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워야할 대상은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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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워야할 대상은 누구란 말인가?
  • 김진묵음악평론가
  • 승인 2018.11.2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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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묵음악평론가

1941년 4월 13일, 일본과 소련은 불가침조약을 맺는다. 서로 침해하지 않고, 누군가 싸워도 중립을 지킬 것을 약속했다. 두 달 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다. 소련이 궁지에 몰린다. 일본은 소련 침공을 고민하다가 참는다. 덕분에 소련은 서부전선에 전념할 수 있었다.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다. 전쟁 중, 일본은 소련과의 무역으로 석탄, 철, 어류, 금을 공급받는다.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 본토 진입 시 생길 희생을 우려한 미국은 소련에게 참전을 제안한다. 종전 일주일 전인 1945년 8월 8일, 소련은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만주의 일본군을 치고 한반도로 내려온다. 미국은 ‘아차!’한다. 이제 전쟁이 끝나려는데 바라만보고 있던 소련이 한반도를 차지하게 생겼다. 미국은 38도선 기준으로 이남은 미군이, 이북은 소련군이 점령하여 전후 처리 문제를 담당할 것을 제의한다. 소련은 얼씨구나! 하고 수락한다. 개성까지 내려온 소련군은 38도선 이북으로 철수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군사적 분리선이기에 주요 도로에 38선이라는 팻말을 설치하고 검문소를 세웠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오갔다. 물동이 이고 38선을 지나 물을 길러 갔고, 부엌에서 밥상을 들고 38선을 지나 안방으로 갔다. 그 후, 남과 북에 독자적인 정부가 수립되면서 점점 통행이 힘들게 되었다. 80년 대 초, 부산에서 만난 음악애호가 정용해 선생은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6.25 전쟁 전에는 남북이 갈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비공식적으로 왕래가 있었지. 나도 북에 계신 어머님을 뵙기 위해 여러 번 삼팔선을 넘었지. 야음을 틈타 산을 넘다가 군인들에게 발각되기도 했어. 그럴 땐 어머님을 보러가는 사정을 이야기하면 보내주었지. 어머님 보러가는 마음을 그들이라고 모르겠나. 근데 점점 단속이 심해지는 거야. 나중에는 사정이 통하지 않아서 때려눕히고 넘어가기도 했어. 이렇게 삼팔선을 아홉 번을 넘었는데 결국 전쟁이 터지더군’
작곡가 김해송이 1947년에 발표한 <흘러온 남매>는 삼팔선, 그러니까 민족 분단을 한 가족의 시각으로 본 노래다. 김해송의 부인인 이난영이 어머니 역을 맡았다. 아버지로 남인수가 등장한다. 심연옥, 노명애, 계수남이 자식이 되어 노래한다.


- 1절 (어머니 대사) 이 에미는 너희들이 한없이 그리워도 가로 막힌 운명선이라 천추의 한이로구나 삼천리강산에 삼팔이란 웬 말이냐 목을 놓고 울어 봐도 시원치 않다 시원칠 않다- (어머니 노래) 이 에미는 너희들이 한 없이 그리워도 가로막힌 운명선이 천추의 한이로다 삼천리 강산 우에 삼팔이란 웬 말이냐 목을 놓고 울어 봐도 시원치 않다
- 2절 (아버지 대사) 너희들은 남쪽에서 끝까지 참어 다오 이 애비는 북쪽에서 힘차게 싸우겠다 다 같은 혈족이요 우리나라 민족이 아니냐 원수 같은 삼팔선을 우리의 힘으로 뚫고야 말 것이다- (아버지 노래) 너희들은 남쪽에서 끝까지 참어 다오 이 애비는 북쪽에서 힘차게 싸우겠다 다 같은 혈족이요 우리나라 민족이다 붉은 피 한 방울을 아낄쏜가
- 3절 (자식들 노래) 아버지와 어머니는 대지를 지키시오 우리들은 남쪽에서 바다를 지키리다 (온가족이 함께 부르는 노래) 다 같은 혈족이요 우리나라 민족이다 이 강산 넓은 땅에 꽃을 피우자


가사를 다시 보자. 2절, 아버지 노래. ‘애비는 북쪽에서 힘차게 싸우겠다... 너희들은 남쪽에서 끝까지 참어 다오 이 애비는 북쪽에서 힘차게 싸우겠다 다 같은 혈족이요 우리나라 민족이다 붉은 피 한 방울을 아낄쏜가’ … 무슨 뜻일까? 누구랑 싸운다는 말인가? 3절, 자식들 노래를 보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대지를 지키시오 우리들은 남쪽에서 바다를 지키리다’ 이상하지 아니한가? 지켜야할 대지와 바다는 알겠는데, 도대체 누구로부터 지킨다는 말인가? 붉은 피 한 방울 아끼지 않고 싸워야할 대상은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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