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한계령/대청/오색)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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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한계령/대청/오색)산행기
  • 유봉훈 한국사진작가협회 정회원 국민겅강보험공
  • 승인 2018.11.2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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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봉훈 한국사진작가협회 정회원

국민겅강보험공단

주말 명산 탐방 두 번째. 오늘은 설악산이다. 23시에 대전을 출발한 차량이 한계령에 도착하니 03시.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운무가 가득하고 날씨가 춥다. 원래 계획은 05시경 산행을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예상보다 빨리 도착하였고, 한계령에 주차하고 쉴 수가 없어(경찰통제) 예정시간보다 2시간 먼저 산행을 강행하기로 한다.


가파른 계단 길을 올라 매표를 하고, 등산로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지체, 정체는 시작된다. 운무와 바람으로 날씨는 추운데, 주변은 어둠이라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고, 가파른 길, 미끄러운 길을 만나면 여지없이 이어지는 정체로 답답하기만 하다. 주변에 예쁜 단풍나무라도 보이면 손전등으로 단풍을 구경하며, 애써 더딘 발걸음을 달래보지만 답답한 마음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두 시간여 만에 서북 능선 삼거리를 지나고 몇 시간을 더 진행해도 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풀리지 않는 길 만큼이나 운무는 두껍게 쌓여 조망을 방해한다. 이러다 앞사람 엉덩이만 구경하다 설악산을 내려오는 것은 아닌지 속으로 은근히 걱정되기도 한다.
지난번 영남알프스 산행 때도 그러더니 올가을에는 왜 이리 산에만 오면 운무에 가림을 당하는 것인지. 멀리만 보지 말고 주변을 좀 살피면서 살아가라는 산이 전해주는 전언인지,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또 이러다가 만약에 운이 좋아 하늘이 열려주기만 한다면 참으로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을 텐데 하는 기대를 은근히 가져보면서, 미끄럽고, 질퍽질퍽하고, 더딘 길을 간간이 보이는 단풍나무들로 마음을 달래며 진행한다.


그러기를 몇 시간. 소청봉 능선 마루에 막 올라서려는데 사람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 드디어 하늘이 열리는가 보다. 급한 마음에 몇 사람을 제치고 얼른 능선 마루에 올라서자, 그렇게 두텁던 운무가 걷히면서 황홀하고 아름다운 설악의 단풍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7부 능선 부근까지 한창 제 물빛으로 단장한 가을 설악. 그 위에 둥둥 몰려드는 운무. 멀리 동해 바다로는 일출처럼 바다가 반짝이고.
‘정말 멋진 풍경이다’
처음으로 능선 사진을 찍고, 소청에서 설악의 속살을 살짝 훔쳐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러나 중청 가는 길은 또다시 운무에 덮여 있다. 불안하다. 공룡의 모습을 꼭 보고 싶은데...


얼마를 더 갔을까? 중청 대피소에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보이고, 희미하게 대청이 보이기 시작한다. 혹시, 얼른 달려가 대피소 앞 능선길에 서자, 아... 드디어 설악이 열리기 시작한다.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과 운이다. 한창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단풍들과 공룡의 그 황홀한 바위들. 그 위에 둥둥 떠다니는 구름 들. 비가 온 뒤라 맑고 깨끗하게 트이는 시야. 연속하여 사진을 찍어 대지만, 정말 풍덩 뛰어들어 푹 빠져들고 싶도록 아름다운 풍경이다.
저 한 컷의 풍경. 저 한순간의 황홀경. 무박의 고통도, 지·정체의 답답함도, 고통의 발걸음도, 일순간에 날려버리는 저 한 컷의 찡함. 저 진한 감동이 있기에 오늘도 저 많은 사람들이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중청에서 가슴 벅참을 안고, 대청에 오르자 막히는 곳이 하나도 없다. 맑고, 깨끗하고, 투명한 세상. 그 속에 한참을 머문다. ‘세상을 떠나오면 이렇게 전혀 다른 세상이 있는데, 이 아름다운 세상은 저 아래 세상의 회색 물결에 또 어떻게 지워져 갈까, 저 아래 세상에 내려가면 이 아름다운 세상은 빛바랜 한 컷의 추억의 사진이 아니라, 세상사의 갈림길마다에서 되살아나는 싱싱한 바다와 같아야 될 텐데...’ 아삭아삭 배 한 조각을 씹어 먹으며 생각해 본다.
이제 하산길, 오색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곳곳에서 만나는 단풍들이 아름답다. 그렇지만 미끄럽고 험한 돌계단 길에 많은 사람들이 지친다. 어느 지고한 세상에 다녀오기란 이처럼 힘든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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