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아버지 정경세가 막내딸 정매랑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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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아버지 정경세가 막내딸 정매랑에게 보낸 편지
  • 문희순 문학박사
  • 승인 2019.01.1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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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순 문학박사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1563~1633)는 조선시대에 이조판서와 대제학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친 행정가로 문신이자 학자이다. 경북 상주 매호(梅湖)에 살았다. 부인 진성이씨(1566~1635) 사이에서 2남 2녀를 낳았는데, 막내 딸 정매랑(鄭梅娘, 1604~1655)이 회덕에 살던 동춘당 송준길(1606~1672)과 혼인하였다. 정경세는 막내딸과 사위를 특별히 사랑하고 존중하였다. 송준길 후손 가에 정경세의 한글편지는 1통 만이 전해지고 있으나, 한문편지는 여러 통이 전해지고 있다.
한문편지에 의하면 정매랑은 1623년 10월 13일에 송준길과 혼례를 치르고, 친정 상주에 머물다가 이듬해 1624년 시댁으로 왔다. 정경세는 이에 대해 사돈 송이창에게 편지를 써서 “딸이 우귀(于歸)할 날자가 정해졌다고 들었습니다. 진실로 끝내는 내 눈앞에 둘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애련(愛憐)의 정으로 나의 마음이 좋지 않음을 면하기 어렵습니다.”라고 곡진하게 말하였다.
친정어머니 진성이씨는 막내딸을 그리워하여 상주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충청도 회덕
땅을 찾아오기도 하였다. 어느 해 정경세가 사위 송준길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늙은 아내가 딸아이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절절한데, 매번 출발하기 전날에야 급히 그만두게 하니 (자네 장모가) 나를 원망한다네. 그저 웃네만, 또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네. (자네 장모가) 다녀오고자 하나, 오고 갈 적에 노비들이 농사짓는 일이 방해 될까 생각되니 어찌하겠는가? 아내의 편지에 반드시 자세히 적었을 것이니 널리 헤아려 주게.”
라고 말하였다.
그립고 보고 싶은 막내딸에 대한 친정아버지의 감정을 곡진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의 한글편지에서 그러한 정황과 친정아버지의 딸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편지사본】

<친정아버지 정경세가 회덕 송촌으로 시집 간 막내딸 정매랑에게 보낸 편지>

 

 

 

 

 

【편지 내용 판독문】

◀ 편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아기에게 보내는 편지 ② 내 보내고 그리워하는 (너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앉아있노라. ③ 딸자식은 부모를 멀리 떠나있게 생긴 것이니 어찌 하리오? ④ 네 어머님은 편히 와서 있으니 기쁘다. ⑤ 나는 점점 (병이) 나아가니 걱정하지 마라. ⑥ 졍일(靜一)이는 할머니가 떠나는 것을 서러워하더라고 하니 더 사랑스럽다. ⑦ 원대(遠大)는 까불지 말고 글을 배우라고 일러라. ⑧ 바빠서 대강만 적는다. 5월 15일 아버지. 위의 편지 ④를 보면 정경세의 막내딸 정매랑이 상주 친정집을 방문했다가 회덕 집으로 돌아갈 때, 친정어머니 진성이씨가 회덕까지 동행했음을 알 수 있다. 진성이씨는 회덕 딸의 집에서 며칠 머무른 다음, 상주 본가로 돌아갔다. 정경세는 아내 진성이씨가 딸의 집에서 무사히 귀가한 이후, 그러저러한 사연과 딸을 향한 그리운 마음을 위의 한글편지 속에 실어 보냈다. ⑥과⑦에는 ‘졍일’이와‘원대’라는 이름의 아이들이 등장한다. 졍일(靜一, 1627.3.18.~1634.6.7.)은 8세에 요절한 외손녀이고, 원대(遠大, 1625.9.28.~1664.7.16.)는 외손자 송광식(宋光栻)의 아명이다. 정경세는 1633년 6월 17일 죽었으므로 위 편지는 적어도 1633년 6월 이전 편지임을 알 수 있다. 1633년이라 가정하면 정일은 7세, 원대는 9세 때이다. 외할머니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외손녀의 사랑스러운 모습. 까불기만 하고 글공부 안하는 어린 외손자 놈 걱정하는 외할아버지. 이 한 통의 편지에서 훈훈한 가족의 일상이 눈에 아른거린다. 공부를 싫어하고 까불던 아이 송광식은 어른이 되어 왕세자의 스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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