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서 ‘개혁’을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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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개혁’을 배워라
  • 최성웅 충북일보 전 논설위원
  • 승인 2018.12.1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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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웅 충북일보 전 논설위원

정 암(靜 庵)조광조(趙光祖,1482-1519)년 조광조가 진사 회시(會試)와 알성시(謁 聖 試)에 장원급제 조정의 각광을 받으면서 33세의 나이에 사간원 정언(正言)에 발탁돼 언로(言路)를 통한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교훈은 흥미롭고 거울로 삼아야 할 일이다.

연산군이라고 하는 미증유(未曾有)의 폭군시대가 마감이 되고 소위 중종반정(中宗反正)이라는 정변이 있은 후 개혁의 주체가 논공행상을 따지는 과정에서 혁명의 과실을 독점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모습들을 보이자. 대사헌 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었던 조광조로서는 어지러운 난세에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하겠다는 소명감에 불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조광조의 진심을 의심하려 해서는 안이 되고 그런 역사적 시각은 옳치도 않을뿐더러 개혁의 당위성이 의심받을 여지가 없었고 당당했는데도 그의 젊은 혈기의 개혁은 왜 실패했을까? 왜 왕 중종이 내리는 사약을 마시고 죽음으로 일생을 마감해야 했을까? 한번 되돌아 볼일이다. 건국대 신봉룡 교수 (정치외교) 과는 조광조의 급진 개혁이 실패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그는 주자학적 명리에 지나치리만큼 집착. 현실을 너무 무시한 이상주의자였다고 <한국새로보기>에서 지적하고 있다.

조광조는 맨 먼저 소격서(昭格署) 왕실에서 일월성신에게 제사를 드리던 관청} 혁파를 주장했다. 알성시에 합격해 성균관에 들어간 중종5년 (1510)부터 기묘사화 (1519)까지 무려 9년 동안 소격서 폐지 상소를 265회나 올렸으니 중종이 넌더리를 낼 법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그는 사헌부와 사간원의 책임자를 파직할 것을 요구하는 상서를 1년에 7차례나 올렸고 그가 예조정량에 올라 대사헌으로 죽음을 맞이했던 1515년부터 1519년까지 4년 동안에 개혁상소를 300번이나 올림으로써 그의 주군을 개혁피로감에 몰아넣었고 분노케 해 사약을 마시는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게 됐다. 조광조 개혁이 실패한 이유 중 또 다른 면은 그가 공. 맹(孔孟) 군자(君子)소인으로 판 가르기 식  단순논리로 그 시대를 읽으려 했다는 점이다.

군자 소인배로 편 가르기를 하다보면 반대쪽은 적이 된다는 것을 그는 외면했고 단시간 내 어떤 개혁 성과에만 너무 집착 과속질주를 하다보니까 주위 일부를 제외한 모두로부터 신망도 잃어버렸던 것이다.

군주의 총애를 받을수록 그는 더욱 겸손하고 처신에 신중했어야 했는데 그의 개혁 조바심은 당시 주군을 너무 지나치게 다그치다시피 해 분노케 만들었고 국민정서를 개의치 않고 저만큼 앞질러가고 있었다. 그의 지나친 개혁독선은 적만 만들었다. 누구보다도 조광조의 죽음은 안타깝게 생각한 사람은 이율곡(李栗谷)이다. 이율곡은 그 높은 지조와 행실에도 불구하고 위로는 왕실을 설득하지 못했고 아래로는 비방으로부터 자신을 보전하지 못했음으로써 후세의 지탄을 면치 못했다고 탓했다. 율곡도 그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개혁목표는 원대하게 잡되 추진은 서둘지 말고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는 이율곡의 지적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변의 지지와 협력을 얻어 추진해야 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일러주는 교훈이다.

지지와 협력을 얻어내는데 있어서 비판세력의 소용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자율성의 인정이다. 밀어붙이면 모두 통한다는 위험한 개혁발상은 함정일수도 있음을 깨달아야한다. 개혁정책의 정당성을 지나치게 확신한 나머지 모든 비판세력을 무조건 수구세력으로 몰아 강하게 개혁을 밀어붙이기 식으로 한 왕안석과 조광조의 개혁이 왜 실패했는가. 지금 우리는 그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 봐야 한다.

동서고금 역사 속에서 우리는 성공한 개혁과 실패한 개혁의 사례들을 얼마든지 찾아 볼 수가 있다. 역사는 국민들의 지지와 협력을 얻어내지 못한 소위 그들만의 고독한 개혁은 대부분 실패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서 교육개혁을 추진하면서 수학 교과과정 하나 바꾸는데 5년이 걸렸고 유치원제 하나 채택하는데 무려 50년 세월이 걸렸음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음인가?

문재인 정권은 민주노총에 얼마나 신세를 졌기에 저렇게 쩔쩔매나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 다”는 막말을 내뱉는 그들의 오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 가 여우정권 이라고 놀림을 당해도 그들의 비위를 맞춰야만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 틀리면 뒤엎고 무단점거 할 수 있는 초법적 권리를 누가 그들에게 부여 했나 요즘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이런 의문을 가질법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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