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몸은 리모델링이 안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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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몸은 리모델링이 안 됩니까
  • 동탄 이흥주 문정문학회 사무국
  • 승인 2018.11.2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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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 이흥주문정문학회 사무국장

얼마 전 열차를 타고 서울을 가는 길이었다. 동행하는 분과 이 얘기 저 얘기를 주고  받으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었다. 한데 옆자리 남자가 자꾸 나를 바라본다. 나보다는 조금 젊어보였다. 그 눈빛이 이상했다. 뭐가 많이 못마땅한 표정이다. 난 별로 개의치 않고 같이 가는 분과 계속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


한참 시간이 흘렀다. 옆의 그 남자가 나보고 목소리 좀 낮추란다. 앞의 남자도 거든다. “여기는 혼자 가는 곳이 아니니 조용히 얘기하세요!” 난 좀 미안했다. 방귀 뀐 사람이 화낸다고 속으론 나도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눌렀다. “미안합니다. 아, 이제 조용히 하고 가야겠네!” 사실 내 말은 미안한 말투가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때부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몇 년 전 어느 식당에서도 많은 사람 앞에서 주인으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주인 여자가 일하는 아줌마와 둘이 와서 나를 보며 아주 안 좋은 얼굴로 좀 조용히 하란다. 여러 손님들이 내 말이 시끄럽다고 항의를 한단다. 그 식당엔 젊은 사람들이 빼곡했다. 예전엔 그리도 얌전하고? 조용하게 말을 하던 내가 나이를 먹으며 입에 힘이 넘쳐 목소리가 기차 화통이다.


세월 앞에 장사는 없다. 내 경우는 유독 귀와 눈이 세월을 앞질러 저 잘났다고 뛰고 있다. 다른 곳은 아직 그냥 쓸 만한데 이耳와 목目이 속을 썩인다. 난 눈이 40대 후반부터 나빠졌다. 근래엔 가까이 있는 물체도 흐릿했다. 원래 사람 보는 눈이 어둡지만 바로 앞의 아는 사람 얼굴도 잘못 알아봤으니까. 돋보기로 근근 버티다가 힘이 빠진 눈에 2년 전 그토록 경멸하던 안경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해서 눈은 해결을 보았다.


이젠 귀 차례다. 귀가 말을 안 들으면 불편한 게 내 목소리가 커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귀가 나를 여러 사람 앞에서 자주 망신을 주고 있다. 젊을 때부터 코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게 원일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요즘 여러 사람 모인 곳을 가려면 주눅이 든다. 얼마 전 청력검사를 해 보았는데 왼쪽 귀가 더 심하게 안 들리는 걸로 나온다. 이걸 잘 몰랐다. 휴대폰도 왼쪽 귀로만 받다가 그걸 알고 오른 쪽 귀로 받으니 훨씬 잘 들린다.


난 대화를 할 때 사람들한테 귀가 잘 안 들린다고 미리 얘기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신기하다. 내가 거짓말쟁이는 아닌데 내 말을 곧이듣질 않는다. 나는 술이 취해서 정신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내가 안 취했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과는 반대현상이다. 술이 잔뜩 취한 사람에게 당신 많이 취했다고 말하면 안 취했다고 잡아떼지 않던가. 나는 술에 취해 뱅글뱅글 세상이 도는데 다른 분들이 인정을 안 하니 매우 답답한? 심정이다.


건물은 낡으면 대대적으로 수선을 한다. 사람 몸도 낡은 곳을 맘대로 수리하면 얼마나 좋을까. 몸뚱이도 어느 정도는 수리가 가능하긴 하다. 장기 이식도 있고 성형수술로 얼굴을 뜯어고치기도 한다. 치아는 임플란트라는 걸 한다. 젊어서 소주병을 이로 따다가 깨진 이 하나가 최근 탈을 부려 뽑고 나도 그걸 하느라 치과를 다니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극히 몸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것이다. 장기를 몽땅 들어내고 이식을 할 수도 없고 노화를 막을 수도 없다. 대대적인 수선은 아직 멀다.


세상에 공평한 것은 누구나 세월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도 늙고 누구도 죽는다. 조금 앞에 가고 조금 늦게 가는 차이 뿐이다. 권력 있고 돈 많은 사람들만 오래 산다거나 안 죽는다면 얼마나 불공평하고 화나는 일일까. 그런 일은 없으니 다행이다.


옛날 환갑 넘기기 힘들었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굉장히 오래 사는 것이다. 우리 어릴 때 환갑 맞은 노인들을 보면 산신령 같았다. 허연 수염을 날리고 얼굴은 호두알 표면처럼 주름투성이였는데 지금 환갑을 맞은 사람은 청년이다. 옛날 40대보다도 젊어 보인다. 100세 시대가 눈앞에 도래 했다고 야단이다. 지금의 바램은 100세 시대는 몰라도 90세 시대는 끼고 싶다.


몸을 리모델링해서 몇 백세를 살아도 갈 때는 역시 가기 싫을 것이다. 오래 사는 게 지상至上의 바람이긴 하지만 어떻게 사느냐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건강하게 잘 살았다면 언젠가 오는 늙음과 죽음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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