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기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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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주기 놀이
  • 박하현 대전작가회원·YWCK청소년위원장
  • 승인 2018.12.0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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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현 대전작가회원·YWCK청소년위원장

도시에도 시골에도, 살았지만 죽은 듯, 죽었지만 살아있는 생들이 늘어가는 요즈음이다. 이파리 다 떨군 나무들과 늦은 밤 시간 역 주변의 노숙자들 안녕하신지, 기름기 없이 푸석 건조한 그들의 등을 살짝 흔들어보고 싶어진다. 이렇듯 눈에 훤히 띄는 존재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류들도 있다.

뿌리만 남은 다알리아, 파초 구근류가 그렇고 이러저러한 상황과 모습으로 골방에서 고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렇다.봄부터 가을까지 집앞 공터에서 농작물을 키우는 민 씨 할아버지도 그중 한 분이다. 방풍나물, 대파만 남은 텃밭에 할아버지의 자전거가 몇 주 보이지 않으면 슬슬 걱정이 앞선다. 어디 사시는지 전화번호라도 알아둘 걸, 여태 무심한 나를 자책하다가 낡은 자전거를 발견하는 날이면 안도와 자유를 얻곤 한다. 대화라야 기껏 몇 마디, 할머니 또 병원에 다녀왔어, 바깥양반출근했나, 네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정도지만 속마음에선 할아버지의 쉼터가 이곳이구나 싶어 딱하고 안쓰러운 마음 가득하다. 팔십여 년 온갖 추위 이겨내고 잘 살아오셨지만 이제  보호 받아야 할 연세인데 지금까지도 보호자 역할에 안타까워진다. 

우뚝 대지에 뿌리 내렸던 나무가 제한된 화분으로 옮겨 앉듯 해마다 농사짓는 밭 크기도 줄어간다. 사라지는 자전거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직 푸른 잎을 지니고 있지만 온실로 옮겨야 겨울도 나고 봄도 맞지 않을까 싶어져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다.몇 주 전 마당의 화분들을 온실로 들였다. 거실에 붙어 있긴 해도 바깥과 연결된 온실 안은  기온차가 커 썰렁하다. 그래도 아침이면 살아있는 것들을 향해 자연스럽게 먼저 그리로 향하게 된다. 

밤새 숨 쉰 흔적으로 수증기가 뿌옇게 서려 있는 창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안녕, 서로들 이야기 많이 나눴구나 말을 건넨다. 갈색 마른 잎을 달고 있는 녀석에게선 잎을 떼 주고풀죽어 시든 녀석에겐 물을 준다. 빗물을 받아 아껴둔 천연 생명수다. 내 갈증이 가시는 듯, 쿨렁쿨렁 물을 넘기는 녀석들의 소리를 듣는다. 꽃대를 올린 녀석에겐 장하다 힘내라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기도 한다. 찬바람 들어온다며 문 닫아라 핀잔하면서도 꽃들이랑 인사 잘했어 묻는 사람에게도 굳모닝 한 모금 건네 마시게 한다.이 모든 일이 아침마다 내가 하는 안아주기 놀이, 겨울 놀이이다.

실제로 이 놀이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수 년 전부터 들어 알고 있다. 될 수 있다면 우리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꼭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안아주는 행동에는 인정해준다는 뜻과 위로와 사랑, 이해와 존중이 포함되어 있어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 사랑을 느끼게 만든다고 한다.

중요한 공연을 앞둔 가수가 지인의 안아주기 후 그렇게 긴장되고 떨리는 가슴이 진정되어 공연을 잘 마쳤다는 이야기, 샴쌍둥이 신생아가 서로 안고 생명을 나누고 있는 사진을 듣고 보았을 것이다. 어린 딸의 ‘내가 아나주께’ 한 마디에 모든 독박 육아의 압박과 피로가 녹아내린다는 엄마를 알고, 여린 팔로 안아주는 손주에게서 힘 얻어 딸의 육아를 돕는 할머니도 안다.
그러니까 안아주겠다는 마음과 말, 몸짓만으로도 엄청나고 특별한 효능이 있는 셈인 것이다.

동화 ‘파랑새’의 주인공 틸틸과 마틸은 모든 존재의 진짜 모습, 즉 그들의 영혼을 보게 된다. 추억의 나라, 밤의 궁전, 숲속, 공동묘지, 행복의 정원, 미래의 나라를 여행한다. 거기서 만난 사람, 나무, 미래의 영혼들은 겉모습과 다른 진실을 지녔다.

사춘기 자녀는 아빠가 안아주려는데 팔을 빼기도 하고, 지긋하신 어른은 아내의 팔에서 벗어나려하기도 하지만 진심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차가운 거리 얼마는 걸어야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는, 뜨거운 국물 같은 위로와 격려 속에 하루를 마감할 수 있는 이 땅 생이기 때문이다. 긴긴 겨울이 버거운 이들에게도 가고 맵찬 눈바람에 헐벗은 나무에게도 가 팔을 벌리면 좋겠다. 온실 같은 말과 마음과 몸짓으로 봄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안아주기... 아름답고 진실하고 소박한 행복으로 채워지는 우리나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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