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의「녯니약이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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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의「녯니약이 구절」
  • 김묘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18.09.1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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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문학평론가

시간의 두께는 살을 더해간다.
이 살은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에게 옛이야기가 되어 돌아오곤 한다. 특히 정지용 문학은 더욱 그러하다.

옥천군의회 김외식 의장이 ‘명사시낭송회’에서 「녯니약이 구절」을 낭독한다. 진솔함이 젖어있는 이 낭독은 마치 정지용이 무대에서 옛이야기를 전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게 하였다.
정지용은 1927년 1월 『신민』 21호에 「녯니약이 구절」을 발표한다. 그는 현재 지나가는 매 순간이 과거로 전환하여 옛이야기로 저장됨을 90여년 전 어느 날 정리하여 두었던 것이다.

 

이 시에서 정지용은 사실상 옥천을 떠난 14살부터 “고달펏”다고 직설적으로 토로한다. 이 고달픔은 휘문고보 시절 이야기뿐만 아니라 일본 교토이야기를 주로 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는 교토 유학 시절에 발표된 것으로 보아 그 시절 이야기를 더 많이 담았으리라는 유추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정지용의 이야기를 아버지는 “닭이 울”때까지, 어머니는 눈물을 보이며, 누이는 잠들며, 그 사람은 서서 듣는다. 하물며 “기름ㅅ불”, “시고을 밤” 같은 사물도 이야기에 집중하여 “박이며”, “도라서서” 듣는다.
정지용은 이 모든 것이 “시연찬은 사람들”의 “녜전”부터 전해오는 “니야기 구절”이라고 한다. 이는 삶의 연속성에서 본 스펙트럼이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관점의 차이만 다를 뿐, 자아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소의(素意)를 드러냄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정지용의 이야기는 일제강점기에서 조선인을 주눅 들게 하였던 일본인과 지식인의 고뇌 그리고 신이한 근대문물에 대한 것들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야기를 듣는 주된 주체는 시골 풍경, 즉 졸리도록 정겨운 조선의 순박한 시골 마을이다. 착하디 착한 시간은 “활처럼” 흘러가는 “밤한울”에 “돌아서서” 이야기를 듣던 동네 사람들을 “슬픈 물같이” 잠재우고 말 것만 같다.
이렇게 일제강점기 옥천의 밤은 옛이야기를 만들며 시간의 두께를 견고히 다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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