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오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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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오리들
  • 동탄 이흥주 문정문학회 사무국장
  • 승인 2019.01.1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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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 이흥주 문정문학회 사무국장

정지용 문학공원이 생긴 이후 그곳을 산책하는 재미가 아주 좋다. 공원에 있는 저수지는 봄에는 주변 벚꽃나무가 황홀한 꽃을 피워주고, 여름은 여름대로 더위를 피해 아침이나 저녁때 산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을엔 단풍으로 물든 주위 산들이 투영된 물빛이 볼만하다. 난 거의 매일 거르지 않고 이 공원길을 걸으면서 내가 쓰는 글의 영감을 얻으려 생각에 잠긴다. 이땐 혼자 걸어야 한다. 누가 옆에 있으면 이런 것에 방해가 된다.

글쟁이는 혼자 있을 때 글이 나온다. 실제 여기서 붙들어 온 글이 굉장히 많다. 걷다가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휴대폰에 메모를 하고 집에 와서 노트북을 열면 뚝딱 글이 하나 만들어진다. 문학공원이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겨울엔 또 겨울대로 좋다. 세상이 꽁꽁 어는 엄동이 되면 저수지 물이 결빙을 한다. 얼지 않는 해도 있지만 올해는 며칠 전부터 저수지가 얼기 시작했다. 저수지가 완전 결빙하면 황량하기 그지없지만 하얀 눈이 내리는 날 그걸 맞으며 저수지 둘레 길을 걸으면 아이들처럼 맘이 설렌다.

이곳엔 가을부터 물오리들이 온 저수지를 헤엄치며 신나게 노는 모습이 많이 눈에 뜨인다. 한데 이 낙원이 주는 기쁨도 겨울이 와 저수지가 얼기 시작하면 끝난다. 저수지의 결빙은 대개 하루저녁에 다 이루어지지를 않고 사방에서 며칠에 걸쳐 서서히 진행한다. 그러면 오리들의 목을 조이듯 그들이 활동할 공간도 서서히 줄어든다. 사방에서 얼어들어와 나중에는 가운데만 조금 남다가 그것마저도 완전히 얼어붙고 만다. 날이 추워 물이 얼기 시작하면 물오리들도 추운지 얼어들어오는 얼음에 모여 올라앉아 죽은 듯이 가만히 있다. 맹추위와 함께 서서히 조여들어오는 얼음을 보면서 걱정들을 하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다.

이제 정말로 얼지 않은 곳이 조금밖에 없다. 우리 마당 4,5배는 좀 넘을까. 저 오리들은 어디로 가야하나. 갈 곳은 알아봐 놨나. 저렇게 뭉쳐있는 오리들을 보니 이제 중 오리도 채 안된 새끼들도 보인다. 그들이 한군데 뭉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 세어 보았다. 40마리가 좀 넘는 것 같다. 어쩌면 오늘 저녁에 당장 이사를 가야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오늘은 날이 푹하지만 남은 곳에 살얼음만 끼어도 오리들은 속수무책으로 정든 곳을 떠날 수밖에 없다. 그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파오는 걸 누르지 못했다.

난 내 집을 갖고 살았기 때문에 이사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 시골에서 나와 한집에서만 40년 가까이 살았다. 지금은 전세를 살거나 월세를 살아도 한집에 일정기간 동안 살 수 있게 법으로 보장되는 걸로 알고 있다. 옛날엔 엄동에도 주인이 방 빼라면 집을 나가야 했다. 아이가 있으면 아예 방을 주려고 하지도 않았다. 셋방살이의 서러움에 눈물콧물 흘리던 이야기를 많이도 들었다.

나는 강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강의 생태를 잘 안다. 강도 날씨가 추우면 여울 등 물살이 센 곳을 빼곤 모두 얼어붙는다. 애초부터 드넓은 강에 터를 잡고 있던 오리들도 얼지 않은 곳, 아주 좁은 지역으로 떼로 모여든다. 무한 큰 집에 살다가 몇 평 안 되는 집에 대식구가 모여들어 살자니 얼마나 불편할까. 물오리들이 대자연의 변화에 손도 못쓰고 고생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공원 저수지 물오리들도 강이 얼어붙어 이사 갈 곳이 그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사람들처럼 미리 갈 곳을 알아보는 것도 아니다. 가뜩이나 좁디좁은 곳으로 모여들어 기존에 터를 잡은 다른 오리들의 텃세는 없을까. 요새 강에 가보질 않아서 전부 얼어붙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다 얼지 않았다 하더라도 지금의 날씨 상황을 봐서는 금년의 강은 전부 얼어붙을 확률이 높다. 저수지를 뜬 오리들의 고생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물오리들이 됐건 인간이 됐건 삶을 살아간다는 건 고달픈 여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야 따뜻한 집이라도 있지만 오리들은 맨몸으로 부딪혀 부대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오늘 오후에 그곳을 걸으며 보니 기온이 어제보다도 상당히 올랐는데도 얼지 않은 곳이 더 줄어 있다. 오리들이 이 겨울을 잘 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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