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의 책] 어리석음의 미학-도스또예프스끼의 간질병과 예술혼/김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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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의 책] 어리석음의 미학-도스또예프스끼의 간질병과 예술혼/김진국
  • 도복희기자
  • 승인 2018.10.18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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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시대는 병든 인간을 만든다
어리석음의 미학-도스또예프스끼의 간질병과 예술혼/김진국 지음

시인 이성복은 시 ‘그날’에서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고 노래한다. 부조리하고 부패한 현대인의 삶을 역설적으로 이야기한 것. 병듦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삶,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느라 일말의 반성조차 하지 않는 영혼 없는 사람들의 각축장. 부의 축적을 위해서라면 이웃의 고통쯤이야 아무것도 아닌, 가진 것을 더 채우느라 혈안이 된 사람들이 우세하는 사회가 현재의 모습이다. 이러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읽어야 할 한권의 책을 소개한다.

‘어리석음의 미학’을 쓴 김진국 작가는 신경과 전문의이다. 그는 도스또예프스끼 작품을 통해 근현대의 병리현상을 파헤친다. 김 작가는 “도스또예프스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는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인물을 찾기가 어렵다. 거의 대부분 미쳤든지 바보처럼 멍청하든지, 간질병 같은 중병이 들었든지, 그도 아니면 악마나 야수에 비길 정도의 잔혹한 범죄자들이다. 이런 인물의 병든 몸과 마음, 병든 영혼까지 지루할 정도로 장황하게, 그리고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속속들이 파헤쳐 드러내놓은 것이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은 정신병리학 교과서를 읽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자연스럽게 독자인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는 광기와 악마나 야수, 바보 같은 분신들을 만나게 된다. 불편하고 짜증이 나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지만 작품을 통해 나 역시 병든 시대를 살아가는 병든 인간이며, 소용돌이치는 근대의 물결에 내던져진 ‘무기력하고 결함투성이의 하잘 것 없는 존재’이면서도 죄 많은 인간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 책은 도스또예프스키의 삶과 작품을 바탕으로 지금 이곳에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어낸다. 도스또예프스키가 관찰한 세상의 부조리는 21세기 대한민국에도 만연해 있다. 우리 주변에서도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코프처럼 좁은 방에서 분노와 원망을 쌓는 흙수저, 영혼 없는 행정 기계 같은 관료, ‘미성년’의 돌고루끼와 같은 여성혐오자, 약자에게 갑질해서 제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한 까라마조프형 아재를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시대와 사회가 병들었는데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는 어렵다. 도스또예프스끼 역시 병자였다. 모두가 꺼리는 간질병 환자였고 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잡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건강한 사람이 볼 수 없는 삶의 신성함을 발견한 것이다. 김진국 작가는 현재 칼럼니스트로 ‘영남일보’에 ‘영남시론’, ‘경산신문’에 ‘장산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저서로 ‘기억의 병: 사회문화 현상으로 본 치매’, ‘우리시대의 몸·삶·죽음’, ‘나이듦의 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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