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아이들을…성실했던 가장의 비극적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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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아이들을…성실했던 가장의 비극적 선택
  • 도복희기자
  • 승인 2018.08.30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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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 원 빚더미에 극단적 상황까지
부모라도 자식의 생사 결정 안 돼
한 때 단란했던 집 앞엔 폴리스라인이 쳐진 채 적막감만 감돌고 있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참담한 비극이 옥천에서 발생했다. 한 가장이 부인과 세 아이를 죽이고 자신도 자해한 사건이다. 가장은 발견돼 치료를 받고 경찰서로 이송되면서 “가족들을 부탁한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 묻어달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 사건은 옥천지역뿐 아니라 많은 이들을 패닉상태로 몰아넣었다. 가족이 살던 인근 주민들은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며 도대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15년간 지역에서 검도체육관을 운영해 왔으며 이웃들은 하나같이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

그에 대해 주변 상인들 역시 “더없이 부지런하고 가정적인 사람”이라며 “학원차량 운전기사도 쓰지 않았고 아르바이트생도 없이 차량운행과 아이들 가르치는 것까지 혼자 모든 것을 다하느라 늘 바쁘게 움직였다”고 말했다. 15년간 검도관을 운영하면서도 한가롭게 얘기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 가족이 살았던 아파트 이웃 주민들도 “더없이 화목해 보이는 가족이었다. 부인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대전에 있는 어린이집에서 오전에 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아이들이 돌아오는 시간인 오후에는 퇴근해 아이들을 챙겼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인사도 잘하고 밝고 예의바르게 행동했고, 그런 아이들을 세심하고 다정하게 챙기던 아버지였는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하나같이 안타까워했다.

한 이웃은 “10살, 9살, 8살 세 딸의 아버지인 그가 라면사리를 잔뜩 사갖고 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왜 이리 사리를 많이 사가느냐고 묻자 아이들이 라면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사리로 사면 좀 싸다고 말했다”고 했다. 아이들의 먹거리를 직접 챙길 만큼 자상하던 아버지는 수억 원대의 빚에 시달리면서 결국 자신의 손으로 아이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말았다.

성실하고 아이들을 자상하게 챙겼다는 그가 무슨 일로 자신의 손으로 가족을 살해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는가. 수억 원대의 빚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경찰조사에서 그는 “빚이 많아 가족을 살해하고 따라 죽으려고 했다”고 자백했다. 체육관을 운영해 왔으나 수억 원대의 대출금을 빚져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전날에도 친척과 전화하며 채무문제로 다툰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 2012년 이 아파트(39평형)를 구매했으나 제2금융권 등에 아파트 가격과 맞먹는 2억5000만 원 근저당이 설정돼 있었고, 운영하던 체육관도 폐업해야 할 처지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때 단란한 가족의 보금자리였던 아파트 현관 앞에는 폴리스라인이 쳐진 상태로 적막감만 감돌았다. 한 가족을 이토록 참담한 상황으로 내몬 경제적 압박감은 비단 옥천에서 일어난 한 가족의 비극만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 중산층들을 나락으로 내모는 사회구조적 모순에 씁쓸함을 지울 길이 없다. 최근 들어 생활고나 과도한 빚으로 인해 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고단한 삶을 청산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가장들이 늘어나고 있어 사회적으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시점이다. 

3학년 큰 딸은 책읽기를 좋아했고, 검도 도대회에 나가 여러 차례 우승할 만큼 재능 있는 소녀였다. 5학년이 되면 전국대회에 나가 우승하는 것을 목표로 가진 아이였다. 검도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고도 말했다. 아버지가 검도관을 운영하고 계셔서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굳은살이 박인 자신의 발을 내보이던 책임감 있고 밝은 모습이었다. 대회 우승을 하고 난 후 지난 20일 기자와 인터뷰에서 총명하게 말하던 소녀는 이제 더 이상 꿈을 향해 나갈 수 없게 됐다. 5시간도 넘게 책을 읽어도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고 말하던 그 아이는 더 이상 지상에서 책장을 넘길 수도 없게 됐다.

이 가족을 이토록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간 경제적 압박감은 비단 이 가족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장기간의 경기침체로 대한민국의 중산층들이 빈곤층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상대적 박탈감도 뛰어넘지 못할 큰 산이다. 더할 수 없는 비극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지역민의 고심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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