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마을만들기’ 새롭게 태어난 궁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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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마을만들기’ 새롭게 태어난 궁촌리
  • 도복희기자
  • 승인 2018.09.13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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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둘레길은 힐링 장소로 부각
원주민과 귀농·귀촌인이 어우러져 화합

마을 앞 커다란 저수지엔 연꽃잎이 바람에 출렁거리고 있었다. 야트막한 산이 마을을 감싸고 너른 들판에는 뜨거운 폭염을 이겨낸 벼들이 가을볕에 익어가고 있었다. 선선한 가을바람과 높고 푸른 하늘아래 주민 몇 명이 천천히 마을 입구 커다랗게 서있는 느티나무 옆으로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여느 시골마을처럼 실개천이 흘렀고, 한때 금광이었다가 지금은 폐광이 된 굴 입구에서는 서늘한 바람이 흘러나왔다. 폐광 안은 한여름에도 14도를 유지한다고 했다. 손에 닿으면 시려운 물이 터널 쪽에서 계속 새나오고 있었다. 이 금광 물은 저수지 쪽으로 흘러간다고 했다. 하늘 높고, 물 맑은 동네 청성면 궁촌리에 다녀왔다.<편집자 주>

△ 창조적 마을 만들기
청성면 궁촌리(이장 이종두·69) 마을 주민들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내세운 창조적 마을 만들기에 한창이다. 2016년 ‘창조적 마을만들기 사업’ 지역으로 선정, 5억 원 지원금을 받아 2017년 역량강화를 위해 선진지 견학 및 설계, 계획을 거쳐 지난 6월6일 첫 사업을 시작, 현재 60% 진행했고, 오는 26일까지 모든 마을사업이 마무리 된다. 마을 앞 넓은 주차장을 만들고 저수지엔 데크, 둘레길이 만들어졌다. 군데군데 새로 만들어진 정자에 앉으면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종두 이장은 “둘레길을 따라 마을 경관을 탐방하고 쉴 수 있는 공간과 실개천을 따라 가재도 잡고 다슬기, 피라미도 잡을 수 있는 농촌체험 공간으로 거듭나 마을 주민도 쉬고 내방객도 쉴 수 있어서 다시 찾을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모든 마을의 변화가 주민들의 정서에 도움을 주고, 협동심을 높여 주어 마을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보고 즐길 수 있는 힐링 쉼터로 거듭나고 있는 궁촌리에 대한 기대가 컸다.

 △ 이종두 이장과 마을 주민들
2013년부터 이장직을 맡고 있는 이종두 이장은 이곳 궁촌리가 고향이다. 직장 생활 때문에 고향을 떠나 있다가 10년 전 퇴임 후에 다시 귀향했다. 현재 6년째 이장 직을 맡고 있는 이 이장은 “창조적 마을 가꾸기 사업을 통해 귀농·귀촌인들 특히 송고버섯단지와 하나가 되어  우리 마을이 보고 즐길 수 있는 쉼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 사업이 종결 된 후에는 주민들과 협의 하에 마을 주변으로 둘레길을 만드는 등  2차 사업 추진도 가능하다”고 기대했다. 아름다운 생태경관 사업에서 주민들의 2차 수익 사업으로 모든 주민들이 협조해 병행해 나가기를 바라는 것. 그는 “우리 지역은 공기가 더없이 좋고 광천수가 흐르고 있으며 궁촌재에서 바라보는 마을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며 “특히 궁촌재 커브길은 미니 한계령이라고 자부할 만큼 아름답다”고 마을에 대한 찬탄이 이어졌다.

도시에서 살다가 궁촌리에 들어온 지 7년째인 궁촌재농원 이대준 대표는 “궁촌리 주민들은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에 대해 배척하지 않는다”며 “협동이 잘되고 조화를 이루며 즐겁고 재미나게 지낸다”고 말했다.
이종두 이장은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마을이면 좋겠다. 주민들이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벗삼아 우애있고 화목하게 지내며, 무엇보다 건강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 궁촌리는…
궁촌리는 청성면 서쪽에 위치하며 면적은 3.38Km이며 52가구 중 30가구가 귀농·귀촌인이다. 지방도로가 마을 앞으로 지나가는 공간으로 옥천 25km, 대전 32km로 30~40분이면 오고갈 수 있는 인접지역이다. 옛날 청산현의 남쪽 관문인 남대문재(궁촌재) 아랫마을로 보청전이 흐르고 있다. 동쪽은 소서리, 서쪽은 장수리, 남쪽은 지방도가 통과하는 궁촌재가 위치한 남대문산을 경계로 삼남리로 나뉜다. 북쪽은 보청천을 사이에 두고 산계리와 접한다.

궁촌리는 원래 조선시대 청산현 남면 무회리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옥천군에 통합됐다. 갑오개혁 때 청산군 청남면 무회리였다가 옥천군 청남면 궁촌리로 바뀌었다. 이후 1929년 청남면은 청서면과 함께 청성면에 편입됐다. 뒷산 지형이 활처럼 생겼다 하여 활골, 또는 궁촌대라 부르다 마을 이름이 되었다. 마을에는 논이 많아 벼농사와 인삼을 재배하고, 문화유적으로는 궁촌마을 선돌이 유명하며, 연산 김씨와 청주 한씨, 경주 이씨가 대대로 살고 있다.

마을 앞에는 ‘궁촌 소류지’라는 연못이 있는데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그 모양이 하트 모양이다. 뒷말들은 궁촌 남쪽 마을 위편 들로 남대문 고개 하단부 북쪽 들판이다. 건지산은 궁촌의 주변 산으로 30년 이상 먹을 수 있는 식량이 묻혀 있다는 전설이 있다. 궁촌재는 궁촌리 남쪽에 여러 번 굽이쳐 오르는 해발 235m의 가파르고 높은 고개이다.

조선시대 청산현의 남쪽 관문이며 고갯마루 쉼터에서 내려 보는 풍광이 절경이다. 궁촌들과 연이어져 북쪽으로 보청천에 닿는 좌우편 들판을 ‘구멍들’이라고 부른다. 궁촌리에는 오롱골(궁촌 북편에서 동남쪽으로 뻗은 골), 내기골(마을 앞 궁촌소류지 동쪽으로 난 골), 강미골(내기골과 마당골 남쪽 너머에 있는 골), 닥박골(궁촌 남동쪽 뱀태골 소류지 위편 골), 뱀태골(궁촌 남동쪽 뱀태골 소류지 위쪽골), 새골골(뱀태골 위쪽에 있는 가느다란 골), 구름고개골(뱀태골 위편 남쪽 골로 삼남리로 넘는 재로 고개가 높아 구름에 걸리는 골), 중골(뱀태골 바로 위에서 남으로 난 골), 진동골(궁촌 바로 북편에서 북쪽으로 난 골), 절골(궁촌재 위편 도로에서 북서로 난 2개의 작은 골), 용지리골(궁촌들 남쪽에서 서쪽 입구 큰 골)등이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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