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장의 은행잎을 밟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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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만장의 은행잎을 밟으며
  • 송은애 시인
  • 승인 2018.11.1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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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애 시인

가을이 익을 대로 익었다.

거리엔 노랗게 물든 은행잎과 붉게 물든 단풍이 즐비하기에 가을을 만끽하기 좋은 풍경이다. 며칠 전에는 산청삼매로 탐매꾼들을 설레게 하는 산청을 다녀왔다.

그곳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남사마을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명매, 원정매, 정당매라 하여 500년이 훌쩍 넘는 매화가 봄이 되면 피는 곳이다.

봄만 되면 탐매꾼들은 고목에 몇 송이 피우는 매화를 보러 온다고 하는데 오래된 매화들은 나이 들어 이젠 볼품없는 나무가 되어가고 있었다. 원가지를 보호하려고 치료하던 중 고사해 아쉬워했으나 뿌리에서부터 발아해 후계매가 된 남명매는 가을을 쓸쓸히 맞이하고 있었다.

“매화를 보려면 봄에 와야지요.”

매화집에서 전하는 말이다.

사실 산청을 찾은 이유는 남명 조식선생의 흔적을 찾아서였다.

아직도 남명선생이 심었다는 매화는 후계매가 되어 보호 받고 있었다.

또한 가을을 풍성하게 느끼려 찾은 남사마을엔 평일임에도 관광객들이 많았다.

옛 돌담길과 부부회화나무 등 볼 것이 많은 남사마을에서 가을을 느끼기에 마음마저 풍성해 흐믓한 마음이 생겨났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마을1호로 지정된 남사마을은 보물1점과 경남문화재자료가 4점이나 있는 곳으로 가을 정취를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 아름다운 마을을 보며 돌아서는 길에 정말 아름다운 은행나무 아래 풍경을 만났다. 수천만장의 은행잎이 깔린 조식선생의 유적지였다. 유적지 이야기보다 사실 잿밥에 더 관심이 있는 나는 은행나뭇잎에 주저앉아 옛 성현들의 발자취를 돌아보았다.

유학자인 남명 조식 선생은 조선 중기 벼슬도 하사 받았으나 모두 거절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평생을 보냈단다. 유적지 산천재와 별묘를 돌아보며 오히려 눈에 들어온 것은 은행나무 아래였으니 시인 맞지 않나? 자문도 하며 황금물결 이룬 노란바다에 풍덩 빠지며 여러 일들이 주마등 스치듯 지난다.

도심에서는 시민들의 아우성에 은행잎과 열매를 수거하는 일손들이 분주했었다.

기계차를 동원하여 흔들고 때리며 은행잎과 열매를 털어내는 작업들이 가을마저 버리게 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열매에서 발산하는 독특한 냄새와 어수선하게 굴러다니는 은행잎이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은 운치를 모르는 도심의 깔끔함이 불러온 현대적인 사고방식 같았다. 한때는 은행나무 심기운동을 한 적도 있다. 은행나무가 있는 곳에는 병충해도 없고 가을에 노랗게 익어가는 은행나무를 보며 시인묵객들은 아름다운 詩를 떠올리곤 했다. 그런 감성이 사라지고 기계와 특별한 일손들이 마구잡이로 은행잎과 열매를 수거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정말 계절을 느끼게 하는 풍경 아닌가?

또한 얼마전만해도 은행을 줍는 시민들도 많았다. 필자도 은행을 줍고 어느 가을날에는 계룡산 신원사에서 은행 터는 노승의 모습을 보고 글로 옮긴 적도 있었다.

어찌하다 은행나무의 잎과 열매가 천대받게 된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다.

은행나무는 유일하게 살아 있는 대표적인 교목이다.

원산지는 중국으로 온대지역에 분포한다. 생김새가 피라미드형으로 둥그런 기둥처럼 생긴 줄기에 가지가 많이 달리지 않으며 곧게 자란다. 잎은 부채 모양으로 가운데 있는 V자형의 새김을 중심으로 둘로 나누어져 있다. 은행나무의 열매는 황색의 바깥껍질과 노란색의 중간껍질로 둘러싸여 있다. 바깥껍질은 악취가 강하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사찰 뜰에 심어왔으나 주로 곰팡이와 벌레에 강하고 수형이 아름다워 관상수로 많이 사용한다. 도심의 탁한 대기에도 강하여 가로수로도 선호했던 은행나무는 나무의 활용가치가 대단했다. 아산의 은행나무길 그리고 은행나무 숲이 우리나라에도 많다. 은행나무 숲 명소는 아산을 비롯하여 홍천, 용문산은행나무 숲 등이 있다.

가을을 알리는 은행나무가 천대받는 그런 시대가 왔다는 것은 우리의 감성이 메마르고 있다는 증거다. 잠시 냄새나 잎의 지저분함을 빌미로 은행나무가 천대받는 그런 세상을 돌이켜보며 책갈피에 소중하게 끼워가며 계절을 탐닉했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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