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내가 만난 그분(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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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내가 만난 그분(18)
  • 최종식 청산 성신교회 목사
  • 승인 2018.11.2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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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청산(7)
최종식청산 성신교회 목사

한 달에 한 번씩 주사를 맞으려면 미리 와서 2박 3일 정도 입원을 해서 주사를 맞아야 하고 약은 집에서 먹을 순 있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습니다. 주사는 20만 원 조금 넘는데 약은 90만 원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 당시에 약이 고급으로 들어가 보험이 안 돼서 더 비쌌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서울까지 차를 몰고 다닐 수도 없고 기차를 타자니 너무 힘들어서 약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항암치료를 안 해본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그 약을 먹으면 속이 메슥거리는 것도 아니고 막 뭔가 압박이 되는 거 같아 정신이 없고 토할 거 같으면서도 나오는 건 없고 무척이나 힘이 들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이 들어 이 약을 끊고 죽은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저는 이 약을 9달간 먹었고 그 돈만 해도 약 천만 원 돈이 들어갔습니다. ‘이제 겨우 낫겠구나’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없는 3주 동안 교회에 다른 목사님이 와서 설교를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가 집에 왔으니 직접 교회에 가 설교를 해야 했고 아픈 몸으로 강대상을 꽉 붙잡고 막 힘을 줘가며 한주도 거르지 않고 설교를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완수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대로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약 1년 정도를 엄청 고생했습니다. 하지만 병이 일 년 지난다 해서 다 낫는 게 아니었고 5년을 지나야만 완치라고 하지만 약은 9달 만에 끊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속이 불편하고 후유증이 생겨서 심방도 제대로 다닐 수 없고 밥을 먹으면 누워 있어야 하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힘이 없어 자꾸 쓰러질 것만 같고 이렇게 무언가를 하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약을 타러 병원에 갈 때는 기차를 타기도 그렇고 어차피 가야 하니까 서울에 아는 택시운전사를 만나서 저를 태워 서울에 가달라고 말하며 처음에 50만 원 정도를 주니까 너무 많다며 안 받는 것입니다.


저와 아래 윗집에 살았던 사이인데 그냥 받아두라 말했고 그렇게 병원에 다녔고 그러다 수술한 지 2년 되던 해에 그 친구도 택시를 그만두었습니다. 또 3년 되던 해에는 약은 끊었는데 큰 차도는 없는 거 같아 늘 불안하고 불편하고 뭔지 모르게 암 수술했다는 게 혹시 또 재발할까 봐 매일 불안했습니다. 불안해서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연명하며 그렇게 살다 보니 시간이 지나 5년 되던 해에 병원에 갔더니 항암 담당 ‘김시영’ 교수님이 경상도 사람이라 사투리를 쓰며 고생하셨다고 말하니 처음에는 알아듣질 못해서 다시 물었더니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완치됐습니다. 그래도 조심하시고 일 년에 한 번씩 와서 검진만 받으세요.”라 말했습니다.


저는 일단 의사가 완치라고 한다면 크게 재발할 우려는 줄었다는 말이기 때문에 기분이 팔팔 뛸 거 같이 좋았습니다. 제가 병원에 다니던 당시에 막내 여동생은 매일 병원 문 앞에서 택시 오는 것마다 제가 오나 안 오나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당시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5년이란 세월이 지나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몸은 아직 예전 같지 않고 오히려 몸이 더 힘들었는데 음식을 조금만 잘 먹어도 몸무게가 늘어나며 배가 나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복부비만이 되면 암이 재발할 우려가 있다며 58킬로를 넘기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78킬로로 입원해 54킬로에 퇴원을 했는데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살이 찌고 살이 찌면 안 되니까 그럴 땐 또 식사량을 줄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단팥빵도 살이 찔까 두려워 잘 못 먹고 음식조절을 하며 아픈 몸으로 살아가려니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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