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의 절망과 상실 그리고 방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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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의 절망과 상실 그리고 방랑
  • 김묘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18.10.1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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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문학평론가

누군들 절망 없이 살아왔겠는가.

절망은 상실을 불러오고 급기야 비틀거리는 방랑을 초대하고 마는 것을.

하물며 현대문학의 거두였던 정지용에게 시대적 현실과 가정사의 불우함 그리고 친구의 죽음 등은 그를 송두리째 흔들리게 하였을 것이고 그 사회에 체계적인 혹은 변화무쌍한 반발로도 이어지게 하였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을 주관적으로 잘 표현해 놓고 있었던 정지용의 산문.

정지용은 박용철의 전화를 받는다. 정지용은 세브란스 병원에서 진료 후 전화를 건 박용철에 대하여 “자기 딴에는 아찔한 고적감을 느끼었”던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어쩐지 막연한 불안한 생각이 돌아오는 길에 내처 일었”던 것이라 서술(「날은 풀리며 벗은 앓으며」, 『조선일보』, 1938.)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지용은 “세상이 실로 괴롭고 진정 쓸쓸”하다고 토로한다.
이렇게 정지용의 산문에서는 끝없는 정신적 방랑과 엑조티시즘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다도해기 귀거래」, 「다도해기 일편낙도」 등이 그러하다. (졸고, 「정지용 산문 연구」, 2013.)

「다도해기 귀거래」(『조선일보』, 1938.)에서 정지용은 백록담에서 내려와 풍란의 향기를 맡으며, 암고란 열매의 시고 단 맛을 입안에 담고 해녀들이 일하는 곳으로 간다.

돈을 내고 해녀 물질하는 장면을 보는 것은 “매매계약 같고 로맨티시즘이 엷어지는 것”이라고 돌아선다. 축항을 돌아 해녀가 아닌 해소녀를 찾아 물질하는 장면을 본다.

정지용은 해소녀들에게 ‘잠수경’을 무엇이냐고 묻는다. 해소녀들은 “거 눈이우다.”라고 대답한다. 재차 ‘육안’은 무엇이냐 묻는다. “그 눈이 그 눈이고 그 눈이 그 눈입주기 무시거우깡?”이라는 대답에 같이 웃는다. 해소녀의 두름박을, 헤엄치던 소년이 내동댕이친다. 소녀는 다이빙하여 소년을 추격하여 발가벗은 등을 냅다 갈긴다. 이 시절 소녀가 소년의 등을 갈기는 것은 어색한 일이라 정지용과 일행은 박수를 치며 환호를 한다. “물에서는 소년이 소녀의 적수가 될 수 없듯이 우리도 바다와 제주 처녀의 적수가 될 수 없다”며 발길을 옮긴다.

「다도해기 일편낙도」(『조선일보』, 1938.)는 김영랑, 김현구와 함께 한라산 등반을 하기 위해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가는 여정을 적어 놓은 산문이다.

그들은 “푸른 언덕까지 헤엄쳐 오르려는 물새처럼”, “설레고 푸덕”거리며, “뛰며 희살대며 빽빽”거린다. 제주도 어구에 이르러 본 한라산을 정지용은 “장엄하고 초연하고 너그럽고 다정하며 준열하고 지극히 아름답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백일홍 협죽도가 풍광의 밝음을 돋우고, 귤 유자 지자(탱자)는 푸른 열매를 달고, 동백나무 감나무 석남 참대 들이 바다보다 짙어 무르녹은 것”이라 하였다. 또 정지용은 “햇빛에 나의 간지러운 목을 맡기겠사오며 공기는 차라리 달아 혀에 감기는 것”이라고 하였다. “돌을 갈아 밭을 만들고, 거리와 저자에 노유와 남녀가 지리와 인화로 생동하는 천민들이 분을 바르지 않고도 지체와 자색이 전아 풍요하고 기골은 늠름하다.” “미녀는 구덕과 지게를 지고도 사리고 부끄리는 일이 없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정지용은 이렇게 제주도의 소박한 사람들의 이국적인 풍물을 이야기하며 신기하게 느끼고 있다.

이와 같이 정지용에게는 물질하는 소녀가, 구덕과 지게를 진 미녀가 소박한 이국적 정물로 미지에 대한 동경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풍경은 아들이 죽고, 친구가 죽고, 부친이 떠나고, 조국마저 길을 잃고 있는 절망의 상황 뒤에 따라 붙는다.

이때 정지용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와 함께 자아로부터의 도피를 꿈꾸고 있었다. 현실적이고도 직접적인 여러 가지 상실에 대한 반응으로 정지용도 끊임없이 방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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