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시조문학의 거성 ‘이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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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시조문학의 거성 ‘이은방’
  • 도복희기자
  • 승인 2019.01.1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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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인 최순자(오른쪽) 여사와 집필자 김묘순 문학평론가는 지용문학공원 ‘다도해변경’ 시비에서 나란히 함께했다.

△ 이은방의 생애
“유행가 가사와 같은 시는 쓰지 않겠다”던 이은방(호 옥천(沃泉)) 시인은 음력 1940년 11월 17일 옥천군 청산면 효목리 861번지에서 아버지 전주 이씨 철하와 어머니 경주 이씨 상임 사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이은방 시인이 17세 되던 해 2월, 그의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돌아가셨다.

그는 39세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았다. 아버지는 1976년 7월, 64세 일기로 유명을 달리 했다. 어머니를 이른 나이에 잃은 이은방 시인은 상심이 컸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 때문에 어머니를 그리며 눈물짓는 날이 많았다. 이러한 아쉬움과 그리움 탓에 생전 아버지와는 먼 거리를 두고 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산소를 자주 찾았다고 한다.

2006년 66세로 세상을 하직하기까지 그의 행로는 다양했다. 그의 행로는 거대하지 않았으나 중요했고, 시끄럽지 않았으며 고요했다.

1947년 논산 반월국민학교를 다니다가 6·25 한국전쟁으로 외가로 피난을 가게 된 후 1953년 보은 세종국민학교를 졸업한다. 1954년 서울로 거처를 옮겨 영등포에 있는 경남중학교 제2회 졸업생이 된다. 그가 장훈중학교 시절 일기를 쓴 것으로 봐서 장훈중학교를 다니다 경남중학교로 옮긴 것 같다고 미망인 최순자 여사는 증언한다. 그는 서울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라벌예술대학을 다닌다. 서울 영등포구 신대방 16가길에서 1976년 7월16일부터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기거한다. 이곳은 아직도 그의 서실과 자필 작품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 다양한 직업과 직책
시인의 작품세계를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 가능하게 한 요인 중의 하나는 그의 다양한 직업 이동에 있다. 그는 다채로운 직종에서 근무하지만 시종일관 글쓰기 작업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1970년 ‘비판신문’, ‘한국경제일보’ 등 언론사에서 10여년 근무, 1977년 ‘동아일보’ 출판국 편집위원, 1978년~1980년 농업진흥공사 홍보실 근무, 1982년~1988년 자유의 소리 방송국 집필 전문 위원, 1992년~1997년 서원대학교 사회교육원 출강, 1996년~2001년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전대학교 문예창작과 출강을 한다.
또한 그는 한국문단을 이끌어가는 문학인으로 단단한 자리매김을 한다. 그의 문단활동은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1975~1986), 한국문인협회 이사(1979), 한국시조시인협회 부회장(1998),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2004~2006), 한국농민문학회 자문위원, 가람문학회 운영위원, 한맥작가협회, 동작문인협회, 옥천문인협회 고문 등 2006년 타계 전까지 역임한 것으로써 알 수 있다.

△ 작품 활동
이은방 시인은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다도해 변경’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한다. 이를 시작으로 총 8권 작품집을 발표한다. ‘다도해변경’ 월간문학사 1971, ‘채말기’ 인문당 1980, ‘바람꽃 우는소리’ 도서출판 백양 1987, ‘하늘못’ 민족과 문학사 1990, ‘물빛 고인 하늘’ 도서출판 뿌리 1994, ‘산방에 송화가루’ 도서출판 세손, 1999, ‘바람춤’ 출판사 미확인, 2003(옥천문단 제8집에 소개), ‘국경의 바람소리’ 도서출판 세손 2006, ‘백두여 천지여’를 출간한다. 등정 기행문 ‘백두여 천지여’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시집 혹은 시조집으로 현대시조 형식에 가까운 작품들이다. 작품집 발표로 작가는 제1회 ‘한국 시조 문학상’(1983), 제11회 ‘노상문학상’(1987), 제27회 ‘한국 문학상’(1990), 제13회 ‘가람 문학상’(1992), ‘한맥 문학 대상’(1994), 제14회 ‘예총예술문화상’(2000), 제5회 ‘문학사랑 대상’(2005)을 수상하며 시조문학을 한국문학의 궤도에 올려놓은 주역이 된다.

△ 중앙과 고향문단의 교량
이은방 시인은 옥천 문인들과 출생지 청산면 효목리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교류가 비교적 쉬웠던 영동의 문인(장지성, 최정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는 (사)한국문인협회 옥천지부가 창단될 때에도 옥천에 내려온다. 2000년 이후 ‘지용제’에 실제로 여러 번 참여한다. 심사위원으로도 위촉 심사비로 받은 50만 원을 (사)한국문인협회 옥천지부에 쾌척하여 고향 문인들의 사기를 충전시켜 주기도 한다. 한편 중앙의 이은상, 이근배, 최승범, 신세훈, 최정희, 김남조, 조병화, 김동리, 정완영, 이희승, 이수화, 허일 등과 영동의 이동희 소설가 그리고 옥천의 류승규 소설가와도 가깝게 교류한다.

△ 작품세계
이은방 시인은 “유행가 가사 같은 시는 쓰지 않겠다”라며 시조 쓰기를 즐겨했다. 시조는 틀에 맞게 정형화 되어 있어서 그의 칼칼한 성품과 어울렸던 셈이다. 시조의 형식적 측면을 빌어 그의 작품세계에 서정으로 용해시켜 응축하고 있다. 그는 우직할 정도의 고집스러움과 사회 변화에서 오는 일종의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보리밭’의 내용을 살펴보면 시인이 자연과 동화되어 자연 속에서 풍요로운 삶을 지향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작품 ‘민들레꽃2’에서도 시적 화자는 고향 같은 자연을 떠나 살고자하나 다시 자연에 회귀하여 자연의 품속에 안기고 외로움을 끝내 털어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속에 고향과 관련된 어휘들을 선택하며, 먼발치에서나마 고향산천을 형상화하며 고향을 그리워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적 화자가 제시하는 고향은 독자들에게 익숙한 벌레나 지명 그리고 길가에 아무렇게나 나앉은 풀이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고향에 대한 사소한 것들까지도 그에겐 소중함으로 각인되었을 것이고 기억되어지고 있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 고향에 부활한 문학혼
시조시인 이은방 시인의 문학혼을 기리는 ‘전국 이은방 백일장’이 지난해 5회째 시행됐다. 이 행사는 옥천군과 옥천문인협회 고문인 황법명 스님, 유족 측의 도움으로 백일장 상금과 행사비를 마련해 진행된다.
또한 2004년 그의 대표 시 ‘다도해변경’이 서예가 김동규의 글씨로 새겨 지용문학공원에 설치됐다. 선생은 고향 이야기만 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애정을 쏟았다고 한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옥천의 문인 이은방의 작품세계를 통해 그의 고향을 향한 수구초심의 마음을 짚어보아야 한다. 고전문학 형식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한 선생의 노력과 고결한 동양철학의 숭고미를 일깨우는 그의 커다랗고 조용한 울림을 전해 듣고 싶었다.

△ 집필자 김묘순 작가의 소감
2013년 옥천군민도서관 평생교육원에서 진행한 ‘정지용, 이은방’에 관한 문학 교육에서 이은방 시조시인에 대해 처음 접했다. 이때는 시세계를 논하지는 않았다. 그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니 청산 출신으로 정지용 시인의 맥을 이어야 될 문인으로 생각 되어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자료 수집을 위해 영동 장지성 시인과 최정란 시조시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많은 구술 자료를 그분들에게서 구할 수가 있었다. 다른 자료들은 미망인 최순자 여사에게서 받았다. 이은방 시인이 생존 당시 살았던 집에 찾아가 집필실을 직접 확인했다.

또한 산소가 있는 김포에도 찾아갔다. 시인이 함께 문학 활동을 했던 문인들을 찾아가 들었고 집필하던 곳을 사진으로 남겼다. 어린 시절 살았던 청산의 무너져 내린 집터 사진을 확인하기도 했다. 교류가 있었던 충북시조시인협회 윤현자 전 회장을 만나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었다.
이은방 시인에 대해 발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옥천출신이며 시조부문 신춘문예 당선자로서 이은방 시인은 옥천에 또 다른 문학의 뿌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우리 지역 진정한 문학가 이은방 시조시인의 자긍심을 토대로 후학들이 많이 양성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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