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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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
  • 김정자 수필가·지니카페 대표
  • 승인 2018.09.2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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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 수필가·지니카페 대표

따사로운 햇살 내린 산자락 한끝 자그마한 마을에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누렇게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이고 농부들의 손길이 바빠진다. 아버지가 늘 아끼시는 볕 가리개 밀짚모자 아래로 황금빛만큼이나 빛나는 아버지의 웃음은 우리 가족의 희망이었다. 그리고 풍년가를 기원하는 아버지의 작은 소망이다. 초라한 흙 담 초가 지붕아래 일곱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아침밥을 먹고 간간이 불어오는 실바람에 아버지는 밭으로 나가셨다.

한참을 허리 펼 새 없이 일하던 아버지는 밭고랑 방석 삼아 잠시나마 시름 날리고자 앉았다. 찌그러진 노란 주전자의 담긴 새참요기 술 한 잔 이나마 이웃을 부르는 흙 묻은 손사래의 후덕한 인심은 풍년을 기원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아버지는 작은 행복이 깃든 농부의 소박한 꿈 마저 자식들에게 다 내어주고 지게에 짊어진 무게만이 아버지의 몫이다. 아버지를 따라 밭에 나가면 채소밭 나물들도 늘어져 졸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들판에 아버지의 무거운 지게 밑에서 나만의 놀이터를 만들었다. 손바닥만 한 그늘에서 장난감은 언제나 이랑사이 긁어모은 고운 흙 한줌으로 두꺼비집 만들고 부수고 하면서 점심 갖고 오는 엄마를 기다렸다.

멀리서 엄마가 광주리를 이고 오는 것을 보면 아버지를 불렀다. 내가 부르는 소리에 굽은 허리 쭉 펴고는 냇가로 가서 두 마리의 두꺼비를 씻고 엄마가 준비해온 점심을 먹었다. 보리밥을 찬물에 말아 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으며 웃으시던 아버지 모습이 아련하다. 그리고 흰콩을 볶아 간장에 버무린 콩 반찬은 내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반찬이다.

해가 지고 어스름한 저녁이 될 쯤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싸리문을 열고 들어온다. 헛간에 지게를 내려놓고 우물가로 가서 두꺼비부터 씻어주고 저녁을 드셨다. 언젠가 우연히 아버지가 두꺼비를 꼭 껴안고 주무시는걸 보았는데 기회는 이때다 싶어 아버지의 두꺼비를 만져 보았다. 난 그때 내 눈이 한동안 충혈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한 번도 자식들에게 두꺼비를 내 보이지 않았다. 어둠이 밀리고 헛기침 두어 번으로 새벽이 오면  헛간 지게 툴툴 털어 겉보리 한 자루와 고추 참깨 등을 지고 십리길 오일장 추석 대목장을 향하시던 아버지 따라 장엘 갔다.

아버지가 가져간 물건들은 도시 장사꾼에게 빼앗기듯 주고 받아든 꼬깃꼬깃한 지전 몇 장을 허리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아버지는 장을 한 바퀴 돌면서 주머니에 손을 몇 번을 넣어 보고는 대장간 들려 호미 하나 사고 낫 비리고 어물전에 추석 차례 상에 올려놓을 조기하고 동태 한 마리 사니 남은 돈으로 자식들 추석빔 양말 한 컬 레 씩 샀다. 몇 번을 망설이다 들른 국밥집에 건더기는 나한테 다 덜어주고 국물로 안주삼아 텁텁한 왕대포 한잔에 짓누르던 삶의 무게도 잊고 그저 허허 웃으시며 나보고 많이 먹어라 하셨다. 

도깨비 씨름 하자던 으슥한 고개를 넘어 산모퉁이 돌아오면서 행여나 내가 넘어 질까봐 아버지의 두꺼비는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지게 뿔 꼭지에 매달린 외로운 동태 한 마리가 흔들흔들 갈 길을 재촉하고 저 멀리서 마중 나온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엄마를 목청 높여 부르면 엄마 품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텃밭에서 갓 뽑아온 무 우를 듬성듬성 썰어 동태 한 마리 넣고 찌개를 끓였다. 아버지 상에 따로 올려진 동태 도막 한 개를 먹고자 아버지가 수저 놓을 때까지 밥을 안 먹고 기다렸던 철없던 시절이었다. 그때 동태찌개는 김장철이나 나락 타작 할 때 아니면 맛 볼 수 없는 귀한 음식이었다.

농사일에 지친 아버지는 칠순이 지나고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기에 우리는 정든 고향을 떠나 대전으로 이사를 왔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생계는 엄마 몫이었다. 유년시절 초라했지만 아랫목이 있는 초가집의 따스한 정이 그리웠고 묻어둔 밥그릇에 엄마의 온기가 뭉클하게 생각난다. 외양간 누렁이의 울음소리도 듣고 싶고 고사리 손을 흔들며 넘어오던 고갯길에 친구들 목소리도 그립다. 땔감이 없어도 불평하지 않은 아궁이는 가난을 내색하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이었고  굴뚝의 연기는 아버지의 희망이었다.

도시로 간 오빠가 싸리문을 열고 들어오면 송편을 찌느라 불을 지피던 부지깽이를 집어 던지고 뛰어 나가던 부엌도 그립다. 갓 찌어낸 솔향기 솔솔 나는 송편을 온 가족이 멍석 위에 앉아  먹던 그 시절이 이맘때쯤이면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그런 고향과 가족을 두고 아버지는 결국 하얀 서리가 내리던 아침에 두꺼비 집을 지으셨다.

두꺼비와 아버지는 그 집에서 긴 겨울잠에 들어갔다. 그런데 봄이 되었지만 잔디만 깨어났고. 아버지의 양손 두툼한 두꺼비는 황금빛 풍년을 기원하던 향기가 되어 어린 꿈 벗어버리고 온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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