12년째 이어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창고에 쌓여있는 수많은 자재가 행사전문업체의 면모를 보여준다.

△ 롤러코스터 타고 지금 여기!
김 대표의 나이 올해 오십. 기업인으로선 지금도 젊은 나이지만 그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숨 가쁘게 이 자리에 와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옥천 토박이인 그는 1988년 옥천고를 졸업한 이듬해 부친에게 빌린 300만 원으로 웅변학원을 개원했다. ‘재물복이 따라선지’ 개원 한 달 만에 부채 중 200만 원을 갚았다고 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쉽게 벌어들인 돈은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믿어버리는 일에 쓰여졌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넘쳐나는 돈에 욕심도 꿈틀대 ‘가당찮은’ 일에 손을 댔다는 김 대표. 결국 18년 간 해온 학원장 생활을 청산했을 때 수중에 남은 건 단돈 200만 원이었다.
학원장으로 ‘떵떵’거릴 때만 해도 굳이 부르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줬다고 했다. 빈털터리가 되고 나니 연락을 취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세상이 이런 거구나. 뼈아픈 좌절을 맛봤지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에겐 1996년 결혼한 부인 염혜경(48)씨와 올망졸망 세 아이가 있었으니까.
행사업자가 되자고 맘먹은 그는 200만 원으로 천막 10동을 샀다.
크고 작은 행사들이 있는 곳이면 부르지 않아도 달려갔다. 필요없다고 거절하는 행사장에는 무료 천막을 설치해주며 이름을 알렸고 무대, 조명, 음향, 연출팀들과의 대인관계를 형성해 나갔다.
천막 10동이 500동으로 늘어난 지금. 그는 지금 연 매출 10억여 원을 올리며 명실공이 도내 최고의 행사용품 임대업체 ‘큰길 행사전문기업·물류센터’의 대표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큰길 행사전문기업은 오수가 아닌 깨끗한 지하수로 세제를 쓰지 않고 천막을 세척한다.

△ “사람이 먼저다”
전국을 돌며 행사업자로 살아온 10여 년.
‘행사’는 눈보라, 비바람이 친다고 미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약속이 곧 신용이고 돈’인 행사업체 대표로서 극심한 손해를 본 적도 많았다. 무주리조트 행사장에서는 초강력 태풍으로 천막 50여 동이 찢겨 휴지조각이 돼버렸고 보은 산업단지 기공식에서는 폭우로 인한 토사가 무대시설과 의자를 쓸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때도 사람이 다치진 않았기에 ‘사고’는 아니었다고 말하는 김 대표. 손해 난 거야 열심히 일해 다시 복구하면 되지만 사람이 다치면 서로의 인생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기 때문이란다.
‘돈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먼저’라는 김 대표는 만들어 내는 무대에 대해서도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설치 분야를 비롯해 음향, 조명, 연출 등 모든 스텝이 완벽한 호흡으로 하나의 무대를 만들어 냈을 때 그 무대 위의 ‘사람’도 더 빛날 수 있다는 것.
사람을 우선시하는 그의 경영철학은 향후 계획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5년 후쯤이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영업사원으로 뛰겠다는 김 대표. 어렵고 힘들었을 때 함께 해온 직원들에게 경영권을 넘겨 실질적인 운영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대신 자신은 영업사원으로 뛰며 ‘연금 같은 월급’을 받아 살겠다는 얘기다.

축적해 놓은 시설자재 자체가 재산인데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에 자재는 영원히 남는 게 아니고 어차피 사라질 소모성 물건일 뿐이라며, 직원들이 노후된 자재들을 보완하고 새것으로 교체해가며 운영을 해나갈 때 최상의 선순환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는 “성공의 잣대는 기준이 없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100억, 200억의 재산을 가져야 성공했다고 표현하지만 금전으로 성공을 논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것. 그는 “집 있고 땅 있는데 빚은 없다. 아이들 잘 크고 건강한 아내와 여행 다닐 여유만 있으면 나는 이미 성공한 사람”이라며 해맑게 웃었다.  

옥천읍 ‘큰길’ 행사전문기업 김대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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