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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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의 기쁨
  • 권순욱 수필가
  • 승인 2018.07.1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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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욱 수필가

식용작물
첫 농작물 재배는 감자를 심는 일이다. 일을 도와주겠다며 나선 동네 어르신이 비닐이랑에 파놓은 구멍에, 나는 씨감자를 하나씩 집어넣어 흙을 덮어 심어 나아간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마움의 인사를 건넸다. 두 달 남짓 지나니 주렁주렁 알이 매달린다. 감자줄기를 양손으로 꽉 잡고 뽑아 올리니 굵직한 감자가 주저리 매달려 나온다. 처음 경험하는 손맛이다. 기분이 좋았다. 수확의 기쁨이다.

고구마는 이랑 비닐을 뚫고 고구마 싹을 꽂아 심는다. 며칠 시름시름 몸살을 하더니 절반이나 고사하였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았고 물을 주지 않은 게 원인이다. 모종을 다시 사와 심을 수밖에 없다. 농사는 부지런한 사람만이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고구마 줄기를 걷어내고 호미로 캐는데 재미가 있다. 한 포기에 팔뚝만한 게 대여섯 개나 주렁주렁 달렸다. 신기하다. 이 기쁨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농작물 키우는 참맛이다.

원예작물
고추를 심어야 한다. 시장에서 사온 모종이 시들시들 하고 시원치가 않았다. 본 밭에 옮겨심기하고서 매일같이 물주기 한 덕분에 잎사귀가 생기가 돌면서 자라나기 시작한다. 다행한 일이다. 고추 싹이 높이 자라 비바람에 쓰러질 우려가 있다. 그래서 지지대를 세운다. 왼손 막대기를 땅바닥에 세워 잡고 오른손 쇠망치로 내려치는 일인데 힘에 부쳐 망치가 왼손 등을 때려 상처를 입었다. 수월한 일이 없음을 경험한다. 붉게 익은 고추는 비온 뒤에는 수확하지 않는다고 한다. 꼭지에 물기가 있어 잘 썩기 때문이다. 습기 있는 고추를 햇살에 펴 널어놓았는데 하루살이 떼가 날더니 물컹물컹 썩고 말았다. 경험이 없는 사람이 농사를 짓는다니 우습은 일이기도 하다.

열매채소
오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익었다. 매일같이 따냈지만 수확량이 많아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할 판이다. 소진하느라 애를 먹었다. ‘열매채소는 식구 수만큼 심어라.’ 어느 농부가 일러준 조언이 틀린 말이 아닌 듯하다. 상추는 텃밭에 씨 뿌리고 2~4일이 지나면 싹이 튼다. 물주기를 하면 잎질이 연해지고 자라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아주 어릴 때부터 솎아서 다듬은 아기상추를 양푼에 반쯤 채우고, 더운 기운의 밥을 쏟아 넣고, 짭짤하게 끓인 된장을 끼얹어 비빈 다음 고추장, 참기름 몇 방울을 뿌리면 제일가는 맛이다. 더위에 잃었던 입맛이 돌아온다.

공예작물
콩은 심고서 일주일이 지나자 떡잎이 뾰족이 흙을 뚫고 땅위로 올라온다. 본 잎이 서너 장 펴 자랄 때까지 떡잎을 쪼아대는 산비둘기 쫓는 일이 쉽지가 않다. 꽃피고 꼬투리가 달리는데 노린재 벌레가 날아들어 영양분을 빨아 빈 쭉정이로 만든다. 방제작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배규모가 작아도 할 건 다 해야 하는 것이다. 농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듯싶다.
땅콩은 잎이 누릇누릇해지면 캔다. 포기 째 뽑아 올리는데 씨알이 올망졸망 달려있다. 땅콩 꼬투리를 탈립시켜 담으니 금세 바구니를 채운다. 텃밭 농사하는 재미가 여기에 있다.

참깨는 아래 잎이 누레지면서 낙엽지고 제일 아래 꼬투리부터 터지기 시작한다. 이때가 거두기 좋은 때다. 위 꼬투리까지 익으면 아래쪽 것은 다 벌어 떨어진다. 급한 볼일로 며칠을 지나쳤다. 참깨 알갱이가 땅바닥에 수두룩 떨어진 것이다. 이를 알아차린 야생 새들이 만찬을 즐긴다. 밥상을 차려주는 격이 되고 만다. 가을걷이 하는 시기에는 한눈 팔 시간도 허용하지 않는가 보다. 꼬투리가 벌어진 참깨가 많았다. 방법 끝에 참깨 원줄기 밑동을 하나하나 낫으로 잘라 작은 다발을 만들면서 곁에다 포대기를 펴고 한 번씩 떨어 내리며 베나간다. 이때 떨려나오는 알이 가장 질이 좋다. 꽤 많은 소출을 보았다. 애쓴 보람이 있다.

300평 남짓 텃밭에다 스무 가지 정도 작물을 심었다. 씨 뿌리고 모종심어서 만들어 내는 새로운 생명은 정성을 다한 이상으로 잘 자랐고 수확의 기쁨까지 맛보게 해주었다. 텃밭 둘레 길을 산책하며 이들과 지내다 보니 저희끼리 도란도란 나누는 얘기가 들리는 듯하고 낱낱의 숨소리까지도 알아차릴 수 있을 듯하다. 이 모든 게 온순함과 유연함으로 이루어지는 초식동물 같다. 농촌 세상살이가 안락해지고 부족함이 없다.

농업은 공산품을 생산하는 기계적인 산업과는 다르다. 심성이 고운 사람들이 서로 정담을 나누면서 새 생명을 만들고 그 생명을 이어가면서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라 생각한다. 생겨나서 없어지기를 거듭하는 자연의 섭리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텃밭을 맨발로 거닐면 식물이 흙에서 자양분을 빨아들이듯 금세 발바닥이 간지러워지고 공중으로 뜨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싱그러운 풋내가 전신에 퍼지며 힘이 절로 솟구치고 눈앞이 편안해진다. 이곳에 터 잡기를 잘 했다. 이런 게 녹색 정감이고 텃밭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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