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과 박열 그리고 가네코 후미코의 ‘파랑새’
상태바
정지용과 박열 그리고 가네코 후미코의 ‘파랑새’
  • 김묘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18.11.15 15: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묘순 문학평론가

가네코 후미코(1903-1926)의 독립유공자 인정.
그녀에게 오는 17일 독립훈장 애국장을 서훈한단다.
정지용과 동갑나기인 박열(1902-1974)의 일본인 아내였던 가네코 후미코.
불우한 가정사에 핍진(乏盡)한 가네코는 1919년 충북 부강의 3·1만세운동에 감화된다. 그 후 박열과 가네코는 일본 천황 암살을 모의하다 발각, 1926년 사형선고를 받는다. 이에 가네코는 감옥에서 의문사, 박열은 1945년 석방, 1948년 귀국하여 6·25한국전쟁 때 납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과 당시 공간적 생활 반경이 비슷하였던 정지용은 「숨긔내기」를 1927년 2월 『조선지광』 64호에 최초 발표한다. 이 작품은 「숨ㅅ기내기」라는 제목으로 『정지용 시집』(시문학사, 1935, 123면)에 재수록 한다.

날—ㄹ 눈 감기고 숨으십쇼.
잣나무 알암나무 안고 돌으시면
나는 삿삿치 차저 보지요.

숨긔내기 해 종일 하며는
나는 스러워 진답니다.
스러워 지기 전에
파랑새 산양을 가지요.

나온제 가 오랜 시고을 다시차저
파랑새 산양 을 가지요.
-「숨긔내기」 전문, 『조선지광』 64호(1927. 2.)

시적화자인 ‘나’는 단순한 ‘숨긔내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상대(일제로 보임)에게 “눈 감기고” 숨으라고 한다. 아마 눈을 감아도 보이는 사회의 불합리함과 만행, 이것들을 화자는 샅샅이 찾는다. 이렇게 피곤하고 곤궁한 ‘숨긔내기’를 종일 하는 화자는 “스러워”진다.
화자는 ‘스러워’지기 전에 ‘파랑새’ 사냥을 간다. ‘시고을’로 간다. ‘시고을’은 정지용 자신의 가슴이고 고향 옥천이었으며 그의 조국 조선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정지용은 식민지 지식인으로의 고뇌를 표출하였다. 정지용에게 ‘파랑새’를 찾는 작업은 나라 잃은 지식인의 고뇌를  해소하려는 노력의 일종이었다.
2016년 「박열」이라는 영화가 개봉되며 아나키스트였던 그들의 사랑이야기가 한국에 알려졌다. 「개새끼」라는 박열의 시에 반하였다던 가네코. 사형선고가 내려질 박열의 시신 인도를 위하여 옥중 혼인 신고를 하였던 그들.

가네코가 우쓰노미야 형무소에서 의문사 하였다. 박열은 형에게 부탁했다. 고향 문경의 선산에 가네코를 묻어 달라고. 가네코의 한 많은 23년의 흔적은 문경에 잠자고 박열은 1974년 북한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리고 1990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었다.
정지용도 이 당시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다. 1926년 한국인 청년의 사형 선고. 그것도 정지용과 동갑인 박열. 정지용은 알았을까? 알고 있었다면 얼마나 심장이 터질 것 같았을까? 
자정을 넘긴 이 시간에 명치끝이 시큰거리고 아리다.

영화 ‘박열’을 보았을 때의 충격. 그것은 일제강점기를 조선인으로 살아야했던 치열한 삶의 위태로운 난간이었다. 아니,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칼날의 끄트머리였을 것이다.
이때 정지용은 시를 쓰며 견디었다. 박열은 또 다른 방법으로 일제와 맞섰다. 그리고 가네코는 「개새끼」에 감동하여 일본인이 아닌 정의로운 사람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하여 우리 가슴에 기억되고 있는 가네코.

정지용과 박열 그리고 가네코는 동시대를 살면서 각각의 ‘파랑새’를 찾고 있었다.
그 ‘파랑새’는 「숨내기」에서 승리를 하였는지 아님 진 게임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파랑새’ 하나쯤은 가슴에 깊이 간직하고 싶으니. 그 ‘파랑새’ 어디쯤 날아오고 있는지. 쓸 데 없이 생각이 많아진다.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