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으면 다르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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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으면 다르게 보자
  • 박은주 시인
  • 승인 2018.11.2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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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시인

나는 내향적인 성격이라 혼자 있기를 좋아하지만 직장과 가정에 매이다 보니 느긋하고 조용하게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거나 말을 많이 하면 금방 지쳐서 정신이 몽롱해지는 경우도 있다. 간절히 바래도 여유 있고 고즈넉한 혼자만의 시간을 만날 수 없는 것처럼 하고 싶은 일 못하고,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세상은 아무래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직장에서는 직장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끊임없이 갈등을 만들어낸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진다. 사회생활 잘 하려면 줄을 잘 서야 한다거나 로비를 잘 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사람도 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만 해서는 인정받지 못한다며 안타까운 눈빛으로 보기도 한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온통 하기 싫은 일이고 보기 싫은 사람들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의 첫 직장은 집에서 1시간 반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 곳이었다. 주말에도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근무했다. 월요일 하루 쉬는데 직원 4명이 돌아가며 일직을 맡으니 휴일은 한 달에 3일뿐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밤 10시 반, 부리나케 씻고 잠들면 어느새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 사회초년생으로 일도 어설프고 사람들 대하는 것도 힘들어 버스에서 많이 울기도 했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산에는 무덤만 가득했다. 나무를 잘라내어 적막한 땅에 죽음의 기운만 감돌았다.


어느 날 군청에 근무하는 나이 많은 직원이 옆 자리에 앉았는데 ‘출퇴근하며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매일 수학여행 가는 기분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는 싱글거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똑같은 시간, 같은 곳에 앉아, 같은 풍경을 보는데 나는 무덤만 보고 그는 학창시절 수학여행의 설렘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로 했다.
무덤을 보는 대신 계절 따라 바뀌는 나뭇잎, 논과 밭에서 익어가는 싱그러운 작물을 보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이어도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니 구태여 마음을 괴롭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 나오는 아리아 ‘밤의 여왕’에 대해 들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가난한 모차르트에게 장모는 항상 잔소리를 쏟아내며 소리 질렀는데 이 소리에 착상해 ‘밤의 여왕’을 작곡했다고 한다. 나는 열등감에 빠져 인생을 비관하기도 하고, 먹고 살기 위해 도망칠 수도 없다며 현실을 괴로워하는데 자신을 무시하고 야단치는 소리를 들으며 어떻게 전율이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었을까 존경스럽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트리치 트라치 폴카’도 마찬가지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수다와 험담을 즐기는 부인들의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제목도 영어의 ‘chit chat’이라는 뜻으로 빠르고 경쾌해서 무대의 흥을 돋우는 곡이다. 나는 사람 많은 장소에서 오래 버티는 것이 힘들어 조금만 시끄러워도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비위 맞추며 잠깐의 시간을 견디기에 급급한데 귀청을 때리는 수다스러움에서 흥겹고 밝은 음악을 만들었다니 놀랍기만 하다.


요즘 부쩍 일도 힘들고, 사람도 힘들어졌다. 건강이 나빠진 이유도 있을 테고,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일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어도 사람이 힘든 것은 견딜 수 없다니 이렇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을까. 몸과 마음이 힘들고 괴로운데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
스트레스가 심하면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고 숨 쉬기도 힘든데 통증이 느껴지면 다르게 생각하려고 잠시 고개를 돌린다. 해야 하는 일, 만나야 될 사람, 가야 할 장소, 피할 수 없으면 다르게 볼 수밖에. 똑같은 자리에 앉아서도 무덤을 보느냐, 들판에 넘치는 생명을 보느냐 그것은 나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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